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식 정원으로 초대합니다.
처칠이 워낙 이렇게 많이 인용되는 인물이었던가, 하필 내가 읽는 책들에 주구장창 나오는 것일까?
시작은 <영국 정원산책>이었다. 표지에서부터 처칠의 정원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은 것이 9월 초. 9월 8일에 포토리뷰를 위해 책사진을 찍었으나,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
읽은 책이 <스티브 잡스처럼 프레젠테이션 하라>
여기에도 명연설가로서의 처칠이 잡스와 비교되어 잠깐이나마 언급된다.
그리고, 나는 제프리 베스트의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를 읽게 되면서, 제대로 처칠의 삶을 엿보게 된다.
그리고, 미루고 미루던 <영국 정원 산책>의 포토리뷰를 어제야 드디어 쓱,
그제 읽고 있던 (요즘 밤에 읽고 있는 책은 빌 브라이슨의 영국여행책이랑 <중세의 쇼핑>이다.)
빌 브라이슨의 책을 펼쳐 그젯밤에 읽던 곳을 펼치니, 거기가 212페이지였다.
어젯밤에 212페이지부터 읽으면서, 진짜 혼자 기가 막히게 놀랐다.
( 212페이지 전까지는 (아마도) 정원이야기나 처칠 이야기나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입구를 지나자 너무나도 갑작스런 변화가 찾아와 어안이 벙벙해질 정도였다. 분명 번잡한 소도시가 있었는데 문 하나를 건너니 전원풍의 유토피아가 있었다. 영국 화가 게인즈버러의 그림 속 인물들이 느린 걸음으로 걸어다닐 것만 같았다. 눈앞에는 구석구석 꼼꼼하게 꾸며진 2000에이커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듬직한 밤나무, 우아한 플라타너스, 당구대처럼 매끈한 잔디밭, 한가운데 위풍당당한 다리가 놓인 호수와 후세에 길이 남을 만한 바로크 양식의 작품들 다수가 있었다. 참 훌륭했다.'
오.. 바로크 양식.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건너갔다가, 영국으로 건너와 인기를 끌다가 18세기 무렵, 영국식 풍경 정원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 해체된 그 바로크 정원!
이라며 혼자 막 아는티를 내며 책을 읽어 나가다가
'나는 정원을 관통하는 굽은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 번잡스러운 방문객 주차장을 지나쳐 유원지 주변을 돌아다녔다. 나중에 다시 천천히 둘러볼 생각을 하고, 일단은 공원을 가로질러 반대편 출구로 나가 블라돈 간선도로로 들어섰다. 블라돈은 수많은 차량 통행의 무게에 부르르 떨며 지내는 존재감 없는 마을이었다. 하지만 그 중심부 교회묘지에는 윈스턴 처칠이 묻혀 있었다.'
아... 또 처칠이다!
처칠의 무던 이야기가 나오니 평전의 마지막에 처칠의 장례식 장면이 떠오른다. 국장으로 치루어졌던 처칠의 장례. 그리고 처칠의 관을 따르는 무리는 점점 줄어 들어, 처칠이 생전에 유언했던대로 블라돈에 가는 기차 안에는 두 명 정도인가만 함께 했는데, 그 중 한 명의 회상인 즉슨, 가는 길에 기억에 남는 사람이 두 명이 있다. 한 명은 시골길을 지나는데, 허름한 오두막 지붕에올라가 모자를 벗고 처칠이 마지막 가는 길을 향해 경의를 표하고 있던 농부, 그리고 또 한명도 가는 길에 본 다리가 하나 없는 상이 군인이 옛날의 군복을 차려 입고 나와 경례를 하고 있던 것. ( 가물가물한데, 여튼 그런 두 명이었던 걸로. 읽는 중에는 꽤나 울컥하는 장면이었다.) 이었다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데다 번잡스런 길을 한참 동안 걸어야 갈 수 있는 곳이었기에 과연 이런 고생을 하고 갈 필요가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착했을 때는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지는 호적하고 아름다웠다. 처칠의 무덤은 너무나 단촐해서 허물어져가는 비석 가운데서 열심히 찾아내야 했다. 무덤을 찾은 사ㅏㄻ은 오직 나 한 명뿐이었다. 처칠과 아네 클레미는 사람들의 눈에 거의 띄지 않을 정도로 조그만 묘지를 사용하고 있었다. 깊은 인상을 받은 반면,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비천한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도 죽고 나면 거대한 기념도서관이 세워지는 나라에 살았던 나로서는 놀랍기만한 일이었다. 허버트 후버 같은 전직 대통령도 아이오와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세계무역기구의 본부처럼 생긴 기념관을 갖고 있다. 그런데 영국에서 20세기 최고의 정치인으로 손꼽히는 위인을 기념하는 행위는 의사당 광장에 세워진 조촐한 동상 하나와 이 간소한 무덤이 전부였다. 칭송받아 마땅한 이런 절제의식에 깊이 감동했다.'
그리고 이 뒤로는 처칠의 멀버리 가문의 블렌하임 영지를 신나게 까주신다.
영국을 일주하는 빌 브라이슨의 여행에 등장하는 낯익은 인물이 처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도망쳐 있었다는 호텔에서 아가사 크리스티 이야기를 하고,
어디 갈까 고민하다 위건행 버스를 보고 조지 오웰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관심이 있는만큼 보인다고, 그밖에도 많은 것이 인용되었을텐데, 하필, 이렇게 '처칠'이 눈에 자꾸 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