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 토론 쟁점
이들의 토론은 오늘날까지도 세계 지성계에 암암리에 자리잡고 있는 사유와 지향의 큰 대립각을 생생히 보여준다. 쟁점은 여러 전선에 걸쳐 있다.
첫째, 인류의 진보 자체를 논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또 만일 논한다면 어떤 영역에서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이냐는 것도 쟁점이다. 찬성 팀은 인간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지 여부는 물질적 영역의 객관적 지표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반대 팀은 그런 계량적인 지표로는 쉽게 포착되지 않는 비물질적 영역을 거론한다. 상대적 박탈감, 실존적 불행, 정신적 갈등과 고뇌 같은 것들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결함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둘째, 과학기술에 대한 입장 차이다. 찬성 팀은 과학기술의 힘을 긍정하고 낙관하는 반면 반대 팀은 그 이면의 파괴적인 위험성에 더 주목한다. 찬성 팀은 과학기술의 성과가 계속 누적될 것이라고 믿는데 반해 반대 팀은 그것이 언제라도 지금까지의 성과마저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위험성을 함께 키워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셋째, 인류 차원의 진보와 개인적인 삶의 행복이 비례하느냐의 문제이다. 인류 차원에서는 아무리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해도 개인에 따라서는 그런 혜택에서 차별되거나 배제될 수 있다는 점이다.
넷째, 진보에 대한 기대도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자인 러디어드 그리피스가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어떻게 보면 진보를 둘러싼 입장 차이는 유리잔의 물이 ‘절반이나 찼다’고 볼 것인지, ‘절반밖에 차지 않았다’고 볼 것인지의 문제일 수 있다. 여기에는 평가의 문제를 넘어 세상에 대한 태도와 철학의 차이가 존재한다. 찬성 팀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인류의 삶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점진적인 낙관론을 펴는 반면, 반대 팀은 끝끝내 인간의 근원적인 결함과 불완전성을 문제 삼는 방어적 비관론에 기운다.
마지막으로, 토론을 총평하는 글을 쓴 앨리 와인이 언급하듯이, 추론의 타당성이라는 논리적인 문제도 있다. 그러니까 설사 지금까지는 상황이 좋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자가 현대 문명의 연결성과 복잡성의 증가에 주목한 것은 적절해 보인다. 인류는 전례 없이 강력해지면서 동시에 취약해지는 길로 가고 있지는 않느냐는 반문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른바 ‘블랙 스완’의 문제다. 개연성은 높지 않더라도 현실로 닥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을 우리가 키워가고 있지는 않은가 말이다.
_『사피엔스의 미래』 출간 전 연재 4회에 계속
『사피엔스』의 미래 [출간 전 연재]는
총 8회의 걸쳐 진행될 예정이고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회 - 옮긴이의 말 #1 번역을 하게 된 계기와 이 책의 주제는?
2회 - 옮긴이의 말 #2 멍크 디베이트는 어떤 행사이고 양측의 주요 주장은?
3회 - 옮긴이의 말 #3 토론의 쟁점은?
4회 - 옮긴이의 말 #4 토론 관전 포인트와 감상평은?
5회 - 사전 인터뷰 #1 알랭 드 보통과의 대화
6회 - 사전 인터뷰 #2 말콤 글래드웰과의 대화
7회 - 사전 인터뷰 #3 스티븐 핑커와의 대화
8회 - 사전 인터뷰 #4 매트 리들리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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