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지


'내가 당분간 책을 또 사면 손목을 잘라야'에서 당분간은 며칠일까요? (20점)


나는 당분간이 며칠인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고민하다가 우선 달력을 꺼냈다.

그리고 오늘 날짜에 조그맣게 ‘손목 보류’라고 적었다.

퇴근 후 침대에서 책을 보다 보면, 관련 내용이 자꾸만 연상되고 부풀어올라서(학교 다닐 때 마인드맵좀 함) 필연적으로 또 다른 책을 사고싶게 된단 말야-라고 되뇌이며.


그 순간 내 손목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나는 무시했다. 내 몸은 늘 조금 과장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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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려던, 아니 쓰다 만 소설이 있다.

내용은 창피해서 말 못하지만 아무튼 사적인(=책적인) 이야기다.

얼마나 부끄럽냐면 딱 한 사람한테밖에 말 못했다.


아니다 정확히는 한 사람만 물어봐주었다.

하하.



*

따스하고 자그마한 공기 덩어리가 내 피부에 와 닿는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 위에는 물이 뿌려져 있고, 주변에는 장미꽃 향기가 풍긴다.


아무튼 그 대사는 "옛날 옛적에"로 시작해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로 끝난다.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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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모든 창작은 너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 감독 화가
배설 카타르시스 예술
모든게 연결된 끝말잇기 같다
시니컬해지기 너무 쉬운 세상 작은 따스함을 잊지말자는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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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던 소설이 영화화되면
너무나도 즐겁다

오테사 모시페그의 아일린이나
돈 드릴로의 화이트노이즈 같은

소설을 보며 내가 했던 상상이 영화와 어디까지 같은지
어디까지 다른지
정말이지 나에겐 너무너무 즐거운 일

금요일 저녁 앤헤서웨이가 나오는 아일린을 넷플릭스로 보며 행복에겨운 여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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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는 말했다. '지옥, 그것은 타인이다(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웹툰 제목이 여기서 왔나. 선언체로 쓰니 직관적).' 그렇다면 타인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타인은 현재로서는 외계인이다. 괜히 외계인이 영어로 Alien 일까. 결국 타인을 이해해보려는 노력은 외계인을 이해해보려는 노력과 맞닿아 있을 것이다.

사르트르와 레비나스는 실천적 견지에서 상반된 타자론을 제시한다. 사르트르는 타인과의 관계의 근본 형태를 갈등과 소외로 파악하지만, 레비나스는 사랑과 평화로 파악한다. 사르트르와 레비나스의 타자론은 각각 ‘권력적인 시선’과 ‘호소하는 얼굴’로 대표된다. 그들은 실천적 견지에서 대립각을 형성한다. 자기정립적 의지를 근간으로 하는 사르트르적 인간, 곧 ‘대자’는 타인의 권력적인 시선에서 현상학적으로 결정적인 타자 경험을 발견한다. 반면에 인본주의적 전통을 타자 철학적 견지에서 일신하려는 레비나스에게 인간을 참으로 인간답게 해주는 유일무이한 것, 곧 호소하는 타인의 얼굴이야말로 진정한 타자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르트르와 레비나스는 타인을 절대적 타자로 파악한다. 특히 그들에게 절대적 타자로서 타인은 여느 대상과 달리 인식 가능성을 초월하며, 세계의 저편에 위치하고, 주체를 수동적인 처지로 몰아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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