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손톱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빌 밸린저의 <사라진 시간>을 본 후로 명성이 자자하던 <이와 손톱>을 찾아 헤맸었다. 자유추리문고에서 출판된 문고판인데 헌책방에서 찾았나 싶으면 금방 다른 사람이 사가고 아니면 조금 늦게 찾아 이미 누군가의 손에 넘어간 뒤였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어느새 <이와 손톱>을 읽기 힘들겠다고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출판사가 출판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만세를 불렀는데 눈빠지게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라 또 헛물만 켰더랬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면 찾는 것이 나타난다는 말처럼 이 작품이 드디어 출판되었다. 그것도 초판본은 원본에서 썼던 방식인 결말 봉인본으로. 정말 아기다리고기다리던책이라 감개무량할 뿐이다.

맨 처음 프롤로그는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그야말로 확 사로잡으며 시작한다.
첫째, 그는 살인범에게 복수했다.
둘째, 그는 살인을 실행했다.
세째, 그는 그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그 뒤로 바로 법정이 등장한다. 법정에서 검사는 피고에게 증거를 계속 제시하고 증인들을 계속 불러 그가 저지른 살인을 배심원들에게 납득시키고자 한다. 반대로 변호사는 손가락과 의치와 정강이뼈로 피고가 살인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피력한다.

법정의 이야기가 하나 등장하고 나면 뒤를 이어 마술사 루가 그의 아내 탤리를 만나고 사랑하고 같이 마술 일을 하고 그녀가 고향을 떠나오게 된 사연을 듣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법정 이야기 하나에 루의 이야기 하나가 나란히 등장해서 독자를 현재와 과거로 넘나들게 만든다. 이와 같은 구조는 독자에게 더 빠져들게 만들고 있다. 말하자면 마술사의 미스디렉션을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루는 후디니처럼 최고의 마술사는 아니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한 마술사라고 말하고 싶다. 아내가 창문에서 떨어지는 바로 호텔 밑에 있었던 그가 아내가 자살이나 실족한 것이 아님을 알고 복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를 찾아 다닌 것만으로도 그는 훌륭했다.

읽는 내내 트릭을 생각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 <사라진 시간>을 봤기 때문에 독특하게 독자의 뒷통수를 후려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여러가지 변수와 나름대로 내가 작가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내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봉인을 뜯고 말았다. 그러기에는 이미 브레이크가 사라진 자동차를 모는 거와 같았다. 멈출 수가 없었다.

작가가 결말을 봉인하기까지 했고 출판사도 그렇게 했는데 여기에서 더 나가 뭐라고 언급을 했다가는 큰일 낼 것 같아 멈추기로 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 2편이 계속 번역되어 출판될 거라고 한다. <사라진 시간>을 포함해서 말이다. 하지만 좋은 작품은 또 봐도 좋다. 이제는 독자들이 현대물과 함께 고전 추리작품도 볼 수 있게 번역을 해줘서 정말 기분 좋다. 이런 날이 올 줄 생각도 못했는데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그 시대를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시대 가장 문제가 된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알게 되어 세상을 읽는데 도움이 된다. 그것은 나아가 인생에 대한 상담을 할 수 있게도 해준다. 내게 추리소설은 그런 많은 의미가 있는 장르의 작품들이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범죄와 법이 그 시대를 대변하고 있다. 이 작품이 쓰인 1950년대 미국 사회를. 읽어보면 그 시대와 지금이 그다지 많이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오히려 과도한 스릴과 서스펜스를 보여주느라 과격하게 포장을 해서 그렇지 범죄는 그 성질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그것을 아주 공정하게 범죄와 복수 그리고 법으로 나타내고 있다. 결말이 이럴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보면서도 긴장감이나 긴박감같은 것은 전혀 없는 담담하고 건조한 이야기의 나열인데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엄청난 가슴 두근거리는,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작품은 대단하다. 법정의 장면은 법정의 장면대로 치밀하면서도 어딘가 독자를 배심원처럼, 혹은 방청객처럼 거기에서 있는 것 같이 빠져들게 만들고, 루의 행적은 그보다 더 빠르게 전개되면서도 궁금증과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책 뒤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에 버금가는 놀라운 결말이라고 했는데 그것과는 성격이 다른 놀라운 결말이고 더 스릴이 느껴지는 작품이고 일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을 읽는 긴박감과는 또 다른 긴장감이 더한 작품이다. 각각 서로 다른 맛이 있는 작품들이고 이 작품은 이 두 작품과 다른 색다르고 전혀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20세기 미국 최고의 서스펜스 걸작이라고 일컬어진다지만 그 명성은 21세기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만큼 군더더기없이 짜임새있고 빼어난 작품이다.

책을 덮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가 원하던 책을 읽었을때의 기분을 책을 좋아하고 읽고 싶었던 책을 간신히 읽을 수 있었던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이해할 것이다. 정말 본 것만으로도 대만족인 그야말로 미스터리 소설의 클래식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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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7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27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Kitty 2008-02-27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굉장한 호평이네요 ^^ 빌 밸린저는 처음 들어봤는데 유명한 사람인가요?

물만두 2008-02-27 13:44   좋아요 0 | URL
저도 아니까 유명한 사람 맞습니다^^

보석 2008-02-27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삐끼만두님 같으니!!!^^ 출판사에선 만두님께 금일봉을 하사하라!

물만두 2008-02-27 17:08   좋아요 1 | URL
자삐모를 만들까봐요.
자발적 삐끼들의 모임^^

비연 2008-02-28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바쁜데..만두님이 제게 불을 지르시는군요...흑!
이미 장바구니에 넣어버리고 있는 비연...ㅜㅜ

물만두 2008-02-28 10:38   좋아요 1 | URL
하는 일 없는 저는 이런 일이라고 바쁘게 해야죠.
쬐쏭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