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 개정판, 원문 영어 번역문 수록 현암사 동양고전
노자 지음, 오강남 풀어 엮음 / 현암사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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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학자가 풀이하는 노자는 어떨까, 단순한 호기심은 책을 읽고 난 후 그동안 얼마나 노자 사상을 오해했는지 뼈아픈 각성으로 뒤바뀌었다.

 

그저 자연과 하나가 되고, 마음을 비우자는 의미로 노자를 이해했던 단견은 순식간에 뿌리째 마르고, 진리는 어떤 식으로든 통한다는 깨달음으로 대치된다.

 

노자는 '도'는 모든 것의 근원이 되므로, '도'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일 수 없다고 정의내리면서, 그릇처럼 비어 있어 얽힌 것을 풀고 부드럽게 하며 하나가 되게 하고, 고요하게 하는 깊은 그 무엇이라고 명명한다. 더욱이 하늘과 땅이 영원한 이유는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지 않고 참삶을 살기 때문인데, 이처럼 자신을 비우는 것을 통해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 성인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도는 결국 '없음의 세계'를 통해 '참 있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는 성찰이 돋보인다

 

도를 온전히 이해하면, 악과 선을 구분하는 이분법 세계 너머를 통찰하게 되므로,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은 오히려 낮은 인식의 삶임을 깨닫게 된다는 점도 지적한다. 구분하고, 가르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그것 자체가 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 그러므로 소박하게
있는 그대로를 감사하며 모든 일을 하고도 겸손하게 물처럼 자신을 내려놓는 것, 그것이 도를 지향하는 이들의 미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총 81장의 짧은 글을 통해 남성다움을 알면서도 여성다움을 유지하고, 흰 것을 알면서도 검은 것을 유지하며, 영광을 알면서도 오욕을 유지하라며 단편적인 시야를 걷어내고 통합의 시선으로 보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다듬지 않는 통나무처럼 이름을 갖지 않도록 멈출 수 있는 의지, 억지로 하지 않으나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무욕, 웃음거리가 되는 역설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지혜, 하루 하루 쌓는 대신 하루 하루 없애 가며 함이 없는 지경에 이르는 자세, 갓난 아이처럼 하루 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통한 영원과의 합일, 선한 사람이나 선하지 않은 사람까지 모두 끌어안는 포용성, 도의 참지혜를 결단하고 실행하는 실천력, 공평, 균형, 조화를 추구하는 공영의 추구 등을 설명한다.

 

모든 것의 근본이므로 이름을 붙일 수 없다거나 선과 악을 넘어서는 영원성의 존재, 도로 채우고 자신을 비우는 원리 등은 흡사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과 닮았다.

 

동양의 도덕경과 서양의 성경이 닮았다는 점을 인식한 저자의 해박한 주석과 유려하면서도 소담한 풀이는 독서의 묘미를 한껏 끌어올린다. 도덕경을 가까이 두고 읽기를 반복했다는 석학들의 진의에 공감하게 된다고 할까.

노자님이 말하는 근본 뜻이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을 잊어버리고, 생래적 무지 속에서 희희 낙락하면서 천진스럽게 살아가게 하여 독재자가 마음 놓고 억압하고 착취하기 쉬운 사회로 만들라는 것일까? 그보다 우리에게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받들고 있는 그 훌륭하다는 것, 귀중하다는 것, 탐날 만하다는 것이 진정으로 바람직한 궁극 가치인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가져 보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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