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어보지 말 것 - 미니어처 왕국 훔쳐보기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 그늘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이벤트를 통해 도서를 증정받았습니다


일본 미스테리 소설은 늘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흥미로운 소재, 스릴 넘치는 전개, 예쁘고 소중한 것들, 지나간 것들을 향한 그리운 마음

그리고 자기자신을 움켜쥐고 있는 사건과 시대에서 벗어나 어디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고 그 모든 것이 자신과 상관없어질 때쯤 돌아와서 그것을 그리워할 수 있는 예쁘고 아련한 마음.

<열어보지 말 것>에는 그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수해와 빈 상자>나 <상자 속 왕국>처럼 상자 속에 왕국이 있다는 설정은 매혹적이다. 현실의 고단함과 괴로움으로 인해 도피처를 찾는 사람에게도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지루한 사람에게도 솔깃한 이야기다. 비슷한 방식의 이야기를 많이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은 절박한 마음은 현실의 각박함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절대 지루해질 수 없다. 내가 있을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디론가 자신이 있을 곳을 향해서 그것이 상자안일지라도 들어가려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들어간 상자 안에서는 정말로 놀라운 모험과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그 안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인생, 그리고 이상한 것들까지 쓰네가와 고타로는 적재적소에 미스테리, 살인, 여행과 떠돌이 생활, 가끔은 속시원한 이야기까지.


그렇지만 그렇게 떠돌게 된 사람들의 역사는 어떻게 될까?


좋아서 모험을 선택해 떠나게 된 사람도 있지만 강제로 자기가 살던 땅과 시대에서 떨어져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서글픈 면이 있다. 자신이 본래 태어난 시대와 사람들에게서 강제로 떨어져버린 사람들은 준거집단을 잃는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표현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자신을 알아줄 사람들은 이미 멀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역사에서 분리된 역사적 사건은 코메디가 되어버렸다. <정지된 평원>에는 전쟁중인 30만명이 그 자리에서 산것도 죽은 것도 아닌채로 굳어버렸다. 모든 사람이 그 30만명을 그저 살아있는 화석이 되기를 원하며 그것을 그들의 시대와 맥락대로 돌려놓기를 포기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평화를 유지한다. 그게 평화인가? 전쟁을 하지 않는 것만이 평화라면 그것도 평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냥 지저분하다고 방을 정리하지 않고 이사가는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이게 맞아? 웃어넘길 수밖에 없다.


그러면 개인은 어떤가?


흡혈귀는 머물곳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떠돌며 광매를 먹고 돌이 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사랑받는 것 역시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들은 영원히 살지만 소중한 것을 모두 잃고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살아가는 것은 살아가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지만 자기가 잘 지내던 모든 것에서 강제로 떨어지게 되는 것은 그리고 그것을 나중에 그리워하는 것은 삶을 유령처럼 만들어버린다. 오래 살아갈뿐인 유령, 하지만 소중하고 아련한 기억은 남아있는 그대로다.


일본 소설들은 재미있다. 수준이 높고 잘 가다듬어져있어 언제 어떻게 읽어도 신나고 즐겁다. 잘 가공된 미스테리가 주는 쾌감, 아름답고 낭만적인 소재들, 어디론가 탈출하거나 내던져져서 온 세상을 떠돌게 된 사람들. 자기 시대나 공동체의 역사에서 빠져나와 다른 역사를 향해 나아가고 영원히 도착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의 낭만적인 이야기.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판타지에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면 쓰네카와 고타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이렇게 살 겁니다 어느곳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낭만화된채로, 연결되지는 못하지만 화석처럼 남아서. 영원히 어디에도 연관되지 못하고 개인과 개인의 미약한 애정에 기대어서 그렇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란의 여름 캐드펠 수사 시리즈 1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부터가 도발적인 반란의 여름은 의외로 피서같은 시원함이 있는 책이었다. 17권에서는 다소 쓸쓸한 기분이 드는 엔딩이었는데 18권에서는 다시 중세를 배경으로 한 역사추리소설의 기깔나는 도입부로 시작한다. 중세 배경의 권력암투 게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초반을 달리다보면 충성심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


왕과 왕의 아우

왕과 가신

가신이 보여주는 충성심

눈 앞에서 섬기는 자를 잃은 기사의 고통과 복수

아버지가 자신의 영달을 위해 사랑하지만 방해되는 딸을 치워버려야 하는 상황


너를 사랑하지만 이런 건 좀 너무하지 않아?

너를 사랑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이 무슨 잘못을 하더라도 나는 끝까지 당신을 섬길 것입니다.

당신을 죽인 자를 찾아내어 복수하겠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내가 방해된다면 나는 도망치겠다. 어디로든 가겠다.


이런 여러가지의 충돌 모두 결국 사람이 사람을 따르는 충성심, 로열티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람이 사람을 따르는 것은 그 기저가 어떻든 보는 것만으로도 충족감을 준다. 어리석은 사람이든 똑똑한 사람이든 그 마음의 충실함을 보고 마음의 끝으로 내닫는 그 모든 행동들이 포로와 인질협상, 전쟁과 거래, 충성심과 복수와 어우러져 중세 전쟁터의 한복판에 있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여름을 배경으로 한 이 반란의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다보면

사건사고라면 어디든 빠지지 않는 캐드펠 수사의 체력에 감탄하게 되기도 한다. 아니 전쟁터나 수색에서도 어떻게 빠지지 않고 이렇게 다니시는거죠. 옆을 따라 걷는 것을 때에는 그저 감탄만. 캐드펠 수사가 고생할수록 이야기가 재밌어져서 앞으로 남은 권수만큼에서도 이렇게 고생해주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욕망의 땅 캐드펠 수사 시리즈 17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단 참여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욕망의 땅을 읽으면서 캐드펠 시리즈에서 기대하지 않은 키워드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부동산 이슈. 부동산 거래는 아니고 말하자면 교환이나 증여에 가까운 형태다. 수도원에 아주 좋은 땅이 교환의 형태로 귀속되는 일이 생겼다. 그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자는 얼마전에 수도사가 된 루알드 수사인데 그는 수도사가 되기 위해 자기 아내를 억지로 떠났다. 재산도 가족도 버리고 수사가 되기 위해 떠나자 그의 아내는 길지 않은 시간 뒤에 그의 집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이제는 수도원의 것이 된 땅에서는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뼈밖에 남지 않은 그 여성의 시신에서는 어쩐지 루알드 수사의 부인이 연상되는 길고 검은 이방인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루알드 수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의 소망은 단순하다. 신의 사제가 되어 인생을 종교에 바치고 밝고 깨끗한 마음으로 섬기며 살아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그를 온 마음으로 사랑한 한 사람의 삶은 완전히 파탄나게 되었다. 


하나의 가정은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공동체이다. 

경제공동체이기도 하고 안식처이기도 하며 한 집안을 크게 일굴 수 있는 작은 씨앗이 되기도 한다. 이방인의 몸으로 단 한사람을 바라보고 결혼하여 주변과 제대로 된 커뮤니티를 형성하지도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남편은 신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버렸다. 자기가 밟은 땅에서 온전히 살아갈 방법을 잃은 한 여자의 삶을 읽는 기분은 다소 쓸쓸하다. 


땅은 하나의 장소일 뿐이고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중요하다. 살아갈 공동체를 잃은 사람은 고작해야 그 땅에 묻힐 수 있을 뿐, 삶을 살아내지는 못했다. 신을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인 행동일 수 있었는지 되짚어봐야 이미 죽어버린 사람의 앞에서는 헛되다. 


땅이라는 소재로 이렇게 공동체와 사랑, 삶을 살아갈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과 그저 이렇게 사는 것을 끝내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하는 선택에 대해 읽을 수 있는 점은 재미있었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이렇게 권이 허투르지 않고 전부 각자의 깊이를 가지면서 재미가 있다. 21권까지밖에 남지 않았다니 아껴 읽고 싶은 마음과 빨리 전부 읽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싸우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밀실 황금시대의 살인 - 눈의 저택과 여섯 개의 트릭
가모사키 단로 지음, 김예진 옮김 / 리드비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단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밀실 황금시대의 살인>은 좋아할 사람들이 딱 정해져있는 책이다.


첫 번째로는 추리게임 예능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더 지니어스, 크라임씬, 여고추리반, 데블스 플랜 등등

독특한 캐릭터성을 가진 인물들이 게임을 하며 눈 앞의 문제상황에 대응해나가는 구조를 가진 예능을 좋아해온 사람들이라면 <밀실 황금시대의 살인>은 최근에 나온 미스터리 중에 압도적으로 재밌는 소설일 것이다. 


두 번째로는 원래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미스터리를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도 재밌지만 정말 미치도록 좋아해서 이것저것 다 읽었으며 예전에 절판된 책도 읽었고 최근에 나온 책도 읽었으며 고전이고 현대고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미스테리를 읽어온 밀실미스터리 광인들이라면 이 책은 놀이동산처럼 신나는 놀이터 같은 소설이다. 그동안 보아온 고전 미스터리에 대한 오마주라든가 어디서 많이 봤던 캐릭터와 대사, 흔히 나오는 트릭들의 심화과정을 모아놓은 모습들은 재미있는 것 다음에 더 재미있는 것,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 다음에 더더더 재미있는 것이 등장하는 것 같은 흥분을 전달한다. 


세 번째로는 머리아픈 소설은 싫고 쾌적하고 단순하고 명쾌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람 많이 죽는 미스터리 추리 소설에 단순명쾌가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이 소설은 정말로 단순하고 명쾌하고 재미있다. 코난이나 탐정 김전일 시리즈 만화를 보면서 머리아파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왜냐하면 코난과 김전일이 다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탐정이 아주 많아 수준으로 모든 사람들이 미스테리에 대해 쭉쭉 설명해준다. 심지어 살인당하는 사람들마저도!

그러다보니 추리가 어렵거나 복잡한 것이 아니라 쭉쭉 읽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 복잡한 트릭들이 술술 풀려나가는 쾌감이 있다. 밀실추리? 어려운거 아냐? 이런 생각을 했던 사람들에게도 아 이 미스터리 재미있네, 또 읽어봐도 좋겠네 싶은 단순 짜릿 명쾌 도파민 소설이다. 


사실 이 책을 좋아할만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긴 했지만 역시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즐겼던 사람은 아무래도 작가가 아닐까 싶다. 자신이 좋아하는 미스테리에 대한 것, 그중에서도 밀실살인에 대해 이렇게나 웃기게 쓸 수 있다니. 읽으면서 계속 웃음이 터졌다. 밀실살인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사람이 쓴 밀실살인 유우머가 가득찬 소설 <밀실 황금시대의 살인>을 더운 여름 짜릿한 도파민 소설로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이벤트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친구들은 말했다. 

아직도 다카노 가즈아키를 읽지 않았느냐고.

나는 세상에 얼마나 재미있는 책이 많은데 한 작가를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이렇게 놀림받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를 읽고 나서 생각했다. 

나는 바보였고 친구들은 천재였으며

다카노 가즈아키는 신이다..


추리소설과 괴담, 미스테리를 좋아하지만 주력으로 읽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소재의 특성상 불쾌한 이야기가 되기 쉽기 때문이다.

살해당한 사람을 둘러싼 이야기는 추잡하거나 찝찝해지기 쉽고

복수와 증오는 억울함과 한의 정서를 담고 있으며 

세상에 제때 알려지지 못해 미해결로 남은 사건들은 

사회의 행정력이 닿지 못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 원망이 해결되지 못한채 괴담으로 전락해 사람들의 입방아에나 오르내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카노 가즈아키의 죽은 자에게 입이 있다는 그렇지 않다.

죽은 자에게 입이 없다는 관용어구를 비틀어 만든 표제작의 제목만 보아도

작가가 가진 자신만만함을 느낄 수 있다. 

추리와 미스테리가 가진 장르적 특성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이해를 잃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균형의 추를 잃고 악인을 옹호한다거나 지나치게 긍정하는 방향으로 쏠리는 것이 아니다. 개인들의 싸움이나 원한, 사회가 만들어낸 균열을 직시하면서도 그 안에 있는 것이 인간이며 인간이 가진 면모들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성실한 방향으로 미스테리를 풀어낸다. 

장르 문법에 능숙하고 이야기의 맥락에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독자들은 이 괴상한 이야기가 어디까지 달려갈지 모르는채로 화자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같이 뛰게 된다. 그 끝에 나오는 엔딩에 가서야 이런 이야기였어! 하고 깨닫게 되는데 그 결말이 기분나쁘지가 않다. 이야기의 끝까지 열심히 함께 달려간 독자들에게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더 재미있는 결말까지 준비되어 있다. 


개인과 사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커뮤니티와 더 나아가 사회와 국가를 바라보는 넓은 시선까지 느껴지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신작은 이번엔 무려 일본보다 먼저 발매되기까지 한다. 일본 작가인데 한국에서 먼저 책이 나오다니. 이런 특별한 이벤트를 놓치지 않을 수 있어서 기쁘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친구들이 왜 다카노 가즈아키를 아직도 읽지 않았느냐고 말한 이유를 알았다. 그의 다른 책들도 빨리 읽어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