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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의 침묵 ㅣ 블랙 캣(Black Cat) 11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이미정 옮김 / 영림카디널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여기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새로운 목소리가 있다.’고 레지널드 힐은 말했다. 하지만 난 결코 새로운 목소리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작가의 등장, 낯선 무대인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난 미스터리는 반길 일이지만 이 작품을 우리가 봐야 할 이유는 알면서도 지금까지 되풀이되고 있는 일에 대해 조근 조근 풀어놓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사람이 실종 되도 아무도 찾지 않는 땅. 추위에 어디서 죽어 파묻혔다 해도 찾아낼 수 없는 그런 곳. 그곳에서도 개발은 이루어지고 도시는 확장되어간다. 그리고 땅은 파헤쳐지고 그 속에서 파묻힌 인간의 시신이 드러난다. 오래된. 하지만 고고학적 가치가 있을 정도로 오래되지는 않은 인간의 뼈가.
한쪽에서는 경찰들이 그 시신의 신원을 알아내려 예전 기록을 찾아다니고, 노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버지가 떠나 고독 속에 자라 자신을 망가뜨린 한 소녀가 임신을 한 채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 아버지는 딸을 찾아 헤매다 결국 찾게 되지만 딸은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리고 마지막 가운데에는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옛날 한 가족이 등장한다. 엄마에게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 아버지와 그것을 지켜보며 자란 세 아이가.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며 등장하지만 현재나 과거나 그다지 달라지지는 않았다. 변한 것은 조금 강화된 법이라고나 할까. 이 작품 속에서도 묻는다. 왜 여자 경찰이 더 많아지지 않느냐고. 나도 묻고 싶다. 왜 가정폭력을 여자 경찰들이 전담하게 하지 않느냐고.
진정한 침묵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가정폭력이란 그럴듯한 말로 한 영혼이 살해당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거대한 무덤같이 느껴진다. 우리도 그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 있으면서 행하지 않는 죄가 더 크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우리 인간의 죄는 얼마나 깊고도 크단 말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아내라는 이름으로,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자식이라는 이름으로, 부모라는 이름으로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을 누군가는 듣고 있다. 그러면서 애써 외면한다. 경찰을 불러도 소용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살인 방조자가 된다. 이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