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의 수수께끼 밀리언셀러 클럽 81
나가사카 슈케이 외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작년부터였나? 이 4권의 단편집이 나올거라고 들은 게. 그리고 이제 2편이 먼저 나왔다. 왜 나온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건지. 암튼 나와줘서 고맙다.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작가라는데 그 수상 작품은 정작 몇 편 읽은 것이 없다. 이 단편집은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작품을 먼저 읽은 뒤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뒷북이지만 출판되지 않은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작품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나가사카 슈케이의 <아사쿠사 에노켄 일좌의 폭풍>, 신포 유이치의 <연쇄>, 신노 다케시의 <8월의 마르크스>가 출판되지 않은 작품이다. 절판된 가와다 야이치로의 <하얗고 긴 복도>가 또 나와주면 더 좋겠고.

나가사카 슈케이의 <'밀실'을 만들어 드립니다.>는 처음 접하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낯익고 어딘지 모르게 처음부터 위화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어느날 집에 막무가내로 쳐들어온 열네살 피노코와 함께 살게 된 추리소설가는 수요일마다 사쿠주점에서 상복부인을 만나고 친구들과 모여 일명 술집 탐정 게임을 즐기는 낙으로 산다. 상복부인에게는 예찌력이 있어 작가에게 떠오른 단어를 메일로 보내는데 그 단어들이 심상치 않다. 거기다 피노코의 행동도 그렇고 그들이 밀실 사건을 만들고 풀게 하는 회장도 독특하다. 이때 정말 밀실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약간 작가의 억지가 눈에 띄였다. 요즘같은 세상에 말이다. 물론 '술집 탐정 게임'이라는 주점에서 사건을 서로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은 좋았다. 미스 마플의 '화요추리클럽'처럼 말이다. 그런 식으로 차라리 풀었더라면 고전적이면서 더 재미있었을텐데 작가는 너무 많은 곳에 장치를 하느라 정력을 낭비한 느낌이다. 깔끔한 맛이 없다. 술집 탐정 게임만으로도 하나의 단편집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작품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너무 '밀실'만을 생각하다가 전체적인 밸런스가 무너진 아쉬운 작품이었다.

신포 유이치의 <구로베의 큰곰>은 처음 읽을 때 이 작가 설산을 무지 좋아하는군 하는 생각을 했다. 또 눈 덮인 산을 등산하다 조난구조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어디가 미스터리일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마지막에서 그야말로 놀라고 말았다. 눈보라로 연막을 치다니... 구로베의 큰 곰이라 불리운 남자에게 25년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인생 자체가 미스터리라는 생각을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타인을 용서하는 일보다 더 힘든 것은 자기 합리화의 트레바스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산은 인간에게 자신을 생각하게 만든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이 작가는 이런 점이 요코야마 히데오와 참 많이 닮았다. 그래서 난 이 두 작가를 좋아한다. 미스터리와 감동을 함께 선사하는 작품, 이 작품 하나만을 읽은 것으로 이 단편집의 가치는 내게 충분하다.

가와다 야이치로의 <라이프 서포트>는 의사인 작가가 여전히 의사를 등장시키고 있다. 한가지 얘기하고 싶은데 작가 소개에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작품 제목을 <하얗고 긴 복도>라고 적고 있다. 우리나라에 이 작가의 작품 출판됐었다. 그때 제목이 <희고 긴 복도>였다. 하얗고나 희고나 별 차이가 없다면 그냥 독자들을 위해 나온 작품 제목을 적어주는 센스는 어떨지... 그건 그렇고 작품은 말기암 환자가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쉬고 있는 의사를 개인적으로 고용해서 딸을 찾는다는 내용이다.

버릴 때는, 아니 결혼을 위해 언니에게 양녀로 맡길 때는 언제고 참 마음에 안 드는 캐릭터다. 머리가 좋은 여자라고 나오는데 조금만 생각하면 답은 금방 나오는데 너무 빙빙 돌고 사건은 너무 쉽게 해결된다. 좀 그렇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건지 원... 하지만 인생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 뭐 어쩔 수 없다. 사립탐정도 못찾은 딸을 찾는다는 설정에서 사립탐정의 능력이 역시 과대포장된건가 싶었다. 아무나 회색 뇌세포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신노 다케시의 <가로 家路>는 우선 제목부터 이야기해보자. 저런 한자표시의 가로라는 말은 처음봤다. 워낙 무식한 인물이라 사전을 찾아봤다. 없다. 일본어 사전을 찾으니 나온다. 우리말로 귀로를 일본에서는 가로라고 하는 모양이다. 그럼 귀로로 쓰던가 아니면 풀어서 집에 오는 길이라던가로 붙였으면 좋았을텐데 한자에 무슨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가 안쓰는, 우리는 이미 쓰는 단어가 있는데 뭐하러 그냥 제목을 가져다 쓰는 지 모르겠다. 그 제목이 써서 폼이 난다면 몰라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뿐인데. 제목은 마음에 안들었지만 내용은 좋았다. 신선했다. 우연히 칼에 찔린 한 남자가 오히려 예전 사건의 용의자로 몰려 알리바이가 확실한데도 불구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따라 아버지와 절연한 고향까지 가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은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요즘이다.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 난감하다. 죄는 지은 자에게 있는 건 당연한데 그 범인이 잡히지 않으면 차선의 인물에게 화살은 돌아가게 마련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과거의 일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의 오해와 아집이 있었음을 느끼게 될 때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느끼게 된다. 그걸 느꼈을 때가 자신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다. 용서와 화해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참 마음은 착잡하다. 이 작가의 작품은 더 읽어보고 싶다. 신포 유이치와 히가시노 게이고를 합쳐 놓은 듯한 작가라는 느낌이 든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두 개의 총구>는 작가의 변함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피디한 전개, 마지막 반전은 작가에게 이젠 빼놓을 수 없는 모양이다. 일본의 할런 코벤이라고나 할까. 학교 청소용역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밖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반장은 잠시 볼일을 보러 떠나고 혼자 남았는데 누군가 침입을 한다. 범인은 아니라고 본인은 말을 하는데 믿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작가는 위기의 순간 누구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절체절명의 순간 어떤 것을 선택하든 그것은 자의가 아니면서 자의적인 것이 된다. 그것은 숨겨진 본성일 수도 있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모습일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이런 위기에 닥친다면 나는 하이드가 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겪지 않으면 모르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것을 마지막까지 잘 그려내고 있다. 미스터리적 재미는 이 작품이 제일 좋았다.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작가 작품집으로 일본 추리소설의 오늘을 알 수 있는 작품들이 맞다. 다양한 소재, 방식들을 보여주고 있다. 본격추리소설, 휴먼 미스터리, 사회파 범죄소설, 스릴러까지. 그리고 등장 인물도 추리소설가, 산악인, 의사, 트럭 운전수, 아르바이트 청소원까지 일본의 일상적인 사람들과 일상의 미스터리를 보여주는 것처럼 꾸며져 있다. 3편은 좋았고 2편은 평범했다. 첫 스타트는 좋았다. 나머지 세 권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나저나 적색의 수수께끼란 피, 또는 죽음을 상징하는 건가? 색깔별로 나뉘어져 있다는 것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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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짱 2008-05-10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만두피에 바람드는 봄입니다. 이제 신록에 진초록이 베어나오는 초여름이 되려 합니다. 여름에도 화이팅!^^

물만두 2008-05-12 10:20   좋아요 0 | URL
에고에고 기운 빠지는 만둡니다~ 그래도 화이팅하고 있습니다.
털짱님도 살랑이는 털들과 즐겁게 지내시와요^^

2008-05-13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13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Koni 2008-05-14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야겠네요! 미스터리 소설은 만두님 서재에서 늘 확인해 보곤 합니다.^-^

물만두 2008-05-14 10:03   좋아요 0 | URL
읽어보세요^^

씩씩하니 2008-05-14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책 이야기가 가득한 님 서재 들렀다 갑니다..
오월 햇살이 넘 이뻐요..님..
햇살보다 더 행복하세요~~~

물만두 2008-05-14 14:12   좋아요 0 | URL
님 방가방가^^
그래도 날씨는 추버요~
뭐, 책 이야기만 쓰고 있습니다. 힘딸려서요^^;;;
님도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