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2학년 때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입문]을 읽고서 심한 충격에 휩싸여 그날부터 얼마간 친구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방어기제의 하나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했다. 어떻게 이렇게 딱딱 들어맞는가...그러다 말았다.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사람은 안 보이고 방어기제만 보였던 것이다. 

읽는 내내 불편함을 느꼈다.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택한 정신분석이나 여행은 저자에게 유익했을 것이고, 권할 만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사람에 대한 태도는 내가 처음 프로이드를 만났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다. 심리적 안정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 기대려고 하는 의존적인 인간에게 내가 좀 차갑게 해도 괜찮다. 왜냐하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고 그가 성인인데도 의존성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니까. 저 사람은 친절하구나, 심리적으로 무엇을 보상받으려고 저러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는 태도.

저자가 인용한 말처럼 "우리가 남에게 보이는 관심이란 대체로 방어의식이거나 시기심이거나 의존성이거나 투사의 감정 중 하나이기 십상"(p.141)이지만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감정의 동요 없이 수용"할 수 있는 것이란 과연 어떤 상태인가? 이런 상태를 용기라고 표현하지만 그렇게 단순할까? 저자가 인용한 "혼자 있기"를 보자.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격리된 극단적인 방어의식 또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분리와 개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상태 둘 중의 하나만일 수 있을까? 태어나서 3년 안에 완벽한 보살핌과 완벽한 조건에서 자란 사람이 없을진대 어떻게...? 아마 저자처럼 정신분석을 받고 나면 좀 덜할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걸 안 받아봤으니...

저자는 이 심리여행을 통해서 남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타인의 어떤 말이나 행동은 전적으로 그들 내면에 있는 것이며, 무엇보다 인간은 타인의 언행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존엄성을 타고난 존재라 믿게 되었다(p.294)"고 한다. 남의 말이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게 된 것이 타인만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태도는 이 책의 일관된 태도로 내내 나를 불편하게 한 것이지만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존엄성이란 자기 존재에 대한 사랑 때문에 훼손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될지 모를 때, 타인이 자신의 삶에 너무 간섭한다고 느낄 때, 부질없는 일에 분노하고 있을 때 , 혼자서는 도저히 아무 것도 못할 때 자신을 한번 분석해 보는 데는 유익하다. 그러나 너무 심하게 남을 분석하지는 말기를. 행여 아파하는 사람이 안 보이고 아파하는 이유만 보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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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0-26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언젠가 이 책을 읽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페이퍼를 올린 적이 있거든요.
리뷰를 쓰는 것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답니다.
추천 누릅니다.

이누아 2005-10-2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전 서재지인의 리뷰를 보고 읽게 된 책이라 읽기 전부터 읽고 리뷰를 써야지 하고 생각했던 책이라 리뷰를 올렸습니다. 즐겁게 읽지 못한 책에 대해서는 리뷰를 안 쓰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그러니까 감동적으로 읽은 이들의 리뷰가 훨씬 더 많아서 선택이 좀 헷갈리게 되기도 하는 듯합니다.

바로 그 서재지인, 달팽이님/님이 별 다섯 개를 하지 않은 까닭을 생각하고 좀 신중했어야 했는데...제게는 좀 안 맞았어요.^^;;

비로그인 2005-10-2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뒷통수를 치는 마지막 문장..공감합니다.
사실 전 이 글을 쓴 작가의 <푸른 나무의 기억>이던가요, 그 소설을 읽었는데 역시 심리적인 흐름을 쫓아 쓴 글이었어요. 근데 물살의 흐름처럼 생각의 변화와 힘을 원하던 제게 그 책은 너무 개인적인 우울한 내면에 고여 있어서 읽고 났더니 일주일만에 그 어떤 줄거리도 생각이 나지 않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그닥 신뢰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 <외출>이란 소설도 그냥 외면하고 말았어요..

이누아 2005-10-25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돌님, 서른 편도 넘는 리뷰 중에 유익하게 읽으신 분들이 더 많던데 저랑 안 맞았나 봐요. 님에게도 이 분 글이 흡수가 덜 되는 그런 류였나 보네요.

혜덕화 2005-10-26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형경씨의 소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을 읽고, 무척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자신을 그렇게 분석해서 정확하게 볼수 있는 눈에 대해 놀랐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저 자신을 돌아보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된 책입니다.
이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남을 분석하던 그 시선을 자신에게로 거두어 들이면 더 많은 세상사의 답을 알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불기자심이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이누아 2005-10-26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브랜든 베이스의 [치유, 아름다운 모험]에서의 치유를 할 때 왜 서른이 넘은 나에게 서너 살의 내가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마침 그때 서재지인의 리뷰를 언뜻 보고 3살 이전의 경험이 주는 영향력에 대해 적혀 있는 책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타인의 힘이 거의 절대적이라 할 만한 나이가 "왜" 인생에서 그토록 중요한가 하는 문제는 전생이나 업의 개념 없이 설명하기는 어려운가 봅니다. 이 책은 그 시기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제가 초점을 잘못 맞춘 것이지요. 저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분석을 이용한 저자에게는 동감했습니다만 타인에 대해 분석을 가하는 모습에서는 오히려 자신의 타인에 대한 태도에 대해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책에도 많은 분들이 감동을 받고,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리뷰를 쓰셨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기호에 따라 책이란 유익함도 되고, 불편함도 됩니다. 제 경우엔 후자가 되었지만요.

예! 불기자심_()()()_

2005-10-26 1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05-10-26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4:31속삭이신 분>저도 꾸벅!

달팽이 2005-10-27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불편함 공감합니다. 마지막 문장에 저도 감동...

이누아 2005-10-27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팽이님/님도 좀 불편하셨군요.^^
로드무비님/페이퍼를 찾아서 읽어 봤어요. 님의 자기애가 좋아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