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 명화로 보는 시리즈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이선종 엮음 / 미래타임즈 / 201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 지인의 모친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고인이 기독교인이어서 모든 절차를 교회에서 주관하였고, 발인하는 날 [천국환송예배]가 드려졌습니다. ‘만나보세 만나보세 천국에서 만나보세 순례자여 예비하라 늦어지지 않도록.....’라는 찬송가 가사가 이제 그 길의 순례자가 된 고인을 실은 영구차 앞에서 먹먹한 슬픔과 이별의 탄식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이렇듯 이 땅에서의 삶과 죽음이 천국으로 향하는 지상의 순례자라는 관념으로 구체화돼서 교회의 의식에까지 깊게 자리하게 된 것은 아마도 중세, 기독교 문화의 정점에 있었던 신곡의 영향이 컸으리라고 보여 집니다. 문학사적으로 단테야말로 지옥과 천국을 향한 최초의 순례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신곡의 세계는 깊고도 어렵습니다. 단테 이전 전 세대의 신화와 정치 사회사가 배경에 자리해 있기도 하고, 단테에게 영감을 주었던 학자 예술가들 그리고 단테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형성했던 수많은 종교인 정치가들이 등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신곡의 세계가 이 세상이 아닌 알려지지 않은 저 쪽의 다른 세상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곡은 그 등장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됐습니다. 특히 화가들은 신곡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이미지를 형상화하는데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이 책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은 그 이미지들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명징하고 세밀하게 그려낸 귀스타브 도레와 다소 모호하고 추상적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지만 그 밖에 서양 미술사의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신곡을 만날 수 있게 해 줍니다.

 

인생은 단테가 걸어간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에 이르는 순례의 길입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벗어날 수 없는 길입니다. 따라서 신곡을 만나는 일은 불편하지만 일생에 한번은 마주쳐야 할 길입니다. 거기에 신곡의 위대성이 있지만 독서의 어려움도 따라옵니다. 단순히 활자로만 만나는 신곡은 지루하고 난해한 길입니다. 신곡의 처음 구절처럼 인생의 어두운 길에 들어선 기분이 듭니다. 그러나 명화를 감상하며 설렁설렁 지옥 여기저기의 모퉁이를 돌아 결국 천국에 이르러 하나님의 빛을 마주하는 길은 순례길의 모호성과 난해함으로부터 해방되는 기쁨을 줍니다.

 

겨울이 깊어갑니다. 고전의 향기가 그리운 이 계절에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과 함께하는 길은 한겨울 정오의 햇살처럼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순례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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