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븐 블랙 블랙 캣(Black Cat) 14
앤 클리브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스코틀랜드의 외딴 섬 셰틀랜드를 배경으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흔히 작은 섬에서 모두 아는 사람뿐이고 전통적인 분위기를 가직한 곳은 도시보다 덜 위험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모두가 어려서부터 아는 사람들이고 모두 같은 학교를 다니고 서로 돕는 공동체 의식이 강하기 때문에 대도시에서 일어나는 유괴라던가 살인 사건은 절대 일어날 수 없고 범죄라고는 음주 운전이라던가 속도위반 정도가 대부분이라 경찰들은 아주 따분한 곳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사람이 사는 곳은 크든 작든 과거든 현재든 다르지 않다. 사람이 있다면 범죄는 일어나고 관계가 있다면 마찰은 피할 수 없다. 그것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작은 섬이라 모두가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진짜 이웃을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사이지만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고, 사랑해서 결혼해 부부가 되어도 서로가 몰랐던 부분을 발견하고 당황하고 이혼도 하고, 부모 자신 간도 서로를 잘 알지 못하고 스승과 제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마음조차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끼리끼리 모여 그 안에 끼지 못하는 이들을 왕따 시키며 자신들의 무지를 감추려고 하는 것 아닐까? 아니면 무리를 해서라도 그 끼리에 끼어보려고 애를 쓰거나. 이건 인간의 오랜 집단 최면의식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좁은 곳일수록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잘 드러나고 이 작품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약간 지능이 남보다 떨어지고 행동이 느린 노인은 8년 전에 한 어린 아이의 실종 사건에서 아무런 증거가 없었음에도 살인자로, 변태로 낙인이 찍혀 그곳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무도 상대해주는 사람이 없는 외톨이로 살고 있다. 그에게는 동창도 있고 이웃도 있지만 그들은 철저히 그를 무시하며 다시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그를 범인으로 단정 짓는다. 캐서린이라는 살해당한 학생은 아내를 잃은 슬픔에 겨운 아버지에게 방치되어 살며 스스로 아이들을 멸시하는 외지에서 온 특이한 아이고 그 아이와 어울려 다니던 샐리는 어려서부터 엄마가 학교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왕따를 당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 고통을 부모는 알지 못하고 친구는 이해하지 못한다. 샐리와 같은 경험이 있는 페레즈 형사는 사건을 파헤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 다른 섬에서 왔다는 이유로 따돌림 당하던 기억을 떠올리고 이혼 후 아이를 혼자 키우는 프랜은 학교에서 자칫 자신으로 인해 딸 캐시가 왕따를 당하거나 선생님한테 미움을 받을까, 주민들에게 따돌림을 당할까 걱정을 한다. 축제를 못 보면 아이들에게 창피를 당한다는 어린 아이의 말 속에 집단성의 잔인함을 엿볼 수 있다. 그러니 그런 곳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무 문제없는 평화로운 곳처럼 보이고 그 어떤 비밀도 없어 오히려 숨이 막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곳에도 비밀은 있고 실종도 있고 폭력과 방탕과 욕망과 가식과 허영과 오만과 미움이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사건을 후던잇 방식으로 끌고 가면서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와 마을의 배경에 공을 들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 사이에서 범인을 찾는 아가사 크리스티식 정통 영국식 추리소설의 틀을 따르면서 현대적 범죄는 왜 일어나는가 하는 와이던잇도 꼼꼼하고 짜임새 있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작품은 큰 반전이라든가 어떤 놀라운 장치 없이 고전적인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사이사이 문제점을 생각하게 여유를 준다. 역시 아가사 크리스티의 계보를 잇는 작가의 작품답다. 하지만 좀 더 날카롭게 다듬고 가지치기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느낀다.

 

갈까마귀 떼 날아오르는 이른 아침 눈 쌓인 벌판에 누워 있던 어린 소녀의 주검과 그래도 관광객을 위해 가장행렬을 하며 축제를 벌이고 사람이 죽었건 말건 술 마시며 흥청망청 파티를 하는 사람들과의 대비 속에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이 들리는 것 같이 느껴진다. 우발적 범죄든 계획적 범죄든 어떤 범죄가 더 잔인하냐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살해됐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사실을 우린 점점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 시를 올린다. 이 작품에 이 시가 얼마나 어울리는지 읽고 판단하시기를...

 

어떤 사람은 이 세상이 불로 끝날 거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얼음으로 끝난다고 말한다.

내가 맛 본 욕망에 비춰 보면

나는 불로 끝난다는 사람들 편을 들고 싶다.

그러나 세상이 두 번 멸망한다면

파괴하는 데는 얼음도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고 말할 만큼

나는 증오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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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07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앗, 벌써 읽으셨다니, 역쉬! 음, 전 얼음이 불로 인해 녹아서 망할 거 같아요.. 동해 온도가 남해만큼 높아졌다니까,...음, 그러니까 결국 불로 끝나는 확률이 놓은거군요.

물만두 2007-06-07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초롬너구리님 불보다 무서운게 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을 끄는게 물이잖아요.

2007-06-08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7-06-08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고치겠습니다. ㅜ.ㅜ 역자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을 계보를 잇는다고 멋대로 해서갰습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