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위한 독서클럽
사쿠라바 가즈키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사쿠라바 가즈키의 <아카쿠치바 전설>은 작년 내가 읽은 최고의 일본 소설이었다. 미스터리를 내심 기대했던 내게 미스터리보다 더한 것을 안겨준 작품이었기에 이 작품에도 약간의 미스터리와 그보다 더한 보석이 있으리라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성마리아나 학원의 백년에 걸쳐 일어나는 학생회가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 정사가 아닌 야사만을 기록하는 있는 듯 없는 듯 서쪽의 붉은 벽돌 건물에 둥지를 틀고 있는 클럽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독서클럽이 적은 학교를 휩쓸고 간 다섯가지 사건을 단편처럼 써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단편마다 한 권의 책을 정해 그 책 내용과 교묘하게 맞게 설정하고 있다. 독서클럽 회원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학교와 학생들의 모습이니 책과 오버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작가는 그것을 잘 융화시키고 있다. 그 점을 보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매력 중 하나다.

처음은 6월마다 뽑는 여학교 축제의 왕자 선발대회에 야심가이지만 못생겼다는 이유 하나로 학생회에 들어가지 못한 독서클럽 부장 아자미가 베니코를 왕자로 만들기 프로젝트를 꾸미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가 여학교 다닐 때는 이런 일은 없었지만 나름 남학생같은 여학생이 있었고 그 아이를 동경하는 아이들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남자 선생님을 좋아하는 심리와 같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요즘 남학교에서는 반대로 예쁜 여자 선발대회를 한다고 하니 어디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은 비슷한 것 같다. 거기에 학교라는 작은 울타리에서도 권력과 서열이 존재하고 편가르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곳이 결코 세상과 다른 별개의 곳이 아님을 알려준다. 이슈에서 벗어나긴 하지만 그 축소판임에는 분명한 곳이라고.

두번째 작품은 성 마리아나 수녀님의 실종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학교가 세워지기 전 프랑스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스터리한 수녀님의 실종 사건은 정사에서는 정말 다루기 어려운 이야기고 야사로써의 가치가 높은 이야기다. 무엇보다 독서클럽이 왜 학교의 야사를 쓰고 있는 지를 알려준다. 과연 수녀님은 감쪽같이 어디로 사라지신 것일까? 미스터리한 구조도 좋았고 특히 프랑스의 20세기 초의 풍경과 그 시대를 간결하게 잘 묘사하고 있다.

세번째 작품은 1980년대 후반 귀족 자녀들로 구성된 학생회에 반기를 들고 전복을 꾀한 거품 경제로 탄생된 졸부 자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변화의 물결에서 늘 고요하고 도도하게 변하지 않고 있던 학교의 전근대적인 귀족과 서민이라는 지배구조가 위기를 맞는 것으로 바깥 세상과 전혀 단절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정말 <기묘한 손님들>이었을까? 학교 학생들이 더 기묘한 아이들같이 느껴진다.

네번째 작품은 21세기로 넘어와서 직접적으로 독서클럽과 관련있는 이야기다. <기묘한 손님>들은 간접적으로 관여한 사건이었다면 말이다. 독서클럽에서 얌전히 있던 화족출신 아가씨가 로커가 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친구가 자신의 사랑을 배신했다고 노래하고 있다. 우리들의 여고시절 우정은 어쩌면 우정보다는 좀 더 사랑에 가까웠을지 모르겠다. 동성끼리만의 학교생활이라는 것은 이런 사랑보다는 멀지만 우정보다는 가까운 느낌을 남기는 것 같다. 남자는 의리로 여자는 혈육의 정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다섯번째 마지막 이야기는 백주년을 맞아 남녀공학을 앞두고 맞이하는 마지막 학교 축제와 그 마지막 해에 무너질 위기에 쳐한 건물에서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독서클럽 회원이 쫓겨나고 부겐빌레아를 남기고 수녀님들에게 빼앗긴 물건을 찾아다주는 마지막 왕자를 그리는 이야기다. 그리고 맨 앞에서부터 이어지는 독서클럽 회원들의 현재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매번 독서클럽지에는 본명이 아닌 코드네임으로 글을 쓰는 이가 따로 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책만 읽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학교라는 무대를 떠나서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좋아하는 이들이 추구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들은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난 이도, 누군가의 조종을 받으며 본 모습을 잃어가는 이도, 희망을 잃어버린 이도, 쫓겨난 이도, 꿈을 꾸던 이도, 마지막 남은 이도 아닌 그저 그들만의 오늘을 사는 이들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라도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마저 읽고 싶은 소박한 소망을 품고 사는 나같은...

백년 동안의 여학생들의 모습은 거의 달라진 점이 없이 그려지고 있다. 세상은 변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언제나 그다지 변하지 않는 법이라는 것처럼. 마지막 페이지에서 마지막 독서클럽지를 쓰며 남긴 '소녀여, 그리고 청년이여, 영원하라! 세상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시궁쥐처럼 계속 달려라. 티끌이 되어 사라질 그날까지. 슬퍼도 씩씩하게 서로 도우며 살아라.'가 이 책의 제목이 왜 청년을 위한 독서클럽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온다 리쿠의 학원물과는 다른 학원 소설을 접한 느낌이다. 온다 리쿠가 어둡고 더 미스터리하다면 사쿠라바 가즈키는 밝고 덜 미스터리하면서 학원 소설 자체에 집중하는 느낌을 준다. 비교해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나 똑같은 독서 클럽을 만들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라면 싫지만 그래도 가끔 그립다. 여고시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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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8-06-18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고시절 저도 그립네요..
학교 뒷동산에 올라 폭풍의 언덕을 생각하며,
팔벌리고 캐서린을 불러보곤 했었는데 ^^

저랑 하시죠 독서클럽 ^^*

물만두 2008-06-18 19:12   좋아요 0 | URL
헤헤헤 저는 여고시절에는 로맨스소설만 읽었답니다^^
클럽은 바둑부였구요.
낭만적이셨네요.
뒷산에서 송충이 잡던 기억밖에 없는데요 ㅜ.ㅜ
후훗~

Koni 2008-06-1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굉장히 재미있겠어요. 저의 여고시절은... 그냥 굉장히 평범했어서, 이런 이야기에 더 혹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물만두 2008-06-19 10:15   좋아요 0 | URL
저두 그랬어요^^

BRINY 2008-06-2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땡기네요

물만두 2008-06-21 13:40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