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자화상
제프리 아처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Vincent van Gogh. Self-portrait with a Pipe. December 1888 - May 1889.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Vincent van Gogh.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 January 1889. Oil on canvas. Courtauld Institute Galleries, London, UK.

이 두 작품이 고흐가 귀를 자른 뒤 남긴 작품이다. 첫번째 작품이 이 책 속에서 살인까지도 저지르게 만드는 작품이어야 한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고 하니까. 그런데 책 속에는 일본인이 좋아하는 <풍경속의 게이샤>라는 그림이 걸려 있는 두번째 작품이 개인 소장품이자 서로 차지하려는 그림으로 등장한다. 작가가 일부러 일본인을 끌어들이기 위해 바꾼 것 같다. 하긴 제목 자체가 <파이프를 문 귀를 자른 자화상>과 <귀를 자를 자화상>으로 서로 다르니 그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냥 두 그림을 비교해서 감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작품을 읽는 내내 고흐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작품이 대접받고 있다는 걸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가끔 신문에서 어느 화가의 경매가가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는 뉴스를 접하면 늘 갖게 되는 생각이다. 그들은 그림을 사랑하는 것일까? 최고의 그림을 낙찰받을만한 재력을 과시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재산 증식의 또 다른 투자로 생각하는 것일까? 이 작품을 보면 끔찍한 소유욕과 집착, 그리고 과시욕이 어우러진 인간의 또 다른 근원적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아닌가 싶다.

그림과 대저택이 있는 순진하거나 잘 속아 넘어가거나 욕심이 과한 사람들만을 골라서 어떻게든 자신의 회사에서 돈을 대출받게 하고 빚을 못 갚게 만들어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악명 높은 펜스턴 파이넨스라는 회사가 있다. 한번의 실수로 소더비에서 해고당하고 그 실수가 너무도 치명적이라 동종업게에서는 일을 할 수 없게 된 안나는 바로 그 회사에 스카우트되지만 해고된다. 하지만 그 전에 이미 고흐의 자화상을 가지고 있던 웬트워스가의 상속자는 누군가의 부엌칼에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안나는 어떻게든 그 사실을 모른 채 고흐의 자화상만을 팔면 모든 빚을 갚을 수 있을 거라고 고객을 설득하러 가지만 이미 고흐의 자화상은 그 저택을 떠난 뒤다. 이때부터 안나는 고흐의 자화사을 지키기 위해, 펜스턴은 고흐의 자화상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지기 위해, FBI는 펜스턴의 죄를 입증하기 위해 안나를 쫓아 다니게 된다.

엄마가 책의 표지를 보시고 한마디 하셨다. "빈 라덴이니?" 헉... "으하하하 엄마, 고흐잖아." 이러고 책을 다 읽은 뒤 생각해보니 고흐가 빈 라덴처럼 닮아 보이는 것이 아닌가. 9.11 테러로 인해 고흐의 자화상이 영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사건이 이어지는 것이니 엄마의 말씀에서 예지력까지 느꼈다.

암살범이 뒤쫓는 줄도 모르는 안나의 행적을 따라가는 독자는 스릴을 한껏 경험하게 된다. 제프리 아처가 오랜만에 거장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제프리 아처라는 이름만으로도 반갑기 그지없다. 9.11 테러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도 나쁜 놈은 자기 이속만 챙기는 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왠지 단순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의 정치 노선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에 루마니아 차우세스크 정권까지 들고 나오는데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같아 역시 작가는 이야기꾼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주인공이 좀 약하다. 거기다 강력한 암살범이자 살인마인 부엌칼 살인마는 안나에게만은 손을 쓰지 못한다. 물론 우선이 고흐의 그림을 되찾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크란츠가 안나에게만 유독 빠져나갈 공간을 많이 만들어준 것은 좀 그랬다. 거기다 모처럼 등장한 트릭이 8.90년대에 많이 쓰인 범인 잡기 트릭이라니 아, 돌아온 건 좋았지만 막판에 이렇게 힘이 딸리나 하는 감을 지울 수 없어 안타깝기까지 했다. 다만 티나의 정체가 가장 미스터리했는데 오호~ 놀랍다. 물론 잘 생각해보면 알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요즘은 내 머리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다.

지금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가진 자는 더 갖기 위해 온갖 불법도 마다않고 못 가진 자는 나름대로 갖기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그 가운데서 이상하게 가진 자는 가진 자에게 당하고 못 가진 자는 못 가진 자에게 당하는 공식 같은게 성립되는 듯이 보여진다. 일찌기 필립 말로가 생각할 수 없이 많은 돈을 번 사람이 부정을 저지르지 않고 그 많은 돈을 벌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한바 있으니 결말은 잘 마무리되는 것 같지만 뒷 맛은 쓰다. 무슨 돈이 껌값 정도로 백만 단위로 뿌려지니 원...

그래도 웬만큼은 하는 잘 짜여진 미스터리 스릴러라 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뒷심이 딸리는 것은 로맨스로 위안을 삼고. 작가의 작품을 그래도 볼 수 있었음에 만족한다. <한푼도 더도말고 덜고말고>를 쓴 제프리 아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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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8-04-16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흐 이런 책도 있군요. 고흐의 작품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다니.. ^^

물만두 2008-04-16 16:45   좋아요 0 | URL
아닌데요? 고흐 작품을 가지려고 싸우는 스릴럽니다^^

슈가바인 2008-04-24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물만두 2008-04-24 11:19   좋아요 0 | URL
저는 기대가 좀 컸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