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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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아이는 태어나면서 이미 하나의 인간의 전형을 보이고 어떤 아이는 자라나면서 인간의 전형이 만들어진다. 모든 아이가 태어날때부터 선하게 태어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말하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악'을 품은 인간들이 있어서 그렇게 말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단지 태어날때부터 악하게 태어난 아이가 아니라 자란 환경때문에 악의적으로 바뀌는 것이라면 그건 희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환경을 바꿔주면 될테니까.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고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어 나도 시게코와 같은 느낌밖에 가질 수가 없다.

처음 시작이 내겐 참으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12쪽에 나오는 말이다.

- 코끼리는 야생일 때나 사람이 키울 때나 눈빛이 똑같아. 항상 그렇게 부드러운 눈빛이지. 그건 지성이 있기 때문이야. 그런 동물은 코끼리뿐이래.

책을 덮고 나면 이 말이 얼마나 감동적으로 다가오는지 알 수가 있다. 열 두살 아이의 말에서 낙원을 봤다. 책 속에서 사람들이 찾아 헤매는 낙원을. 감사한 마음이다.

이 히토시의 말은 가슴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 말 한마디로 그 아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자랐는지, 그 아이 엄마가 모자가정을 어렵게 꾸리면서도 가정을 진정한 낙원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어린 아들이 사고로 죽고 아들의 유품인 이상한 그림을 들고 아들을 좀 더 이해하고 추억하기 위해 도시코는 마에하타 시게코를 찾아온다. 그 9년전 <모방범> 사건으로 유명해진 프리라이터를. 그리고 시게코는 히토시의 그림에서 자신의 9년전 산장 그림도 있음을 알고 놀란다. 정말 히토시는 사이코메트러였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사건을 들은 것일까? 더 이상 등을 돌린 채 살 수 없었던 시게코는 다시 한번 히토시가 그린 그림 속의 16년전 사건을 조사하기에 이른다. 부모가 딸을 살해한 사건을.

마에하타 시게코가 손을 댔으니 사건은 끝장을 보게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작품은 사건에 대한 조사가 아닌 치유와 복원,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가정이라는 낙원에서 쫓겨난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고 있다. 16년전 불량 소녀로 낙인찍힌 소녀, 그 소녀를 자신들 손으로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부모, 그리고 그 사실을 여동생이 모르게 감추고 산 세월이 한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다. 어쩌면 죽은 아이는 집 안에서조차 왕따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아무도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 집에서, 가족들에게 그래서 더욱 비틀린 모습으로라도 자신을 각인시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런 생각이 든다.

도시코와 히토시의 가정과 도이자키 아카네의 가정은 극명한 대비를 보이며 다가온다. 두 가정 모두 넉넉하지 않았다. 히토시도 때론 떼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사정을 설명하고 도시코는 아들에게 최선을 다했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를 나무라지 않았다. 반면 여섯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자매를 둔 도이자키 가정은 얌전한 작은딸을 편애했다. 큰 딸에게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가정이 낙원이라면 어느 가정이 낙원일까? 답은 뻔하다. 답이 뻔한데도 여전히 낙원은 지옥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면 더 이상 낙원이 아닌 곳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밖이 더 큰 지옥이라 할지라도 눈 앞의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니까. 자식을 가슴에 묻었지만 한쪽은 따뜻한 추억과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죄책감으로 간직하고 있는 상반된 모습 속에서 제목 낙원이 주는 의미는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주고 있다.

표지에 보면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안에 어린 소녀가 웅크리고 있다. 저 사과가 낙원일까? 아니면 지옥일까? 저 소녀는 벌레가 파먹은 상한 사과가 다른 사과도 상하게 하는 피해를 주지 않게 하기 위해 골라 버려야 하는 것일까? 역시 낙원이든 지옥이든 그것은 품으려는 사람에게 달린 것 같다. 시게코는 치유가 되었으리라. 도시코를 만났으니까. 만약 아카네가 도시코의 딸로 태어났더라도 그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내 무심함때문이리라. 그래도 그런 생각이 든다. 이해할 수 없다는 말에 수긍하면서도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히토시의 따뜻한 마음이 함께 했다. 히토시는 어쩌면 낙원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림을 통해서. 그리고 낙원은 꿈꾸는 자의 몫이지만 그것을 낙원으로, 진정한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의 노력과 이해, 포용이 필요하다고 마지막까지 전하고 있다. 그 마지막은 히토시의 선물이었다는 생각에 가슴 뭉클해졌다. <모방범>으로 약간 실망했던 내 마음도 이 작품으로 치유되었다. 역시 미야베 미유키다. 감동이 없는 작품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으니. 이 작가에게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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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7-26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것은 코끼리 뿐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개들도 그래요. 늘 사랑을 갈구하면서 동시에 일편단심 사랑을 주고자 하는 그 눈망울.
세상 모든 동물들 중에서 사랑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사는 동물은 개 뿐이거든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물만두 2008-07-28 10:25   좋아요 0 | URL
아이의 엄마에 대한 마음입니다^^

도넛공주 2008-07-27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저도 이 책을 읽었기에 리뷰가 새롭네요.코끼리 이야기 저도 한참을 숙연히 봤었답니다.

물만두 2008-07-28 10:26   좋아요 0 | URL
그죠.

핑크팬더 2008-07-28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잘 지내셨나요? 저는 드디어 말년휴가 나왔답니다. 이제 다음달초에 복귀하고 그다음날 바로 전역하네요. 이런날이 오긴 오는모양입니다. 미미여사책은 저번 레벨7 이후로 잠시 중단했었는데 낙원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수가 없군요. 모방범의 그 전율을 잊지못하는 저로서는 말이죠. 오늘 주문하려 합니다. 그런데 막상 마지막 휴가 나왔는데 날은 무덥고해서 그냥 시원한 도서관이나 가서 책이나보고 있답니다. 날씨가 장난이 아닌데 건강 조심하세요. (웃음)

물만두 2008-07-28 10:28   좋아요 0 | URL
드디어 말년휴가나오셨군요. 우와~ 축하드려요. 그래도 젖은 낙엽정신 아시죠? 마지막까지 몸조심하시고 건강하게 계시다 전역하셔야 합니다.
저는 모방범은 좀 그랬는데 이 작품은 정말 마음에 듭니다.
도서관에서 책보는게 최고의 피서죠^^
필승!!!

2008-09-17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9-17 1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