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작품의 내용보다 깔끔한 하드 커버로 장식한 책표지와 전에 출판한 브라운 신부 전집보다 탄탄하게 인쇄와 편집 작업이 잘 되어 있어 다행으로 생각되었다. 레이몬드 챈들러가 만들어 낸 세계 최고의 사립 탐정인 필립 말로... 이 작품에서는 필립 말로우, 혹은 필립 마로우라고 표현하지 않고 말로라고 표현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안녕, 내 사랑>을 본 후 그 작품의 번역이 안 좋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필립 말로는 별로였다. 그 뒤 <기나긴 이별>을 읽은 뒤 오히려 나이 든 필립 말로의 매력을 느끼게 되었지만... 사실 필립 말로는 홈즈와 같은 캐릭터다. 작품보다 작품 속 주인공이 더 튀어 캐릭터 자체만으로 살아 숨쉬는 그런 존재다. 그래서 필립 말로를 제외하면 작품 속의 내용은 여타의 하드보일드 작품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p247에서 필립 말로가 자신을 표현한 말이다. '허수아비의 호주머니처럼 공허한 인생'이라고 말로는 자신의 인생을 표현하고 있다. 이런 그의 냉소적인 분위기와 금욕적인 모습이 어우러져 그 시대 미국이란 나라가 가장 원하는 인물이 탄생된 것이리라... 안개와 비에 젖은 도시는 그런 인생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배경이다. 습하고 축축하고 때론 깨끗해지기도 하지만 구정물이 튈 수도 있고 곰팡이가 필수도 있는... 그래서 작가는 배경의 상세한 묘사에 공을 들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생전에 필립 말로의 작품 6권을 남겼고 미완성 작품 한 권을 남겼다. 개인적으로는 6권 전부를 출판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집이라고 부르려면 말이다. 미완성 작품은 제외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제목도 다른 출판사에서 내 놓은 제목에 비해 원 제목 그대로 쓴 것이 좋았다. Big Sleep... 제목만으로도 궁금증을 유발하기 충분하고 그러면서 깊은 뜻을 담고 있어 마지막에야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되는... 물론 눈치 빠른 독자라면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겠지만...개발에 땀 나도록 뛰어 다니는 것이 사립 탐정이라는 사립 탐정의 전형을 만들어 내고, 또한 부유한 인간들의 불행한 삶을 표현해 가난한 독자들을 즐겁게 하고, 그러면서 이런 인물 하나쯤 필요하다는 사회적 시류에 편승한 작품... 내가 너무 필립 말로를 냉소적으로 표현하는 것인지 몰라도 필립 말로 이후 모든 탐정이 그렇게 된 것은 작가의 책임이니 할 수 없다.내가 좋아하는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나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에게서도 필립 말로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필립 말로의 긴 그림자의 끝은 언제까지 계속될는지... 아마도 금세기까지는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끝까지 좋게 레이몬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가 우리 앞에 남아 있을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