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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한 완벽주의자 - 내 안의 가혹한 비평가를 버리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법
엘런 헨드릭슨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1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년 이상 불안과 완벽주의를 연구해온 임상심리학자 엘런 헨드릭슨의 『유연한 완벽주의자 How to Be Enough』. 아마존 임상심리학 분야 베스트셀러 1위, 〈오프라 데일리〉 2025년 베스트북으로 선정된 책입니다.
저자는 오랫동안 완벽주의자들의 내면을 가까이서 관찰해온 사람이며 동시에 자신 또한 완벽주의자로 살아온 연구자입니다. 완벽주의를 단순히 고쳐야 할 결함으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완벽주의는 성실성, 집중력, 책임감, 고도의 자의식이라는 인간적 강점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방향성입니다. 완벽주의가 나를 이끄는 등불이 될 수도 있지만, 방향을 잘못 잡으면 그 불빛이 나 자신을 태우는 횃불이 되기도 합니다.
이 책은 내 안의 가혹한 비평가를 버리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유연한 완벽주의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유능함을 유지하되 자기비판과 비교,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저자는 완벽주의의 본질을 자기비판의 습관화로 봅니다. "더 해야 해, 더 잘해야 해, 더 나아져야 해, 더 완벽해야 해."라며 겉으로는 모든 일을 훌륭하게 해내는 듯 보여도, 속으로는 매번 패배감에 시달리나요?
완벽주의자는 언제나 더 나은 나를 쫓지만, 역설적으로 그 여정은 자기혐오로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타인보다 앞서 있지 않으면 불안하고, 기준에 미달하면 존재 가치가 사라진 것처럼 느낍니다. 내면의 비평가가 처음엔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결국엔 주인의 목을 조르는 괴물로 변하는 겁니다.
알래스카 청소년 자살 사례 연구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연구에 참여한 부모의 62%가 세상을 떠난 자녀를 "완벽주의적이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숨기며 자신이 없어지면 세상이 나아질 거라 믿었다고 했습니다. 완벽주의가 타인을 만족시키는 수단이 아닌, 존재 자체를 증명하기 위한 절박한 방식으로 작동할 때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책에서는 자기비판, 미루기, 실수 곱씹기, 남과의 비교, 불안, 과도한 책임감, 통제 욕구 등 완벽주의자의 특징과 함께 완벽주의의 뿌리를 파헤칩니다. 완벽주의가 단일한 성향이 아니라, 여러 감정과 행동 패턴이 얽혀 있는 복합적 구조라고 설명합니다.
유연한 완벽주의자를 만드는 방법으로 7가지 변화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로 자기비판을 멈추고 친절에 익숙해지라고 합니다. 형편없다는 평가 대신 이 일을 더 잘하려면 무엇을 바꿀까라는 정보적 사고로 전환하는 겁니다. 생각과 자신을 분리하여 생각을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는 기술입니다.
저자는 완벽주의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성과의 과평가라 부릅니다. 완벽주의자는 자신의 업적을 자기 존재의 증거로 삼습니다. 하지만 일은 일이고, 성과는 성과일 뿐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과평가는 인생의 모든 순간을 존재 가치를 건 시험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수재라는 평가에 집착하던 대학생의 사례를 소개하며 가치관은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강조합니다. 배움의 즐거움이라는 가치에 집중하면 성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실패의 순간조차 배움의 일부로 재구성되는 겁니다.
대부분의 완벽주의자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자신을 몰아붙입니다. 저자는 의무는 에너지를 소모시키지만, 의미는 에너지를 회복시킨다고 일깨워 줍니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로 전환할 때 우리는 피로 대신 활력을 경험합니다. 완벽주의자의 딱딱한 자기 규칙이 유연한 자기 서약으로 바뀌는 지점입니다.
미루기는 완벽주의자의 대표적 증상입니다. 저자는 미루기의 본질을 실패에 대한 공포로 분석합니다. 제대로 못할 바엔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행동을 마비시키는 겁니다.
기분이 좋아져야 시작할 수 있다는 통념을 깨고, 시작해야 기분이 좋아진다는 역전된 논리를 제시합니다. 일을 황당할 정도로 작게 나누는 전략도 유용합니다. 책상 정리, 제목 쓰기, 메일 한 줄 쓰기처럼 시작 문턱을 낮추면 완벽주의의 마비가 풀립니다.
그 외에도 과거와 미래의 실수를 놓아주는 법, 비교에 집중하지 않는 법, 감정을 억압하지 않는 법 등 유연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길을 소개합니다.

저자는 완벽주의를 없애야 할 병으로 보지 않습니다. 유능함은 유지하되,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는 방식으로 살라고 말합니다. 유연한 완벽주의란 결국 기준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입니다. 나와 나 자신 사이의 관계,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 나와 세계 사이의 관계 말입니다.
『유연한 완벽주의자』는 완벽을 포기하자는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벽함의 본질을 회복하자고 합니다. 완벽함이란 결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결함을 끌어안는 능력입니다.
스스로를 과하게 몰아붙이는 사람, 일과 나를 분리하지 못하는 사람, 자기비판의 함정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 등 완벽주의로 피로해진 이들을 위한 『유연한 완벽주의자』. 자기비판 대신 자기이해를, 유연함은 포기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가장 현명한 방법임을 배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