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과 다의 환상 - 상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아름다운 수수께끼와 과거라는 비일상으로의 여행을 벅찬 마음으로 끝내고 돌아왔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을 통해, 책 속에서 나는 여행을 떠난다. 그 속에는 동무도 있고 감동적인 기억의 기시감도 있다. 그들의 여행이 곧 나의 여행이 되는 것이다.

 

네 명의 대학 동창이 모여 한 섬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제 마흔이 다 된 중년의 나이에 접에 들어 가족을 뒤에 남기고 예전처럼 다시 만난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저마다 사연이 있다. 그들의 사연 하나, 하나가 그들의 이름으로 엮인 단원 속에 화자를 달리해서 등장한다. 예전에 애인이었던 남녀가 있고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사이도 있고 절대로 잃고 싶지 않은 우정을 간직한 사이도 있다. 이들은 그리고 각기 수수께끼를 가슴에 담고 있다. 꼭 한번은 만나서 풀고 싶은...

 

작품 속 친구들의 여행은 우리들의 현재에 대한 미련을 절감하게 만든다. 비일상이라는 말이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존재하기 힘들듯이 이 여행은 그래서 환상일 수밖에 없고 동경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에 세쓰코는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모두 가슴속에 담고 있는 숲이 있다고. 자기만의 숲을 어둠이 내려 사라지기 전까지 가꿔야 한다고. 그 숲이, 숲속의 안개가, 나무가 그리고 그 사이 사이 비추는 햇빛이 가슴 가득 느껴지는 것 같아 기분 좋게 책을 덮었다. 역시 노스텔지어의 마법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마술을 부리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꿈을 꾸리라.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제목이 黑과 茶의 환상일까 하는 점이다. 물론 내가 <삼월의 붉은 구렁을>의 내용을 잊어먹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다. 그렇다 해도 黑은 이 작품 내용과 잘 어울리는데 茶는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자사전을 조사하다보니 茶飯事라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뜻은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것처럼 흔히 있는 일을 말함. 옛날에 밥을 먹은 다음 차를 한 잔 마시곤 했는데, 특히 불가에서는 차와 선(禪)을 한 맥락으로 보고 다선일여(茶禪一如)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차 마시는 정신에 선이 있고, 선(禪) 하는 과정에 다(茶)의 도(道)가 통한다는 뜻. 즉 차 한 잔 마시고 밥 한 그릇 먹는 그 속에 삼매(三昧)의 도가 들어있다는 뜻이다. 이렇듯 불가에서는 다반사는 평상적인 일 속에서 도를 깨우치는 불심으로 향하는 방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일상에서 도를 깨우친다는 뜻이다. 그것은 이 작품 속에서 주인공들이 일상을 떠나 과거로의 여행을 통해, 흔히 있던 것들 가운데 수수께끼를 풀어간다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일상도 일상의 한부분일 테니까. 비일상의 실현이 어려워 도가 어려운 건가?

 

그래도 도가 별건가 싶다. 이렇게 나이 들어 소풍가서 마음속에 들어찬 응어리를 풀어버리고 잊었던 것을 기억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것, 그것이 현대인들이 원하는 도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고 나는 하나의 도를 깨달았다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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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25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다 리쿠' 라면 혹시 <밤의 피크닉>의 그 작가의 책이 맞나요?
저도 '도'를 깨우쳐야 할까봐요. ^ ^. --- 갑자기, "도를 아십니까?" 라면서 접근하는 모 종교인이 떠 오르는 건 참, 저도 점점 이상해져 가요.

물만두 2007-04-25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 맞습니다^^ 도를 아십니까? 제가 하고 다닐까봐요. 추리소설을 아십니까^^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