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불임 클리닉의 부활
가이도 다케루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사쿠라노미야 도조대학이라는 말에서 다구치나 후생성의 등장에 시라토리가 잠깐이라도 등장하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단지 얼음 마녀라 불리는 도쿄의 데이카대학 산부인과 의사로 인공수정 전문가인 소네자기 리에가 나온 모교일 뿐이었다. 가이도 다케루의 작품이라면 의례 다구치와 시라토리를 생각하다니 작가에게 실례가 될 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왜 이 작품을 쓰게 된 것일까가 그래서 더욱 궁금해졌다. 

데이카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산부인과 전문 병원인 작은 마리아 클리닉에서 아르바이트식으로 진료를 담당하던 리에와 리에의 담당 조교수인 기요카와는 산시 마리아 병원장의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아들이 혼자 운영하던 다른 작은 병원에서 의료 사고를 일으켜 범죄자처럼 구속되자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기요카와는 데이카대학에 어떤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마리아 병원에서 손을 떼게 되고 리에는 그 사건으로 더 이상 병원을 찾지 않게 되어 마지막 남은 5명의 임산부가 출산할 때까지 폐암에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마리아 원장을 대신해서 진료를 계속한다. 그러던 중 리에가 대리모 출산에 관여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요카와는 조사를 위해 마리아 클리닉을 주시하게 된다.  

작품은 데이카 대학에서 발생학을 강의하며 의료 현실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리에의 모습과 그런 리에과는 다르게 자신의 영달만을 위하는 다른 교수의 모습을 대비해서 보여주며 의료 현실은 관료주의뿐 아니라 의료인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인식시킨다. 또한 마리아 클리닉에서 진료하는 리에의 모습과 여러 사연을 가지고 있는 임산부들, 불임 치료를 오래한 끝에 아기를 더 이상 유산하고 싶지 않은 임산부, 젊은 나이에 임신해서 중절하려고 애를 쓰는 임산부, 고령의 임산부 등 그들이 변해가는 모습 속에 현실적인 작은 병원이 처한 문제와 그들을 그래도 찾고 의지하는 임산부들을 통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는 의사인만큼 작품 속에 산부인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를 담고 있다. 불임 치료와 인공 수정에 비용이 많이 드는데도 의료 보험 적용이 안된다는 사실, 아니 임신은 그 자체가 질병이 아니므로 의료 보험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 기형아 출산의 위험, 낙태 문제, 대리모 문제까지 여러 가지를 다루고 있다. 그런 가운데 그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하나다. 지역의 가장 작은 단위의 산부인과가 붕괴되면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 자체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뉴스에서 동네 산부인과에서 아기의 출산을 담당하지 않는 곳이 점점 더 많아 지고 있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저출산이라 임산부도 적어진 상태에서 자연 분만은 의료 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라 적자 운영이 불가피한 상태에서 낙태는 불법이고 사고가 나면 큰 일이 되기 때문에 차라리 분만을 다른 병원에 떠 넘기는 것이다. 그래서 임산부들만 아이를 낳기 위해 힘들게 병원을 찾아다니게 되고 만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의료 행정이고 복지란 말은 어디에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렸을 적에는 동네에 작은 의원들이 많았다. 소아과, 산부인과는 쉽게 눈에 띄는 병원이었다. 그 많던 병원, 의사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의사의 왕진 가방이 사라진 것처럼 이제 필요한 사람들이 무거운 몸, 아픈 아이를 품에 안고 병원을 찾아 뛰어 다녀야 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예전에는 돈이 없어 병원을 보고도 못 가고 조산원이나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그때보다 풍족해진 지금 왜 우리는 그때보다 더한 상실감을 느껴야 하는 걸까. 리에의 앞날은 순탄치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에의 성공을 기원한다. 더 나은 임산부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이 작품에서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불임 부부, 대리모, 낙태다. 대리모에 대해 리에와 기요카와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누가 진짜 엄마인가? 리에의 말처럼 현대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개념을 의학적으로나 법률적으로 참 모호하게 만들었다. 예전이라면 고민할 필요없는 일들이 의학의 발전으로 고민하게 되었고, 법률적으로 결정지어 지고 말았다. 이 작품 전에 나는 대리모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을 읽었다. 모성이라는 문제는 참 복잡한 것이라 어떻다 말할 수 없지만 왜 이런 이들이 <입양>은 생각하지 않는 지 그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내 유전자를 가진 내 자식만을 갖고 싶다는 것 뿐이라는 얘긴데 그렇다면 기요카와의 대리모를 인정하지 못하는 부분도 모순을 갖게 된다.  

여기에 깊게 다뤄지지는 않지만 낙태 문제도 있다. 이것도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형아라면 낙태가 헝용된 우리나라에서 이것도 생각해볼 문제다. 그렇다면 기형이 아닌 오체만족으로 태어나 중도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법률이 때론 인간이고 싶은 이들에게 죽여도 좋은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나아지지 않는 것은 아닌지 책을 보는 동안 생각하던 것들이 쏟아져 나와 힘들게 읽었다. 다쿠를 낳기로 결정한 유미에게 박수를 보내며 논쟁보다 중요한 인간의 생과 사를 중요시하는 의료 행정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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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1-10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학이 발달하면서 생긴 새로운 문제죠. 대리모라든가 낙태라든가 하는게 다...
근데 참 쉽지 않은 일이에요. 이게 사회전체에다 대고 얘기할 때는 차라리 쉽지, 내 문제가 되었을때는 정말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울것같아요. 요즘을 그래선지 이 문제를 다룬 책들이 많네요

물만두 2008-11-10 14:12   좋아요 0 | URL
그게 문제겠죠. 아무래도 이슈가 되는 소재라서 그런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