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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명품 - 사람이 명품이 되어가는 가장 고귀한 길
임하연 지음 / 블레어하우스 / 2026년 1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명품이란 단어를 들으면 로고가 박힌 상품이 먼저 떠오르지만, 임하연 저자는 그 이미지를 전복시킵니다. 사람이 명품이 되라고 말이죠. 런던 소더비에서 아트컬렉터 교육을 받은 임하연 저자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좇아온 사람입니다. 사람을 원석에 비유하며 세공의 과정이 곧 인간의 품격이라고 말합니다.
『인간명품』은 대화형 스토리텔링으로 진행합니다. 상속자와 학생의 대화를 통해 사고의 균열과 확장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합니다. 학생은 불안, 박탈감, 비교 의식에 흔들리는 오늘의 청춘을 대표하고, 상속자는 문화적 자산과 교양의 힘을 체화한 인물로서 삶의 깊이를 안내합니다.
두 사람의 문답은 일방적인 조언이 아니라 스스로의 감정과 사고를 비추어보는 거울이 됩니다. 학생의 반문과 회의는 우리의 속마음을 대변하고, 상속자의 답변은 고요한 설득력을 지닌 사색의 언어로 다가옵니다. 대화적 구성 덕분에 마치 두 사람 사이의 빈자리에 앉아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드는 듯한 몰입감을 받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삶을 인문학적 거울로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재클린은 아일랜드계 이민자의 딸로 태어나 미국 상류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았지만, 교양과 안목으로 세상의 시선을 뒤집은 인물입니다.
『인간명품』에서는 재클린의 이야기를 통해 고유함, 탁월함, 역사와 스토리, 심미안, 영향력이라는 다섯 가지 자질을 설명합니다.

총 다섯 번의 만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만남 ‘고유함’에서는 사회적 배경이 아니라 내면의 빛이 인간을 구분 짓는다고 말합니다. 인상 깊은 개념이 등장합니다. 상속자 정신(Sangsokja Jungshin) 개념입니다. 상속자 정신은 부모로부터만 오는 상속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를 뛰어넘어 사회로부터 받는 더 넓고 큰 상속을 뜻합니다.
상속자 정신은 곧 인간이 스스로의 유산을 창조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가난한 환경, 불안정한 출발, 비교의 늪 속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자산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선언입니다.
수저계급론에 갇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현대 청춘의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물려받은 수저의 색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빛깔로 자신의 내면을 조각해나가야 한다는 메시지. ‘고귀함’은 태생이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저자는 문화적 언어로 세련되게 풀어냅니다.
"상대적 박탈감은 오로지 타인과 비교할 때만 나타나요. 그래서 실제로 잃은 것은 없지만, 더 많이 가진 상대를 보면서 무언가를 잃은 듯한 기분을 느끼는 거죠." - p37
두 번째 만남 ‘탁월함’은 단순한 운명론이 아니라, 나의 탁월함이 이미 내 안에 설계되어 있다는 자기 인식의 선언입니다. 임하연 저자는 청춘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을 수저계급론이라 합니다. 수저계급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관계를 권력관계로 볼 수밖에 없다는 걸 일깨워 줍니다. 나보다 재산을 더 물려받은 사람, 덜 물려받은 사람 오로지 두 가지로 나뉘니까요.
『인간명품』은 사회적 불평등의 언어를 해체합니다. 우리가 불평등한 사회라는 인식의 틀 안에서만 살면, 결국 그 불평등을 내면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상속자 정신은 무언가를 빼앗긴 기분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탁월함은 화려한 스펙이 아니라, 상실을 품격으로 전환시키는 태도입니다. 저자는 이를 운명을 다시 쓰는 기술이라 부릅니다. 불안한 시대의 청춘에게 명품이란 브랜드가 아니라 해석의 능력입니다.
세 번째 만남은 한층 더 깊은 사유의 차원으로 들어갑니다. 우리는 아비투스를 가정환경 내에서 부모에게 체득하고 몸에 배는 것으로만 생각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좋은 스승, 우연한 만남, 한 권의 책도 충분히 나를 키울 수 있는 상속이 될 수 있다는 걸 짚어줍니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아비투스란 계급적 무의식이 아니라 문화적 자산을 스스로 확장해가는 과정입니다. 스승이나 예술작품, 한 문장도 우리의 내면 자본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비교와 결핍의 세대에게 실질적인 조언으로 다가옵니다. 누군가는 부모의 재산을, 누군가는 좋은 배경을 상속받지만, 누군가는 믿음과 이야기를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명품』은 이것을 보이지 않는 상속자본이라 부릅니다. 그 자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간을 견디는 힘이 있습니다.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되, 그 안에서도 다른 출구를 제시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한 서사를 살아갈 때, 비로소 진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네 번째 만남 ‘심미안’은 돈보다 오래가는 가치를 이야기하며,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고귀한 자산이라고 말합니다. 심미안은 미술관을 다니는 교양이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알아보는 감수성입니다.
명품은 결국 타인을 감동시키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심미안은 인간이 다시 자신을 회복하는 기술입니다. 이 기술을 갖춘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미적으로 이해하고, 불완전한 현실에서도 품격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만남 ‘영향력’은 인간명품의 완성입니다. 이 장의 대화는 상속자 정신의 궁극적 단계, 즉 타인을 일으켜 세우는 힘을 보여줍니다. 상속을 자기중심적 계승이 아닌 공동체적 확장으로 해석합니다.
『인간명품』은 타인과의 관계, 문화의 계보, 내면 자본의 성장이라는 복합적 구조 속에서 인간이 걸작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탐구합니다. 고귀함의 본질을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외적인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을 조각하는 능력이라는 통찰은 이 시대의 명품이라는 단어를 다시 정의합니다. 저자는 재클린 케네디의 시선을 빌려 우리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삶은 어떤 유산을 남기고 있느냐고. 불확실한 시대에도, 불안과 비교의 시대에도, 인간은 여전히 스스로를 빛낼 수 있다고.
상속자 정신이란 결국 나에게 물려진 이름 없는 선물들을 발견하는 태도입니다. 그 태도야말로 가장 고귀한 길입니다. 불평등한 현실 속에서도 자기만의 길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