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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라틴어 문장 하나쯤 있으면 좋겠습니다
라티나 씨.야마자키 마리 지음, 박수남 옮김 / 윌마 / 2025년 10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2000년의 지혜, 지금을 일으키는 문장 『당신에게 라틴어 문장 하나쯤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양 문명의 심장, 라틴어가 건네는 생의 문장들을 만나보세요.
고대 로마의 언어 라틴어는 사어이지만, 시대의 재로 덮인 채 조용히 빛을 품은 불씨에 가깝습니다. 그 불씨를 다시 불러내 우리 내면의 생각과 삶을 따뜻하게 비춘 이 책은 라틴어 연구자 라티나 씨와 로마 문명을 생생히 그려낸 만화가 야마자키 마리가 함께 엮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구체적인 상황들을 집약한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로가 필요할 때, 도전 앞에 섰을 때, 사랑할 때, 복잡한 현실과 마주했을 때, 성장하고 싶을 때, 마음이 흔들릴 때, 혼란 속에서 희망을 찾고 싶을 때까지.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문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전어 해설집을 넘어 말의 철학을 되새기는 지적 대화집입니다. 사유의 세계와 감각의 세계가 맞닿은 그 경계에서 오래된 문장은 다시 살아 있는 언어로 피어납니다.

뻔하지 않은 위로가 필요할 때, 말보다 오래 남는 문장을 통해 언어의 섬세한 결을 짚어냅니다. 호라티우스의 "carpe diem(오늘을 즐겨라)"은 누구나 아는 문장이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긍정 메시지와는 다른 결을 보여줍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로 너무나 유명해진 이 문장을 우리는 '현재를 즐기라'는 의미로만 이해합니다. 하지만 라티나 씨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루를 따서 거두라'가 된다고 짚어줍니다.
단어의 조합 자체가 의외성을 품고 있습니다. 과일을 수확하듯 오늘이라는 시간을 능동적으로 거둬들이라는 메시지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을 소비하라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단순히 지금을 즐기라는 조언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밭에서 오늘이라는 열매를 직접 따라는 실천의 명령입니다. 라틴어의 동사 carpere는 따다, 거두다라는 능동의 동사를 사용합니다.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언어적 선언인 셈입니다. 이처럼 고전 속의 한 단어를 통해 저자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주체적 태도를 되돌려줍니다.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을 때, 두려움 대신 문장을 품어봅니다. 도전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동반합니다. 라틴어 격언이 어떻게 불안을 다스리는지를 보여줍니다.
"Fortis fortuna adiuvat(행운은 용감한 자를 돕는다)"는 말은 영화 <존 윅>을 관통하는 문장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고대 로마의 병사들이 전쟁터로 나서며 되뇌던 문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의미는 훨씬 묵직해집니다.
저자는 이 구절을 단순한 파이팅 문장이 아니라, 운명 앞에서의 도덕적 결단으로 해석합니다. 도전의 순간,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은 두려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과 나란히 서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나를 잃지 않으면서 사랑하고 싶을 때 "omnia vincit amor(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라는 베르길리우스의 문장이 우리를 반겨줍니다. 사실 클리셰처럼 들리지만 저자는 문장의 원래 맥락을 짚어줍니다.
『아이네이스』의 한 장면을 통해 사랑이란 감정이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운명과의 갈등 속에서 태어났음을 설명합니다. 사랑의 불안정성, 감정의 흔들림, 그 속에서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 결국 사랑의 본질은 균형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라틴어 문장은 일깨워줍니다.
사는 게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을 때, "abiit ad plures(더 많은 사람 곁으로 떠났다)"라는 표현이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현재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의 수보다 이미 죽은 사람의 수가 더 많습니다. 이 문장은 천국에 갔다, 다시 말해 죽었다는 의미입니다.
라틴어는 죽음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 곁으로 떠났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품격 있는 죽음의 언어입니다.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면서도, 죽음을 공동체의 품으로 되돌려놓는 시각입니다.
삶의 복잡함은 결국 관점의 문제라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죽음을 비극이 아니라 다른 삶의 시작으로 보았고, 그 인식은 우리에게도 평정심을 선사합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을 때, "esse quam videri(그렇게 보이기보다 그렇게 존재하라)"라는 문장이 울림을 줍니다. 보이는 나를 위해 살아가는 이들에게 던지는 정곡 같은 말입니다.
외형과 실체 사이의 괴리는 SNS 시대의 가장 큰 피로를 낳는 요소입니다. 라티나 씨는 이 격언을 통해 존재의 무게를 견디는 사람만이 진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키케로의 문장도 의미심장합니다. "inter arma silent leges(무기들 속에서 법은 침묵한다)"는 키케로의 말은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 되새겨봅니다.
키케로가 살인을 저지른 밀로라는 인물을 변호하며 재판에서 한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전쟁 중에는 법이 무시되고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해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본래 정당방위를 변호하던 문장이 시간이 흐르며 전쟁의 야만, 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문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언어는 시대를 건너며 의미를 확장하고, 그 확장은 곧 사유의 진화입니다.
이처럼 라틴어는 단지 과거의 언어가 아니라, 해석을 통해 계속 살아 있는 언어로 갱신된다는 것. 그리고 그 갱신은 생각하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멈추지 않습니다.
유베날리스의 "quis custodiet ipsos custodes?(감시인은 누가 감시할 것인가?)"는 원래 바람피우는 아내를 어떻게 바람 못 피우게 할지 고민하는 풍자적인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사회 질서와 치안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들이 권력을 남용할 때 인용되는 문장입니다.
고대의 문장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는 인간의 본질인 불안, 욕망, 희망을 가장 정직하게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라틴어 문장 하나쯤 있으면 좋겠습니다』에서는 격동의 시대가 빚어낸 불멸의 문장들을 만나게 됩니다.
책 속 라틴어의 격언들은 인간이 수천 년 동안 쌓아온 사유의 잔해입니다. 그 잔해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살아갈 단서를 찾습니다. 이 책을 볼 때는 라틴어를 공부하듯 읽기 보다는 문장을 '감각'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어떤 문장이 필요한가입니다. 그 문장 하나가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