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완벽주의자 - 내 안의 가혹한 비평가를 버리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법
엘런 헨드릭슨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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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년 이상 불안과 완벽주의를 연구해온 임상심리학자 엘런 헨드릭슨의 『유연한 완벽주의자 How to Be Enough』. 아마존 임상심리학 분야 베스트셀러 1위, 〈오프라 데일리〉  2025년 베스트북으로 선정된 책입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완벽주의자들의 내면을 가까이서 관찰해온 사람이며 동시에 자신 또한 완벽주의자로 살아온 연구자입니다. 완벽주의를 단순히 고쳐야 할 결함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완벽주의는 성실성, 집중력, 책임감, 고도의 자의식이라는 인간적 강점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방향성입니다. 완벽주의가 나를 이끄는 등불이 될 수도 있지만, 방향을 잘못 잡으면 그 불빛이 나 자신을 태우는 횃불이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은 내 안의 가혹한 비평가를 버리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유연한 완벽주의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유능함을 유지하되 자기비판과 비교,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저자는 완벽주의의 본질을 자기비판의 습관화로 봅니다. "더 해야 해, 더 잘해야 해, 더 나아져야 해, 더 완벽해야 해."라며 겉으로는 모든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듯 보여도, 속으로는 매번 패배감에 시달리나요?


완벽주의자는 언제나 더 나은 나를 쫓지만, 역설적으로 그 여정은 자기혐오로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타인보다 앞서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기준에 미달하면 존재 가치가 사라진 것처럼 느낍니다. 내면의 비평가가 처음엔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결국엔 주인의 목을 조르는 괴물로 변하는 겁니다.


알래스카 청소년 자살 사례 연구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부모의 62%가 세상을 떠난 자녀를 "완벽주의적이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숨기며 자신이 없어지면 세상이 나아질 거라 믿었다고 했습니다. 완벽주의가 타인을 만족시키는 수단이 아닌, 존재 자체를 증명하기 위한 절박한 방식으로 작동할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책에서는 자기비판, 미루기, 실수 곱씹기, 남과의 비교, 불안, 과도한 책임감, 통제 욕구 등 완벽주의자의 특징과 함께 완벽주의의 뿌리를 파헤칩니다. 완벽주의가 단일한 성향이 아니라, 여러 감정과 행동 패턴이 얽혀 있는 복합적 구조라고 설명합니다.


유연한 완벽주의자를 만드는 방법으로 7가지 변화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로 자기비판을 멈추고 친절에 익숙해지라고 합니다. 형편없다는 평가 대신 이 일을 더 잘하려면 무엇을 바꿀까라는 정보적 사고로 전환하는 겁니다. 생각과 자신을 분리하여 생각을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는 기술입니다.


저자는 완벽주의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성과의 과평가라 부릅니다.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업적을 자기 존재의 증거로 삼습니다. 하지만 일은 일이고, 성과는 성과일 뿐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과평가는 인생의 모든 순간을 존재 가치를 건 시험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수재라는 평가에 집착하던 대학생의 사례를 소개하며 가치관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강조합니다. 배움의 즐거움이라는 가치에 집중하면 성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실패의 순간조차 배움의 일부로 재구성되는 겁니다.


대부분의 완벽주의자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저자는 의무는 에너지를 소모시키지만, 의미는 에너지를 회복시킨다고 일깨워 줍니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로 전환할 때 우리는 피로 대신 활력을 경험합니다. 완벽주의자의 딱딱한 자기 규칙이 유연한 자기 서약으로 바뀌는 지점입니다.


미루기는 완벽주의자의 대표적 증상입니다. 저자는 미루기의 본질을 실패에 대한 공포로 분석합니다. 제대로 못할 바엔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행동을 마비시키는 겁니다.


기분이 좋아져야 시작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깨고, 시작해야 기분이 좋아진다는 역전된 논리를 제시합니다. 일을 황당할 정도로 작게 나누는 전략도 유용합니다. 책상 정리, 제목 쓰기, 메일 한 줄 쓰기처럼 시작 문턱을 낮추면 완벽주의의 마비가 풀립니다.


그 외에도 과거와 미래의 실수를 놓아주는 법, 비교에 집중하지 않는 법, 감정을 억압하지 않는 법 등 유연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길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완벽주의를 없애야 할 병으로 보지 않습니다. 유능함은 유지하되,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방식으로 살라고 말합니다. 유연한 완벽주의란 결국 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나와 나 자신 사이의 관계,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 나와 세계 사이의 관계 말입니다.


『유연한 완벽주의자』는 완벽을 포기하자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벽함의 본질을 회복하자고 합니다. 완벽함이란 결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결함을 끌어안는 능력입니다.


스스로를 과하게 몰아붙이는 사람,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는 사람, 자기비판의 함정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등 완벽주의로 피로해진 이들을 위한 『유연한 완벽주의자』. 자기비판 대신 자기이해를, 유연함은 포기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임을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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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든 오사카/간사이 여행지도 - 교토·고베·나라·간사이·우지·오하라·비와코, 2026-2027 개정2판 에이든 여행지도
타블라라사 편집부.이정기 지음 / 타블라라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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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여행 동선 최적화 솔루션을 보여주는 『에이든 오사카·간사이 여행지도』. 오사카뿐만 아니라 교토·고베·나라·간사이·우지·오하라·비와코까지 간사이 지역 핵심과 근교를 아우르는 방대한 범위를 자랑합니다.


정보의 밀도가 극도로 높습니다. 단순한 안내서나 사진집을 넘어, 오사카와 간사이 지역을 여행하기 위한 최고 완성 버전입니다.


여행자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효율적인 동선과 정확한 정보에 집중합니다. 무늬만 여행지도에 머물렀던 기존 자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차원의 지도입니다.


구성도 마음에 쏙 듭니다. 보관하기 좋은 박스 속에 오사카, 간사이 여행지도가 각각 들어있고, 휴대하기 좋은 책자 형태 지도, 트래블노트, 깃발 스티커까지 계획부터 다녀온 이후까지 모두 커버합니다.


지난 버전에 비하여 개정2판에서는 교토, 고베, 나라의 지도를 크게 확대하고, 미식과 휴식의 새로운 동선이 될 수 있는 우지, 오하라, 비와코 등 근교 지도를 추가했습니다. 


펼치면 A1 사이즈의 대형 지도에 오사카 주요 지역과 간사이 지역으로 상세히 나눠 소개합니다. 편히 사용해도 구김이 없는 데다가 방수 종이여서 오염에도 강해 실용적입니다. 착착 접으면 책자 형태 크기가 되어 이동성도 좋습니다.


에이든 여행지도는 지형 표기만 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그 공간이 가진 문화적 아이콘과 실제 이용 가치 등이 표기되어 여행자가 현장에서 헤매는 시간을 절약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간사이 지방을 깊이 있게 여행하려는 이들에게도 필수입니다. 오사카 중심부에서 벗어나 일본 소도시의 매력까지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에이든 여행지도는 이제 단순히 길을 알려주는 도구가 아니라, 숨겨진 여행지를 발굴하고 일정을 확장해 주는 능동적인 큐레이터 역할을 수행합니다. 매번 오사카-교토-나라의 황금 삼각지대만 다녀왔다면 이제는 간사이 광역권 마스터플랜을 만나보세요.


맵북과 트래블노트는 지도를 계획 도구로 업그레이드합니다. 맵북은 대형 A1 지도의 휴대성을 보완하기 위해 주요 지역을 별도로 축소 수록하여 이동 중에도 쉽게 펼쳐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트래블노트는 오사카, 나라, 교토, 고베 등 지역별로 PREVIEW, TRAVEL PLAN, 지도, TIME LINE이라는 네 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지도를 보며 즉각적으로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고, 체크리스트 도움도 받을 수 있어 유용합니다. 하루 여행의 시간표를 시뮬레이션하는 역할을 제대로 합니다. 시간 효율성과 여행의 완성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용주의 여행자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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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한 완벽주의자 - 실패가 두려워 멈춰 선 당신에게
피터 홀린스 지음, 박정은 옮김 / 넥서스BIZ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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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게으름을 의지력 부족이나 나약함으로 치부하나요?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올가미, 당신의 게으름은 두려움의 다른 얼굴일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 피터 홀린스의 『나태한 완벽주의자』는 이 역설적인 상황을 파고듭니다. 게으름 뒤에 숨겨진 복잡한 심리 메커니즘을 해부합니다.


피터 홀린스는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심리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오랜 심리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을 쌓아왔습니다.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자제력 수업』, 『뇌를 위한 최소한의 습관』 등 다수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내면으로부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론을 제시해온 그는, 이번 책에서도 행동 전환의 구체적 방법을 소개합니다.


게으름은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회피와 자기비판이 맞물린 복합적 반응이라고 합니다. 단순히 일을 미루는 문제가 아니라,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욕망이 과부하를 일으켜 뇌가 에너지 절약 모드로 전환되는 현상이라는 겁니다.


일을 피하고 있지만 마음 한구석엔 죄책감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어, 쉬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할 일을 마친 것도 아닌 경험 숱하게 많을 겁니다.


나태함이 쉬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쉬지 못하는 불안의 산물임을 정확히 짚어줍니다. 완벽주의자는 한 번의 실패조차 용납하지 못하기에 행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무너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는 왜곡된 안전장치가 우리를 가두는 겁니다.


이 현상을 심리적 안전지대(Safe Zone)라 부르며, 이곳이 바로 게으름의 본거지라고 진단합니다. 문제는 그 안전지대가 행동하지 않는 이유로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완벽주의자는 스스로에게 “아직 준비가 덜 됐어”라고 합리화하며 시간을 지연시킵니다. 그 완벽한 순간은 결코 오지 않는데도 말입니다.





『나태한 완벽주의자』는 게으름을 병이 아닌 방어기제로 읽는 순간, 자기비판이 아닌 자기이해로 시선을 돌리게 만듭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대신,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행동하는 능력이야말로 게으름을 이기는 가장 근본적 처방인 겁니다.


게으름의 본질이 불편함의 회피였다니요. 그렇다면 불편함을 받아들이는 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편안함을 행복으로 착각하지만, 실상은 도전의 감각을 잠식하는 마취제라고 합니다. 현대인의 게으름은 대부분 이 편안함의 잠식에서 비롯됩니다. SNS의 끊임없는 피드, 자동 재생되는 영상, 클릭 한 번으로 열리는 쇼핑 앱. 모든 것이 즉각적인 쾌락을 제공하지만, 그만큼 집중력은 갈기갈기 찢깁니다.


『나태한 완벽주의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두 가지 전략을 소개합니다.


첫째, 감정과 행동의 분리입니다.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상관없이 언제나 행동할 수 있다는 걸 일깨워 줍니다. 행동이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둘째, 의도적인 불편함의 훈련입니다. 매일 아침 찬물로 세수하기, 일부러 계단 이용하기, 10분간 스마트폰 없이 커피 마시기처럼 사소하지만 의식적인 불편을 받아들이는 습관입니다. 이런 훈련은 뇌의 변화 저항 회로를 재설정합니다.


뇌과학 관점에서 작은 불편함은 도파민 시스템을 기대-보상 회로로 재구성하여 행동의 지속성을 높인다고 합니다. 불편함의 반복이 성취의 쾌감을 대체하게 되는 것입니다.


피터 홀린스가 강조하는 감정 조절의 90초 법칙 또한 흥미롭습니다다. 분노, 두려움, 피로감이 몰려올 때 단 90초를 기다리면 감정의 파도는 잦아듭니다. 행동 전환의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위한 실질적 심리 전략입니다.


미루기의 악순환을 끊는 작지만 강한 습관들을 다룹니다. 열정과 동기를 유지하는 것은 저절로 얻어지는 마음 상태가 아니라 적극적, 의식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것이라는 걸 강조합니다. 기분이 좋아져야 일할 수 있다는 믿음은 허상이었던 겁니다.





저자는 게으름을 극복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게으름을 이해하라고 권합니다. 네 가지 실천 축을 제시하며 자기비판에 시달리는 완벽주의자들에게 작은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서 자신을 질책하며 악순환에 빠지기보다는, 스스로를 용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자기비판은 도파민 분비를 억제해 행동 동기를 마비시킵니다. 반대로 자기용서는 학습 회로를 안정시켜 다시 시도할 여유를 줍니다. 자기용서는 행동 복원의 출발점입니다.


『나태한 완벽주의자』는 꾸준함을 의지력의 산물이 아니라 리듬 관리의 결과로 봅니다. 인간의 생리적 주기를 활용하는 울트라디언 리듬(Ultradian Rhythm)을 통해 지속적인 습관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완벽주의자는 결과의 완벽함에 집착하지만, 저자는 과정의 지속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꾸준함이란 불안한 감정을 억누르는 가장 강력한 진통제이니까요.


책에서 소개하는 구체적인 루틴의 예시도 도움됩니다. 뇌의 성취 회로를 강화할 수 있는 단순한 행동들입니다. 완벽주의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결심이 아니라 덜 복잡한 환경이라는 걸 깨닫게 된 시간입니다.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을 이해하는 법을 가르쳐 준 『나태한 완벽주의자』. 자기비판을 자기이해로 바꾸는 용기를 선물합니다.  일을 미루는 나를 이해할 때, 비로소 새로운 루틴이 탄생한다는 걸 짚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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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대의 소년
카를 올스베르크 지음, 장혜경 옮김 / 모스그린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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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스티븐 호킹의 인용구로 시작합니다.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보여도 아직 할 수 있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스티븐 호킹은 루게릭병으로 거의 전신이 마비된 상태에서도 물리학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던 과학자입니다. 그의 삶 자체가 육체적 한계를 넘어선 정신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마누엘의 이야기는 스티븐 호킹의 삶과 평행선을 이룹니다. 죽어가는 몸 안에 갇힌 살아있는 정신 그리고 그 정신을 다른 매체로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


인공지능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카를 올스베르크 저자는 2007년 첫 소설 『시스템』으로 슈피겔 베스트셀러에 오른 뒤, 마인크래프트 세계관을 활용한 청소년 소설로 아마존 2위까지 오르며 청소년과 성인 독자 모두에게 호소할 수 있는 이야기 구조와 주제의식의 균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력을 염두에 둔다면 기계와 인간의 경계를 다루는 『무한대의 소년』의 기술적 설정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옵니다.


열다섯 살 마누엘은 직업 선택을 고민할 필요도, 여드름이 언제 사라질지 걱정할 이유도 없습니다.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 (루게릭병)에 걸려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누나 율리아는 동정 대신 농담으로, 부모는 눈치를 보며 애써 일상을 이어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헤닝 야스퍼스의 인터뷰에서 기발한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소프트웨어를 다른 기계로 옮길 수 있듯 인간의 정신을 몸에서 꺼내서 기계에 전송한다는 계획입니다. 윤리적인 이유로 인간 실험을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시한부 인생인 마누엘은 스스로 그 실험에 참여하겠다는 결정을 내립니다. 실패하더라도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말이죠.


『무한대의 소년』은 의식의 복제와 존재의 정체성, 마인드 업로드라는 철학적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 공상과학 스릴러 소설입니다. SF적 장치를 빌려 인간 존재의 경계를 묻습니다. 단순히 AI와 인간의 대립을 그리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를 데이터화할 때 나라는 개념이 어떻게 변형되는지를 탐구합니다.





야스퍼스는 인간 역시 진화가 만든 아주 복잡한 기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격, 생각, 기억, 희망, 바람은 다 정보에 불과하다고 말입니다. 이 정보들이 두뇌의 하드웨어에 저장되어 있을 뿐, 근본적으로는 다른 저장 수단으로 옮겨도 상관없을 거라고 합니다. 


야스퍼스의 비밀 실험실에서 불멸 프로젝트를 맛보기로 체험한 마누엘은 지금까지의 가상현실 게임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실감합니다. 제 발로 걷고 제 손으로 뭔가를 잡을 수 있는 기분이 어떤지를 경험합니다.


마누엘의 정신이 머물 공간은 인공 지능이 자체 창의성을 발휘하여 생성되는 방식이라고 합니다. 마누엘의 세상은 무한하다는 의미입니다. 한계가 없습니다. 그곳에서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수많은 생명체들과 살아가게 됩니다.


🔖 어쩌면 이것도 새로운 형태의 종교에 불과할지 몰랐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믿음. 다만 낙원이 내세가 아니라 기계 안에 있다는 것이 다를 뿐. - p82


작가는 영혼의 존재 여부, 생사 결정권 문제, 자아 문제 등 인간됨이라는 근본적 질문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시간을 흐르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으로 설정함으로써 '지금'이라는 인식이 얼마나 허상인지 자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시간은 환상에 불과한 것 같아… 우리가 과거, 현재, 미래가 다르다고 생각하는 거고.",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순간에 이미 생각을 했으니까 과거인 거야."라는 고백처럼 말입니다.


기억과 자아도 동일한 맥락에서 재구성됩니다. 기계가 기억을 이식하거나 복제할 수 있다는 설정은 '나'라는 주체가 기억에 얼마나 의존하는가, 그리고 그 기억이 사라지거나 바뀌었을 때 '나'도 바뀔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불러옵니다. 마누엘은 자신의 존재가 기억과 결부된 자아라는 사실을 자각하면서도, 그 기억이 조작될 수 있는 가능성과 마주합니다.





불멸 프로젝트가 세상에 알려지자 극렬한 찬반 논쟁에 휩싸입니다. 마누엘은 기계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 겁을 내는 미치광이 종교 집단에게 납치되고 맙니다. 마누엘의 선택은 이뤄질 수 있을 것인지, 놀라운 반전과 함께 스펙터클하게 펼쳐집니다.


기술 진보가 인간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라는 통념을 넘어서 작가는 기술이 인간을 정의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탐색합니다. 기계와 인간의 범죄적 연결망,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의 윤리, 기술 뒤에 숨어 있는 욕망 등이 이야기의 긴장감을 끌어올립니다.


SF의 오래된 주제 중 하나인 마인드 업로드를 다루면서도 기술적 가능성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인공지능 전문가인 작가의 이력 덕분에 기술이 가능한 미래가 아니라 기술이 현실이 되었을 때 우리가 직면할 실존적 딜레마를 보여줍니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제기했던 질문을 21세기 맥락으로 업데이트합니다.


서사 자체는 복잡하지 않지만 기술과 인간, 기억과 자아, 시간과 존재라는 통상적 경계를 흔드는 요소가 매력적인 『무한대의 소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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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피아노 특강
이승훈 지음 / 좋은땅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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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30년 연구의 결실 『클래식 피아노 특강』이 바꾸는 연습의 패러다임을 만나보세요. 피아노는 누구나 손끝으로 누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음악이 '산다'는 건 다른 차원의 일입니다.


수천 명의 제자를 가르치며 건반의 본질을 탐구한 이승훈 피아노 릴렉스 연구소장은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클래식 피아노 특강』은 그 여정의 응축된 기록이자 피아노라는 예술의 물리적, 정신적 지형도를 그려낸 책입니다.


피아노는 손끝의 힘으로 치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지점에서 비로소 울린다고 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테크닉을 향상시키는 교본이 아니라, 몸-두뇌-정서의 유기적 관계를 해부하며 연주자의 전인적 성장을 목표로 하는 매뉴얼입니다.


피아노 교육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이들에게는 지도 원리서로, 오랜 시간 통증과 좌절로 고통받은 피아노 애호가에게는 치유서가 되어주는 책입니다.


저자는 피아노 연습의 난관이 손의 미세한 움직임에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그 근본 원인은 두뇌의 과도한 긴장 그리고 그 긴장이 몸의 축을 왜곡시키는 데 있다고 합니다.


모든 긴장의 원인은 척추가 굽으면서 생긴다고 합니다. 척추의 직립이 단지 자세 교정이 아니라 음악의 중심축을 바로 세우는 행위라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독창적인 훈련법을 소개합니다. 척추를 한 줄의 선처럼 세워 걷는 훈련을 통해 몸의 중심을 회복하면, 손의 미세한 떨림이나 팔의 긴장이 자연히 풀린다고 합니다.





피아노를 명상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명상하듯 연주하는 피아노 대가들 챕터에서 지메르만과 라두 루프의 연주 자세를 비교합니다. 루프가 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연주하는 모습은 피아노를 호흡의 공간으로 대하는 태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릴렉스는 힘을 빼라가 아니라 균형을 회복하라는 메시지입니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 미묘한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겁니다.


이어서 피아노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터치에 집중합니다. 좋은 터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감각의 철학을 펼칩니다. 에밀 폰 자우어의 손을 예로 듭니다. 자우어는 19세기 말 황금의 손으로 불린 거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외형상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손의 구조가 아니라 감각의 민감도, 그리고 손가락 하나하나의 독립적 인식이 터치의 본질임을 짚어줍니다.


손가락이 아니라 팔 전체로 건반을 느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손가락에 힘을 싣는 방식 대신, 등과 어깨, 팔의 흐름을 통해 건반을 만지는 감각을 훈련하라고 조언합니다. 


이승훈 소장은 듣기와 청취를 구분합니다. 피아노 연습에서 가장 심각한 오류가 바로 귀가 멈춘 상태에서 손만 움직이는 연습이라고 말합니다.


조성진은 듣기에 목숨을 걸고, 임윤찬은 심장에 묻는다며 음악이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정을 확인하는 행위가 아니라, 음의 질감과 방향성을 읽는 능력입니다. 이와 관련한 훈련법, 청취 루틴 등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기술과 감정이 별개가 아니며 연주의 질은 결국 정서적 균형에서 비롯된다는 걸 보여줍니다. 모든 미소는 움직임을 좋게 한다며 두뇌가 안정감을 인식하고, 신체의 미세 근육을 이완시키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미소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마음이 편안해야 손이 자유롭다는 뜻입니다.


그 외에도 심리적 회복탄력성, 식이와 멘탈 관리 등 감정이 안정되면 두뇌가 리듬을 정돈하고, 결과적으로 손의 긴장도 완화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피아노는 결국 마음의 거울이자 정서의 리듬 트레이너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이 먼저 움직이는 연습의 과학에 대해 마무리합니다. 단순한 연습 팁이 아니라, 두뇌와 신체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 인지 기반 훈련법입니다. 머릿속으로 연습해서 서울대 피아노과를 간 사례가 흥미롭습니다. 그 외에도 기적의 연습 방법 두들기기, 박자기 활용 300%, 운지법과 암보 등 구체적인 조언들이 이어집니다.


피아노 연습을 단순한 반복이 아닌, 두뇌의 학습 시퀀스로 재해석한 『클래식 피아노 특강』. 피아노를 잘 배우는 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더 깊게는 자신의 몸과 감정, 사고를 조율하는 법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읽고 나면 피아노 앞에서 앉는 자세가 달라집니다. 피아노를 기술이 아니라 삶의 언어로 배우고 싶은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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