경성탐정록 경성탐정록 1
한동진 지음 / 학산문화사(단행본)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30년대라는 암울했던 일제시대 경성을 무대로 왜경보다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는 탐정이 등장하는 단편집이다. 그 탐정 이름은 설홍주다. 이름이 알려주는 것처럼 셜록 홈즈를 우리 이름으로 바꾼 것이고 친구인 중국인 한의사는 와트슨에서 따서 왕도손이다. 처음 잡지에서 단편을 봤을때는 왜 설홍주일까 그랬었다. 아둔하기는... 작가의 의도는 이로써 명백해졌다. 셜록 홈즈와 왓슨이 등장한 것과 같은 류의 작품을 쓰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멋지게 보여줬다. 

이런 작품이 진짜 1930년대 나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읽는 내내 서글펐다. 에도가와 람포처럼 우리도 한 시대를 풍미하고 추리소설계를 이끌어줄, 그리고 그 끈을 절대 놓치지 않을 대작가의 이름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어쩌면 일본과 비슷한 수준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너무 심한 비약이고 일장춘몽이려나. 어쨌든 지금이라도 본격 추리소설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면 된다. 이제 우리에게 탐정이 생겼다. 기대하고 기대하던 탐정 시리즈다. 그 앞날에 축복있기를 기원한다. 

설홍주와 왕도손이 등장하는 작품들속에 작가는 30년대 경성을 잘 담아내고 있다. 나야 그 시대 사람이 아니니까 고증이 잘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읽는데 손색이 없으니 독자는 만족하리라 생각된다. 인력거가 다니고 전차가 다니고 왜경에 굽실거려야 하고 나라 팔아 작위를 손에 넣고 떵떵거리는 자가 있고, 모던 보이, 신여성, 룸펜이 판을 치고 일본이나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 온 사람들이 넘쳐나고 청계천엔 거지가 득실거리고 세계는 대공황이 휩쓸고 있는 상황을 곳곳에 잘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설홍주란 인물의 시니컬함은 현실적이다.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는 인물들만 그 시대를 산건 아닐 것이다. 독립운동을 안한 인물들이 모두 친일파에 나라 팔아먹은 자도 아닐 것이다. 그저 암울한 현실에 하루하루를 시대에 맞춰 산 인물들이 더 많을 것이다. 설홍주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늘 자신에게 자문을 구하는 레이시치 경부에게 비아냥거리는 걸로 만족한다. 
 
딱 봐도 경성에 셜록 홈즈와 왓슨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게 하는 단편들이다. <운수 좋은 날>은 마치 현진건의 단편 <운수 좋은 날>을 연상시키는 작품이기도 했다. 후배에게 사라진 친구의 행방을 찾아 달라는 의뢰를 받은 후 신문에 난 납치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황금 사각형>은 부친이 숨긴 재산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푸는 수수께끼 형식의 작품으로 그 풀이가 기발했다. <광화사>는 30년대 청춘들의 삶과 사랑을 한 주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통해 푸는 작품이다. <천변풍경>은 청계천의 묘사와 그곳에서 사는 거지들의 이야기, 그리고 일본 여관에서 일어난 한 밤의 살인 사건을 통해 그 시대상을 보여주고 있다. 김두환의 등장이 신선했다. <소나기>는 가벼우면서 기발한 작품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거의 매일 중국음식점에서 같은 음식만 먹는 우산을 들고 다니는 남자가 오는데 비가 내리는데 그 우산을 사용하지 않고 종이 우산을 사서 그것을 쓰고 나갔다면 그 이유는 뭘까가 궁금해서 왕도손이 설홍주에게 들려준 이야기에서 설홍주는 기막히게 알아맞추게 된다. 

단편이 더 나와도 좋고 장편이 나와도 좋다. 이 정도면 깔끔하고 좋다. 설홍주와 왕도손의 활약이 홈즈와 왓슨처럼 남을 수 있었으면 한다. 작가의 앞날이 더욱 기대된다. 그에게 본격 추리소설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아니 기대하고 싶다. 기대에 어긋나지 않은 단편집이라 참 기뻤다. 일본 추리소설을 영화로 만들고 있다. 이 작품을 한번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만들어도 전혀 손색없을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음 작품을 기대하고 있겠다. 무조건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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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1-18 0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의 글도 쑥쑥 잘 읽혀서 좋은걸요~(웃음)
그런데, '설홍주'라는 이름을 모르고 봤을 때, 이 벽지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만두 2009-01-18 11:22   좋아요 0 | URL
흐흐흐 술이름같기도 해요^^

L.SHIN 2009-01-19 06:07   좋아요 0 | URL
아! 술 이름으로 하면 저말 이쁠 것 같습니다.(웃음)
설홍주(雪紅酒)...눈처럼 맑고 피처럼 붉은 술..ㅎㅎㅎ

물만두 2009-01-19 10:30   좋아요 0 | URL
ㅋㅋㅋ 상표등록하세요^^

비로그인 2009-01-28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도 이 작품 읽고 국산 명탐정의 출현에 반가웠습니다. 우리나라는 요즘 들어 제대로 멋진 명탐정이 거의 나오지 않는 듯한 분위기라서 안타까웠거든요. 설홍주 탐정은 이름이나 분위기나 모두 마음에 듭니다. 시대 배경도 독특하고요. 생각해보니, 이런 일제시대 배경의 작품이 나온 것도 요즘이니까 가능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이런저런 강박관념이 사회에 많아서 이런 작품이 나와서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던 것도 같습니다.

말씀대로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즘 영화계와 드라마계가 소재 고갈에 시달리는 시대이니 어쩌면 이 작품을 텔레비전이나 영화관에서 볼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요. 이 작품이 널리 알려지고 후속작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작가분 말씀으로는 책이 많이 팔려야 후속작이 나올 거라는군요. 부디 잘 되기를~

물만두 2009-01-29 20:27   좋아요 0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도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