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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아웃 - 상
신포 유이치 지음, 윤덕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작품을 읽고 그 어떤 말도 필요없이 딱 한마디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바로 이 작품같은 작품 말이다. "걸작이다!" 한 마디면 족한 작품, 그야말로 걸작, 미스터리의 걸작이고 나의 베스트 작가군 최상위권에 이 책으로 작가는 올라서게 되었다. 아, 내가 아끼고 아끼다 읽은 보람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좀 더 빨리 읽을 걸 하는 생각도 드는 만감이 교차하는 휴먼 미스터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댐은 보통 산에 있게 마련이다. 낙차가 높아야 수력 발전소의 역할도 할 수 있고 그래서 큰 댐일수록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고립될 수 있다. 이렇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하나뿐이고 한 겨울이면 고립무원이 되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산을 좋아하고 겨울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매력적인 직장이다. 가즈시와 도가시는 그런 남자였다. 그랬기에 무모한 겨울 산행을 하는 사람들을 구조하러 갈 수 밖에 없었고 거기서 부상을 당한 가즈시와 두 명만 남기고 혼자 구조요청을 하러 오던 도가시는 화이트아웃을 만나 잘못 길을 들어서는 바람에 가즈시를 구조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가즈시의 약혼녀 지아키는 시간이 지나도 떠난 가즈시를 못 잊어 그가 일하던 댐을 방문한다. 그런데 하필 그때 댐에 진입하던 붉은 달 일당에게 인질로 잡히게 된다. 댐과 스키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그들에게 잡히고 도가시 혼자만 그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처음 카피를 보고 산악 모험인 줄 알았다. 참 나. 화이트아웃이 나온다고 산악 모험이라고 쓰다니 그 발상이 놀랍다. 거기다가 표지에서는 왠 웃는 스키어? 작품이 좋으니 용서를 해준다. 정말. 댐을 접수하고 오십억엔을 요구하는 붉은 달과 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경찰들의 모습과 그 사이에서 혼자 동료는 구하지 못했지만 동료의 약혼녀만은 구하겠다는 집념을 불태우는 가즈시, 그리고 미묘하게 틈을 보이는 붉은 달 조직원들의 모습, 거기에 인질로 잡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지아키의 모습까지 모든 것이 스릴과 감동의 도가니다.
화이트아웃은 산에서만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 사방이 하얗게 가로 막혀 숨도 못 쉴 정도의 일을 겪게 마련이다. 그때 누군가는 잘못된 길로 방향을 잡고 누군가는 주저 앉아 화이트아웃이 물러가기만을 기다리고 누군가는 제대로 대처를 한다. 누구라도, 그 어떤 길을 갔더라도 자신의 잘못은 아니다. 화이트아웃을 만난 것이 자신의 탓이 아니듯이. 하지만 한번 겪은 일에서 무언가 얻어 두번째 그것을 만났을때는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하려고 애를 쓴다. 그때가 후회되기 때문이다. 화이트아웃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시련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이 인간을 단련시키는 힘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마치 인간 승리 드라마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그것도 있지만 작가가 심포 유이치인 만큼 미스터리와 반전 또한 대단하다. 한정된 무대에서의 스펙타클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작가의 힘과 마지막 독자를 화이트아웃에 휩싸인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반전은 왜 심포 유이치를 극찬하지 않으면 안되는지 이 작품에 걸작이라는 말말고 다른 말이 필요없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정말 이 작가 멋있다. 정말 짜임새있고 격조있는 작품을 모처럼 읽었다. 슬프고 아름답고 무섭고 감동적인 추리소설 그 이상의 드라마틱한 작품이다. 작품 자체가 화이트아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