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전설 세피아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세피아의 사전적 의미는 ‘서양화에 쓰는 채색의 하나. 오징어의 먹물에서 얻어지는 짙은 갈색으로, 주로 수채화에 쓴다.’ 이다. 또한 ‘수채화와 펜화에 쓰이며 그림자를 흐리게 하는 데도 쓰인다. sepia라는 말은 그리스에서 라틴으로 전해져 잉크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을 노스탤지어 호러라고 부르기에 찾아본 것이다. 마치 흑백 사진을 보는 것 같고 흐려지는 내 그림자를 되돌리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아련한 향수와 추억과 오래된 집념과 집착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올빼미 사내>는 어린 시절 동네마다 있었던, 도시에서 도시로 전해지던 아이들끼리 오싹한 이야기를 믿던 전설을 자신 스스로 만들어 그 전설이 되고 싶어 한 사람의 이야기다.

우리 어린 시절에도 이런 이야기는 하나쯤 있었다. 학교마다 있던 유관순 누나 초상화에 얽힌 이야기며 밤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이 걸어 다닌다는 이야기, 조금 뒤 아이들에게는 홍콩 할매 귀신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에 지나지 않고 나이가 들고 나면 추억담이 된다. 하지만 누군가 한 명쯤은 그런 이야기를 진짜로 믿고 진짜로 만들어 추억이 아닌 사실을, 거기다 주인공은 자신이고 싶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을 수도 있다. 추억이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모두에게 그저 한번 생각하고 웃고 마는 그런 지난 이야기는 아닐 테니까. 어쩌면 주인공은 그런 것이 아쉬웠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잊혀 진다는 것이.

<어제의 공원>은 방금 놀다가 헤어진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열 살 어린 소년이 친구와 함께 놀던 공을 놀던 공원에서 줍자 다시 시간이 어제로 돌아간 것을 알고 어떻게든 친구를 살리려 애쓰지만 일이 점점 커져버렸던 기억을 그 공원에서 이제는 나이가 들어 아들과 함께 놀던 중 회상하는 이야기다.
아무리 애를 써도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그저 그때까지의 시간만이라도 소중히 간직하고 기억하자고 작가는 작품 속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노스탤지어 가득한 가슴 찡한 이야기다.


<아이스 맨>은 어린 시절 시골 할아버지 댁에서 보았던 갓파를 얼려 보여준 이상한 버스와 그 버스로 자신을 이끈 어린 소녀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던 소년이 어른이 되어 그 버스를 다시 만난다는 이야기다.
황순원의 <소나기>의 변형으로, 호러 소나기처럼 느껴진 작품이다.


<사자연>은 한자로 死者緣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맞나 모르겠다. 스무 살의 나이에 죽은 한 남자의 일기가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을 어렸을 때 우연히 접하고 그 남자에게 사랑에 빠져서 화가가 되었다는 한 화가가 취재하러 온 자유기고가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가장 노스탤지어 호러라는 말, 아니 나는 공포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어렸을 때의 순수했던 마음이 섬뜩한 집념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월석>은 지하철을 타고 어떤 아파트를 지나게 되면 꼭 자신이 해고했던 남자와 똑같은 남자가 서 있는 것을 보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다.
추억이라는 것이 때론 죄책감으로 밀려올 때도 있다. ‘어버이 살아실제 섬기기란 다하여라. 어버이 가신 뒤엔 애달다 어이하리’ 라는 정철의 시조만 웅얼대다 우린 모두 후회하는 삶을 결국은 살게 된다. 잘했든 못했든 세상에 효의 끝은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정말 못할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자식을 원망이야 하시겠냐마는 어렸을 때 자식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남들보다 힘차게 뛰어가시던 부모님 뒷모습 하나쯤은 가슴속에 있을 것이다. 정말 딱 한번만이라도 부모님을 위해 앞서 뛰어가며 애쓰는 모습을 보여드린다면 달 밝은 밤, 달 속에서 미소 짓는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 돌아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새빨간 사랑>을 읽고 미스터리적인 면이 참 좋았었는데 이 단편집의 단편들은 그 단편들보다 더 좋다. 색깔이 확실하고 공통점이 분명해서 약간 따로 국밥처럼 여러 가지가 섞인 느낌이 들었던 <새빨간 사랑>에 비해 질적으로 높은 퀄리티를 주게 될 것이다. 거기에 <새빨간 사랑>의 엽기적인 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독자들도 이 작품은 읽기에 좀 더 수월할 것이다. 호러 노스탤지어지만 그래도 우리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것은 덜 엽기적으로 다가갈 테니까 말이다.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이제 <꽃밥>을 봐야겠다. 이 작가는 단편의 대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 지금도 대가라고 말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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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1-19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세피아색이라는 말을 봤을 때 진한 갈색을 떠올렸는데
원래 의미 덕에 세피아 차는 진한 갈색이 많이 팔려
길거리에 진한 갈색 차가 많았던가요?

늘 꾸준한 님의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물만두 2008-01-19 10:17   좋아요 0 | URL
저는 세피아색이 뭔색인지를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