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증인 동서 미스터리 북스 300
김성종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대단히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추리적 형식도 그렇고 그 안의 역사 녹임은 <여명의 눈동자>에서 익히 알던 그것이었다. 이 작품은 600페이지나 되는 작품이지만 정말 단숨에 읽게 되는 어떤 빈틈도 보이지 않는 마력이 있다. 이런 작품을 이제야 읽게 됨을 작가에게 사죄하고 싶은 심정이다. 아울러 그 동안 작가에게 안 좋은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점도 함께 사과 드리고 싶다. 우리 나라 추리 소설가를 떠올릴 때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작가의 작품을 이 작품을 포함해서 달랑 세 작품 읽었다는 것은 심히 부끄러운 일이다. 이 작품을 계기로 작가의 작품을 계속 읽기로 했다. 이 작품을 처음 샀을 때 두께가 너무 두꺼워 문고판으로는 좀 모양새가 그랬지만 DMB에서 많은 다른 나라 작가의 작품들을 내놓으면서 정작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은 한 권도 내놓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나라 추리 소설의 현실을 말하는 듯 해서 착잡했는데 김성종의 작품을 계기로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도 더 많이 포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살인 사건으로 인해 드러나는 우리의 슬픈 역사 6.25. 그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처절함. 누가 이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누가 이들을 단죄할 것인가. 나쁜 사람도, 이용당한 순한 사람도 따지고 보면 시대가 낳은 사람들일 뿐. 사람이 나쁘다지만 사람을 만드는 상황이 그들을 눈멀게 만드는 것이리라. 각기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두 사건. 한 형사의 집념.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우리 역사의 일그러진 자화상. 이 작품을 보면서 언젠가 봤던 윤정희 주연의 영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낮에는 태극기를 달고 밤에는 인공기를 달다가 급기야 두 국기를 손에 쥐고 흔들던 모습. 그 아이러니와 슬픈 우리의 역사. 우린 여전히 최후의 증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절되지 않은 역사. 어떤 바람직한 해결도 없이 흐지부지된 많은 역사, 현대사의 앙금이 여전히 남아 있는 오늘을 사는 우리는 모두 최후의 증인일 수밖에 없고 우리의 모습은 결국 오병호, 황태영, 양루시아로 이어지는 끊어지지 않은 이어짐 속의 인연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를 되풀이하는 과오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한번 잘못된 역사를 살았다면 다시는 그런 일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런 상황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당하지 말아야 한다. 사상이나 이념, 종교가 인간의 존엄성, 인간 그 자체보다 위에 있게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잃고 우리는 이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깨달음을 우리만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역사의 왜곡된 점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것으로 무엇이 이루어지느냐는 것은 미래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못을 바로 잡으려 노력하지 않고 알고도 모른 척 지나친다는 것, 그것은 이 안의 인물들, 나쁜 인간들과 다르지 않음이다. 역사란 순간의 기록이 아니다. 인간의 먼지가 쌓여 남는 찌꺼기다. 그 찌꺼기가 부처님의 사리가 되느냐, 쓰레기가 되느냐는 그 역사를 어떻게 바로 쓰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미래 사실적 역사를 만드느냐, 왜곡된 역사를 만드느냐를 좌우할 것이다. 그리고 황바우의 일처럼 사실은 언젠가 찬란한 진실로 밝혀질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비뚤어진 역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왜곡된 것의 뿌리내림을 말한다. 왜곡된 것은 뿌리를 캐내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고 없애지 않으려면 끌어안고 살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그 변형된 역사의 피해자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 우리의 후손의 몫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사실은 아무리 바르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사실대로 밝혀져야 한다. 사실이 진실이냐를 떠나서 사실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일 뿐이고. 우리는 어떤 것을 택하고 있는 지. 사실적 역사, 부끄럽고 감추고 싶지만 왜곡하지 않고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가. 그것이 모여 역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내딛는 한 발자국의 사실이 모여 진정한 역사가 되고 그것이 언젠가 비틀린 역사를 어느 시점에서 바로 펼 날을 만들 것이다. 그때 또 다시 이런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또한 이 작품을 보며 최후의 증인이 아닌 최초의 증인이 되는 삶을 모두가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 미래의 후손들에게 떳떳한 조상이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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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onara 2004-11-23 1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두님의 서평을 읽고 이 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요상한 데자뷰 현상... 알고보니 근래 보기드문 최악의 한국영화 '흑수선'의 원작이었다는... 이런 실망감이... 거지같은 영화로 먼저 줄거리를 알아버리다니... 차라리 원작을 먼저 읽을 것을... 그래도 끝까지 읽어볼 것이냐?! 말것이냐!? 고것이 문제 아니겄소!?

'식스센스'의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라는 것을 알고 봐도 재미있드요!?

만두님! 결말을 알아도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까!? 이제 1/10 읽었습니다. 조언 좀 부탁합니다.

물만두 2004-11-23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흑수선을 못봤지만 그 악명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책과 내용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색이 너무 심했다고나 할까요. 읽으세요. 중요한 장면 나오지도 않았네요. 저라면 눈 딱감고 읽겠습니다. 읽은 다음 제가 만두를 던지시길^^

sayonara 2004-11-24 11: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시간만에 후딱 읽어치웠습니다. 다행히 영화와는 많이 다르더라구요.

한국에도 이런 대하추리소설이 있구나..(감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