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평생 독서 계획

클리프턴 패디먼의 <평생 독서 계획> 도착

뭔가 울 타이밍도 안 주고 개발렸던( 격한 표정 죄송, 속으론 울고 있음) 야구인지라,
할 말을 못한냥 목에 걸린 말처럼(그러나 욕은 술술), 나오지 못한 눈물이 어디 눈물샘가에 걸려있는듯한 우울한 밤  

열.독.중.이다.  

제작년에 가을야구 하고, 작년에 1승하고, 올해 2승했으니, 내년에는 3승하고 플옵 가고
그렇게 계산하면 우승은.... 무튼, 이것도 다 로감독님 있을 때 이야기.  

가을의 꿈을 접고, 책을 펼친다.
가을에는 독서! 가을야구의 짧은 꿈을 꾸고 나니, 남의 잔치는 응원할 기분이 싹 가신다.
작년처럼, 제작년처럼.  

무튼, 그래서 나는  

열.독.중. 

격하게 열독중이라 책이 마구 좋았다, 마구 싫었다 널띄고 있는데,  

일단 이 책  

서문은 패스를 권함.
보통 좋은 책은 서문부터 그냥 확 독자를 사로잡는 법인데,
공저자인 존 S. 메이저의 서문은 책 중에 나온 글도 지루하고, 뭔가 편협하고, 올드하다.   

<평생 독서 계획>은 4판까지 나왔는데, 이 번역본은 앞에 NEW 가 붙은 평생 독서 계획으로
새로운 작품들이 들어갔고, (동양고전들과 비교적 근대의 작품들이 포함됨) 존 S. 메이저가 공저자로 들어가서
새로 들어간 작품에 대한 글을 썼다.  

각각의 글 말미에 C.F. 혹은 J.S.M 이 나와 있는데,
난 왠지 첫문장만 읽어도 이건 C.F. 이건 J.S.M. 딱 맞출 수 있었어.

아마, 이 책을 읽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지 싶다.  

서문에서 실망하고, 하필 첫 글, 길가메쉬 이야기가 J.S.M.의 이야기라 마구 하품하며 후회하며
내 페이퍼에 낚였을 사람들에 뜨끔하다가 그 다음부터 나오는 C.F. 의 글에 눈이 똥그래지고, 입가에 미소가 씨익 걸린다.  

시대순으로 나와 있어서 초반 부분이 고전, 누가 이야기해도 지루하고도 남을 이야기인데도
클리프턴 패디먼은 품격있고, 와닿게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일리아스가 지금의 대규모 전쟁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싸움에 지나지 않지만, 전쟁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고, 그 대신 인간과 신들의  스케일이 더 중요하게 된다고 이야기하면서

" <일리아스>의 본질적 특징은 고상함이다. 고상함은 장엄함과 관련된 미덕인 만큼, 사소한 고상함이란 있을 수 없다."

라고 이야기한다.  

본질적 특징인 고상함, 그리고 그 고상함이 장엄함과 관련된 미덕이라고? 여기서 읽는 걸 멈추고, 한참 생각했다.
사소한 고상함이란 있을 수 없다.  

번역문이긴 하지만, 아름다운 세 문장이지 않은가? 아.. 좋다.  

<오디세이아>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갖가지 스토리들을 묘사하면서 이 스토리들이 이 서사시를 읽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잘 알려져 있다고 말한다.

"성경과 마찬가지로 이 서사시는 책이라기보다 우리 마음 속 한 구석을 영원히 차지하고 있는 가구같은 것이다.

<일리아스>를 읽고 나서 <오디세이아>를 집어 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세계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작품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조차도 다르게 들린다. <일리아스>에서는 무기의 충돌로 시끄러운 쇳소리가 나는 데 비해, <오디세이아>에서는 수많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바다의 속삭임 혹은 노호가 들려온다.

하지만 두 작품 사이의 차이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일리아스>는 비극적이다. 그것은 서구 문학에서 되풀이 되어 온 주제, 우리의 마음속에서 늘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은 아무리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일지라도, 불변의 운명이 지배하는 세상과 맞서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다는 주제이다. 하지만 <오디세이아>는 비극적이지 않다. 이 작품은 우리의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을 강조한다. 그 주제는 죽음과 맞선 용기가 아니라, 고난에 맞서는 지성이다. (...)

우리는 오늘날 다음과 같은 정신에 입각하여 이 작품을 읽어야 한다. 이것은 늘 곰곰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 어떤 비상한 남자에게 벌어진 모험들을 다룬 이야기이다. <오디세이아>의 무드는 <일리아스>의 그것에 비해 한결 이완되어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읽을 때 우리의 마음도 한결 느긋해진다."  

오디세이아와 일리아스만 이야기했지만 뒤로 나오는 그리스 비극 이야기도, 헤로도토스 이야기도 무척 재미나게 읽힌다.
읽을 엄두도 못 내는 고전에 대한 이야기가 이정도이면, 아직 남은 부분이 더 많지만, 이 책,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서문과 중간 중간 박혀 있는 공저자 J.C.M의 글이 지루할 뿐 아니라 편협하게까지 여겨져, 음모론까지 상상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스팩타클한 점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난 그냥 앤 패디먼 아부지. 패디먼가 수장. 으로 알고 덥썩 책을 구했지만,
저자 소개를 보면 대단한 이력이다.

작가, 비평가, 사회자, 독서가였는데, 라디오 퀴즈 쇼 '인포메이션 플리스' 의 사회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 쇼는 큰 성공을 거두었고, 패디먼은 당대 최고의 사회자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고. 술술 읽히고, 이렇게 하면 재미있는 포인트를 아는 그의 글발은 방송경험에서 온 것인가 싶기도 하다. 그가 사회자로 명성을 날린건, 그의 무지막지한 독서에 빚졌을테고 .. 뭐, 그런 선순환  

자주 인용되는 그의 말 중, 이전 페이퍼에도 썼던 것 같지만 .  

" 고전을 다시 읽게 되면 당신은 그 책 속에서 전보다 더 많은 내용을 발견하지는 않는다. 단지 전보다 더 많이 당신 자신을 발견한다. "  

나는 독서력이라는 걸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은 책이 재미가 없으니깐 안 읽는 것이고, 안 읽으면 어떤 책을 읽더라도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책 읽는 버릇' 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고, 왜, 재미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한달에 한 권이나 읽을까 말까인 대한민국 평균 독자이기도 하고,
한달에 2-30권은 거뜬히 읽어내는 나와 같은 독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도 '일리아스'니 '오디세이아'니 그리스 비극이니 하는 고전들 앞에선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133명의 작가? 작품? 여튼 133챕터가 나오는데, 이 중에서 몇 권이나 정독했는지 세아려 보기도 두려울 정도다.  

고전을 읽지 않는 이유는, 쉽게 읽히지 않고, 재미 없기 때문인데,
'왜' 재미있는지 아는 것, 이 책이 '왜' 중요한지 아는 것은 나같은 독자를 끌어주는 도움의 손길이다.

아, 오디세이아는 곰곰히 생각하는 걸 좋아하는 잘난 남자의 모험 이야기이구나, 일리아스에서는 무기 쇳소리가 나는데, 오디세이아에서는 바다의 노호가 들린다고? 오, 그렇단 말이지. 하며 유심히 보게 되는 것.

그렇게 재미를 느껴 보게 되고, '재미'를 찾고, 알게 되고, 나만의 재미를 찾게 되고,

클리프턴 패디먼의 말대로, 그렇게 책은 그대로지만, '나'는 변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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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06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06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사랑하는현맘 2010-10-06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이 책 읽어보려고 했는데 감사합니다.

하이드 2010-10-06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했던 거랑은 다르지만 (사실 별 생각 안하고 그냥 저자 이름만 보고 샀긴 하지만 ^^;) 기대 이상이에요.

엠제이 2010-10-06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

moonnight 2010-10-06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운명의 날' 페이퍼에도 댓글로 썼지만... 열독중이시군요. 토닥토닥;;;;

이런 얘기, 언질을 주셔서 고마워요. 눈치없는 저는 지레 첨부터 실망했을 것 같아요. 하이드님 덕분에 맘의 준비를 할 수 있겠군요. ^^

승주나무 2010-10-07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에 계속 걸리던 책이었어요. 이번 달 책 구입비가 위험 수위가 아니었다면 당장에 ㅎㅎㅎ

Beetles 2010-10-09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이드님이 리뷰쓰기전에 구입했네요 아쉽당 땡쓰투를 날렸어야는데염..^^음~~목차보고 전 정말 책을 안읽는 사람이구나..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