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을 안고 튀어라 J 미스터리 클럽 1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권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다카무라 가오루의 추리소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살다보니 꿈은 이루어진다고 이렇게 데뷔작으로 만나게 되다니 정말 꿈만 같다. 서평을 써야 하는데 무슨 이런 말을 하냐고 말하겠지만 몇 년 전까지 다카무라 가오루의 <마크스의 산>과 <석양에 빛나는 감>을 찾았었고 가지게 되었을 때는 기뻐 들떴고 다른 독자들이 그 책을 애타게 찾을 때는 속상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내게 그 책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그 마음은 아는 분은 다 공감하리라 생각된다. 해서 이리 잡설이 길어졌다.

다카무라 가오루의 작품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정확하게 세 작품 봤는데 작품마다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붉은 색, 빛,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다. 발화점을 향해 나아가는 불꽃이 인간 안에 잠재하고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고, 또 폭발이 왜 일어나는지 모르게 그냥 터져버리게 만드는 것이 다카무라 가오루의 작품 속 주인공들의 공통점이다.

한 여름 오사카의 강에 한 구의 한국인 시체가 총에 맞은 채 떠오르면서 작품은 시작된다. 기타가와는 금괴라서 털고 싶다는 생각에 멀쩡히 아내와 아들이 있고 직장도 있으면서 대학 동창인 고다를 부르고 고다는 맹목적으로 살기위해 노동을 하는 인간인지라 자신이 어린 시절 떠나온 오사카에 온다. 컴퓨터 회사에 다니는 노다가 건물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그도 합류시키고, 남한인지 북한인지 국적을 알 수 없는 모모를 만나 폭약 제조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끌어들이고, 은행 엘리베이터 조작을 위해 과거가 의심스러운 노인을 포함시킨다. 여기에 악당이 되기로 결심한 기타가와의 동생 하루키도 어쩔 수 없이 끼워주게 되면서 사건은 금괴를 터는 것보다 그들 주변의 이야기를 맴돌게 된다. 금괴를 훔쳐 달아나려고 동료를 모으고 그러는 과정에서 펼쳐지는 뜻밖의 사건들과 계획의 변경에 맞게 되도 금괴를 훔치기 위해 다가오는 디데이는 계절의 변화와 상관없이 꿈틀꿈틀 인간 속의 그 어떤 뜨거운 면을 파고들면서 숨 막히게 조여 온다.

작품 속에 금괴를 훔치는 이유는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기타가와의 ‘돈이라면 훔치고 싶지 않다. 금괴이기 때문에 훔치려는 것이다.’ 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만이 나올 뿐이다. 정말 말이 안 되는 것일까? 부조리하게 보이는 이것은 다카무라 가오루의 작품 전반에 흐른다. 그들이 원한 것은 금괴가 아니었을 것이다. 금괴로 대변되는 인생을 폭발시킬 화려한 폭죽놀이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빛나고 싶다는 꿈, 폭발을 감추고 살아야만 하는 일상, 쫓기면서도 목숨을 부지해야 하고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일부러 죽이고 싶지는 않아 하는 이율배반적 심리, 한 인간의 존재를 티눈처럼 자각하는 서투름, 복수의 칼을 가는 어리석음, 그리고 그 끝에 남은 씁쓸한 여운까지 미스터리로 인간을 포장해서 독자에게 스스로 찾아 벗겨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버림받은 인간이 그래도 살아가야 하고 돌아와야 하는 것이 인간 세상이고 인생이다. 인생을 폭발물에 실어 날려 보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기에 다른 곳을 날려버리게 된다. 금괴라서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어쩌면 일탈을, 아니 자유를, 인간으로서의 해방을 꿈꾼 것이다. 그래서 사상과 이념, 국가와 민족도 그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들 삼인방은 다카무라 가오루, 기리노 나쓰오, 미야베 미유키다.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이들은 각각의 다른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어 좋다. 기리노 나쓰오는 여성을 극한의 어둠으로 몰아가면서 강인함을 표현하려 하고, 미야베 미유키는 사회 전반의 현상을 잘 보여준다. 다카무라 가오루는 폭발하는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면서 가정과 사회 전반을, 인간 존재의 근원을 생각하게 한다.

데뷔작 역시 다르다. 이렇게 데뷔작 같지 않은 데뷔작이 또 있을까? 물론 데뷔작이 가장 강렬하고 충격적인 작가는 많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 사이에 놓아도 어떤 작품이 데뷔작인지 모를 정도로 처음부터 자신이 쓸 길을 알고 첫 발이 아니라 가던 길을 그냥 가는 중이라는 듯이 쓰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데뷔작은 어딘지 모르게 신선하면서 거칠고 약간 산만하면서도 치기 어려 ‘아, 이 작가는 이런 작품을 쓰고 싶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하기 마련인데 광산에서 보석의 원석을 캔 것이 아니라 잘 다듬어진 다이아몬드 반지를 만난 기분이다. 역시 다카무라 가오루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책을 가장 먼저 읽을 수 있는 독자 여러분이 부럽다. 처음부터 작가의 작품을 시작해서 그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 행운을 부디 붙잡으시길. 뒤이어 <마크스의 산>과 <석양에 빛나는 감>이 출판된다고 한다. 그전에 꼭 읽어둬야 하는 작품이니 유념하시길.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다시 고다 형사 시리즈를 읽고 싶어졌다. 분명 예전과는 다르게 다가올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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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1 2008-02-04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물만두님..잘 지내셨죠? 서재질을 한동안 안하다 들어왔더니 사진속 빨간 리본이 눈에 확 박히네요. 후후..
미스테리 여왕의 데뷔작이라고 하셔서 아가사 크리스티 말인가? 하면서 들어왔어요. 그런데 일본작가였군요. 전 얼마전에야 예전에 물만두님이 리뷰쓰신 초콜릿쿠키 살인사건을 읽었을 정도로 느립니다.(왠지 제시카의 추리극장같은 느낌??) 이 일본작가의 소설은 또 언제 읽을지..과연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물만두 2008-02-04 15:10   좋아요 0 | URL
모1님 오랜만입니다.
저는 그날이 그날입니다. 님도 잘 계셨죠?
빨리 님이 추리소설에 빠지셔야 하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