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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실로의 여행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한 노인이 방에 있다. 그를 감시하는 눈들이 있고 그는 방에서 나가지 못한다. 그리고 그 노인, 미스터 블링크라 이름 지어진 이는 점점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그에게 찾아와서 기억을 하라고 한다. 그를 보살펴주는 여인도 등장한다. 하지만 미스터 블링크는 그곳이 어디인지 알고 싶고 왜 자신이 거기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만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물어보는 것조차 잊는다. 그는 자신이 그를 찾아오는 이들에게 죄를 지은 첩보원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사진을 보고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라고 하고, 자신이 어떤 책에 등장하는데 왜 그 작가가 자신을 거기 등장시켰는지 기억하라고 하고 의사는 책상 위의 미완성 글을 읽고 그 다음을 생각하라고 하고 변호사는 그가 많은 사건으로 고소된 상태라고 알려준다.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그런데 변호사가 등장하고서야 나는 무슨 이야기인지를 알게 되었다. 참 늦게도 알았다. 뭐, 어쩔 수 없다. 내가 이 작가의 책을 그리 많이 읽은 것은 아니니까.
이 작품은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심오한 성찰이 담겨 있다. 책을 다 읽고 과연 이 작가가 밤마다 어떤 꿈을 꿀 지가 무척 궁금해졌다. 이렇게까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것을 독자에게 다시 되돌려주려는 것은 또 무엇일까? 이런 위험부담 속에 쓴 글이니 허투루 읽으면 안 된다는 무언의 경고, 책으로의 협박, 그런 것일까?
작가에게나 독자에게나 그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작가는 글을 쓰고 독자는 읽는다. 작가는 창조를 하고 독자는 창조물을 받아들인다. 물론 작가와 똑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러니 어쩌면 이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저 기억실로의 여행은 비단 작가의 글쓰기 여행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독자의 글 읽기 여행일 수도 있고 다른 존재들의 여행일 수도 있다. 누가 아는 가? 나 같은 독자도 글 잘못 읽었다고 눈을 떠보니 어느 방에 갇혀 할머니가 되어 알약을 먹으며 간호를 받으며 똑바로 기억하라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그런 말들을 들을지...
아무튼 소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작가다. 그건 인정한다. 이런 작품은 낚여도 기분 좋다. 미스터리가 진화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것이면 만족한다. 작가건 누구건 뭐라 하건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