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주의는 일반적으로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는 일찍이 마르크스가 인류사의 궁극적 목표로 제시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완전한 화해와 조화를 이루는 사회, 즉 공동체주의(communism)의 이념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이는 교조적인 공산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길을 달리하는 하나의 정치적 기획이다. ( "사회민주주의를 선언한다"에서 ) (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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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자. 처음엔 기대하던 내용의 책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이라는 거창한 제목에 혹하여 이제는 낡은 이념이나 습관으로까지 치부되는 옛? 사상들(NL / PD)까지 포괄한 좀 더 다양한 사회 구성체 논쟁들의 장을 만나보고자 찾은 책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는 다양한 소리가 없다. 이 책의 논자들이 다같이 얘기하는 '민주적인 논의'도 없다. 다만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북유럽식 사민주의"에 대한 일방적인 예찬만 넘쳐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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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익히 듣고 있던 "사회민주주의의 길"만이 진정 우리가 걸어가야할 길임을 설득하고 설명하고 이야기하는 속에 자연스레 마음은 그 길을 따라 걷지만 아니, 이건 아닌데, 다른 무언가가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같은 철모르는 386의 한계일까?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두가지중 한가지가 이런 느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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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가지는 결국에는 이 길 밖에 없으리라는 답답하고 불길한 예감이었다. 복지국가=사회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 목표에는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그 길로 가는 방법론에서 이 책에서 제안하는 방법들외에 좀 더 빠르게 이 땅에 뿌리내릴 수 있는 정책이나 방향들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중 이 책에서 신선한 기획?을 만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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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사회민주주의'를 위한 한국판 계급동맹 시론"(209~221)이라는 최병천의 글은 그 방향성의 옳고 그름은 차지하고라도 제기된 제안의 참신성이나 실현가능성, 논지 전개과정등에서 다른 원론적인 이야기와 확실히 차별화되는 프로젝트였다. '진보의 공간적 거점을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그가 제시하는 '지역'에의 몰두는 타당성이 있는 지적이며 그 '지역'의 의미에 대한 관점도 신선하다. 특히 '노동계급'과 '지역계급'의 인구학적 규모 비교(216)는 충격적이기까지 하였고 지금까지 왜 진보의 젖줄이 자꾸 선거현장에서 막혀버리고 무너지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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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논문 하나에 크게 의지할 바는 아니지만 이처럼 구체적이고 전망이 보이면서도 확실한 대안들이 실제 이루어져나간다면, 우리가 어떤 형태로 생각하던, 원하는 '진보'의 세상, '여럿이 함께'가는 그런 세상, '사회 민주주의 복지국가'도 하루빨리 다가올 것이기에 반가워하는 것이다. 결국 이 논문 한 편만으로도 이 책의 유용성을 다시 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앞으로도 제2, 제3의 '재정립'논쟁이 이어져 더 구체적이고 더 설득력 있는 안들이 쏟아져나오고 실천의 장에서 이뤄지는 날들을 기대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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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이제는 이런 책들이 출간되는 것도 고마워해야 되는 시절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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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3. 밤, '몽양 여운형' 선생이 더욱 그리워지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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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