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고리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
제롬 들라포스 지음, 이승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프롤로그에서 한 가정이 등장한다.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딸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는 엄마, 그런 엄마를 말리는 아빠, 그리고 귀를 틀어막고 떨고 있는 아이. 그리고 갑자기 그들에게 누군가 찾아온다. 엄마를 쏘고 다시 아빠를 쏘고 쥘리앵은 그것이 호랑이라고 생각했다. 이어 한 남자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병원에서 깨어난다. 노르웨이의 끝에서 빙하 사이에 끼어있던 함선에서 카드늄 상자를 찾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그는 잠수부였다. 사람들은 그를 나탕이라 불렀다. 그런데 깨어난 그에게 이상한 사람이 접근을 한다. 목숨의 위협을 느낀 그는 병원을 빠져나가 자신의 집이 있는 파리로 가서 기억 찾기 여행을 시작한다. 단서는 팩스 한 장, 그가 의뢰한 17세기 필사본의 번역에 대한 도서관장에게서 온 것이었다.

나탕은 기억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 다시 노르웨이, 콩고, 이집트까지 여러 곳을 다닌다. 나탕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던 사람이기에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진짜 노르웨이에서 있었던 일은 무엇이고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정체는 무엇일까로 하나의 개인의 삶에서 거대한 인류의 삶이라는 것과 맞닿게 되는 흐름을 독자가 따라가게 하고 있다.

기억을 잃었다는 것은 대단한 공포다. 자신을 알아보는 가족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 앞에서 자신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같은 이였음을 인정하기는 힘들다. 여기에 엘리어스의 필사본의 번역에서 밝혀지는 과거의 잔인함은 마치 나탕의 앞날을 예고하는 것 같아서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무언가 섬뜩한 거대한 것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탕과 함께 하면서 그가 만나는 사람들이 과연 믿을만한 사람인가를 생각하게 되면서 스릴은 시작된다. 그가 보는 것, 그가 겪는 것, 인간이 저지른 잔인한 일들, 앞으로 벌어질 음모, 그리고 나탕이 되찾을 기억 속에 무엇이 있을지 독자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롤러코스터와 같은 스릴러에 마음을 빼앗긴 것을 느끼게 된다. 시각적인 면에서 느껴지는 빙산들을 헤치고 가는 작은 배, 청각과 촉각적인 면에서 느껴지는 아프리카의 음습하고 어두운 땅굴 속으로 들어가는 나탕의 모습, 후각적인 면에서 걸쭉한 피냄새로 공포에 떨게 하는 마지막 장면, 그리고 모든 것이 정지된 듯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는 마지막 나탕의 모습은 오감을 아니 육감을 총 동원해서 느끼게 만드는 이 작품의 스릴러적 매력이다.

<이 정교한 소설은 완벽한 허구이자 불편한 진실이다.>라고 뒷 장에 써 있다. 이 말 그대로다. 읽어보면 허구인 이 소설 속 이야기가 어쩌면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될 지 모른다.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소설 속 이야기들은 역사적 사실이나 바로 얼마전 있었던 어느 나라 사람들이 겪은 참혹한 사실이다. 불편한 것은 그것을 우리가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아닐까... 과연 피의 고리는 무엇인지 작가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전직인 르포 작가로써의 이력을 담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진짜 긴장감과 프렌치 스릴러의 매력은 마지막 백 여장에서 드러난다. 거기에 진정한 모든 진상인 악의 고리가 된 피의 고리와 함께 그것을 끊으려고 애를 쓰는 나탕의 마지막 싸움이 처절하게 벌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의 대미는 이 작품이 왜 영미권 스릴러와 차별되는 프렌치 스릴러라고 불리게 되는 지를 알려준다.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의 박진감 넘치는 작품은 아니지만, 신성 막심 샤탕의 흡입력 강한 작품은 아니지만 프랑스만의 독특함은 진하게 보여주는 프렌치 스릴러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pple 2008-06-18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요즘 프랑스 스릴러 굉장하죠..^^ 모르던 책인데 담아두어야겠습니다!!!서평보니까 꽤 끌리네요...^^

물만두 2008-06-19 10:16   좋아요 0 | URL
프랑스 스릴러가 대세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