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밴드왜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14
쇼지 유키야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1993년에 이명세 감독이 만든 김혜수 주연의 <첫사랑>이란 영화가 있다. 나는 이 영화를 참 좋아하고 그 영화 속의 김혜수를 좋아하는데 그 영화 속에서 김혜수와 가족들이 안방에서 작은 상에 모여 국수를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는 장면이 있다. 슬픈 장면이었는지 김혜수가 울면서 보는 장면인데 작가가 뒤에 드라마에 헌사를 보내니 갑자기 이 영화의 그 장면이 생각났다. 옹기종기 둘러 앉아 울며 웃으며 작은 흑백텔레비전을 모여 보던 그 시절은 이제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가족의 모습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작가는 그 모습이 그리웠는지 모르겠다.

도쿄밴드왜건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건 헌책방을 무대로 돌아가신 증조할머니가 화자로 나와 4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에 잠겨 책을 보았다. 소소한 일상이 전해주는 따뜻함, 록커 출신 할아버지가 외치는 러브면 되는 거라는 걸 알려주듯이 모두 러브하고 해피한 이야기들만 있다.

물론 그렇게 그려서 그렇지 달리 그린다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관점을 달리하면 밖에서 낳아온 자식이 있는 할아버지와 큰소리를 치며 아직도 권위를 세우시려는 증조할아버지, 싱글맘인 손녀와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이웃의 영국인 아저씨가 아빠여도 좋다는 증손녀, 거기에 이런 저런 사연 많은 사람들이 만나 일상의 미스터리를 토대로 하고 있는 이 작품은 무거울 수 있게 그린다면 한없이 무거울 작품을 가볍게 넘기고 있다. 마치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이 작품의 장점이라면 어떤 인물을 중심으로 해서 봐도 된다는 점이다. 마치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홈드라마처럼 여든을 바라보는 증조할아버지부터 열 살 증손자까지 모두가 주인공이며 각자 서로의 일들을 도와가며 잘 해내는, 충돌도 하지만 그것이 어긋남이 아닌 소통의 방법이라는 것을 그들의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흘러가버린 세월을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남은 세월이다. 엎지른 물은 주어 담을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그 상태에서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도 젊은 사람의 특권이에요. 그걸 인정해주는 것은 나이 드신 분들의 아량이고.” 318쪽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이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서 어른과 젊은이들이 공존할 수 있는 곳이 점점 줄어드는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앞에서도 일상의 미스터리라고 했는데 요즘 일본의 대세가 일상의 미스터리라고 한다. 이 작품에서도 자잘한 사건이 미스터리식으로 등장해서 해결되고 있다. 경찰까지 나설 일은 아니지만 궁금해서 조사하고 풀어보고 싶은... 도대체 그 아이는 왜 백과사전을 헌책방에 아침이면 두고 가서 집에 갈 때 가져가는 걸까 하는 식의...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이런 미스터리 속에 사람 냄새 가득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잔잔하고 여운 있게, 그리고 그립게...

무대가 헌책방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만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배려하고 이해하고 모나지 않게 살아가는 모습이 좋다. 우리가 언제나 살아가고 싶은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일 텐데 점점 잃어가는 것이 많고 잃은 뒤에 후회하는 것이 많아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책으로나마 그런 마음을 위로받은 느낌이다. 정말 러브만 있으면 좋은 그런 날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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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07-07-1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리뷰는 보통 잘 안읽어보는데... 이 책 리뷰는 읽어버렸네. 언냐 리뷰 읽어버려서..책이 땡기네. 아냣! 이럼 안돼! 안된다구! 으으으~~~~~~~~~~ OTL

물만두 2007-07-14 12:07   좋아요 0 | URL
내 책임은 아니쥐~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