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과 교양으로 읽는 미국의 역사
실비아 엥글레르트 지음, 장혜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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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민국 국민치고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 경제,정치,문화,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알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지구에는 하고 많은 나라들이 많지만 대한민국은 미국이라는 상수를 개입시키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나라다. 서설이 길었는데, 요는 미국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반미주의자든, 친미주의자든 상관없이 말이다. 미국의 역사, 지리, 문화, 정치, 경제를 속속들이 아는 것이 곧 세계를 아는 것이요,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이 책은 독일인이 쓴 미국사 개론이다. 미국을 잘 알고 청소년 시절에 미국에서도 살아본 미국통이다. 나름대로 객관적인 시각을 살려서 미국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대학시절에도 미국학을 전공했단다. 현재는 독일의 언론인이라고 하는데, 글을 쓰는 관점도 학자풍이 아니라서 책이 쉽게 읽힌다. 책 두께도 300쪽 정도라서 부담도 없다. 초심자들에게 딱 좋은 책이다. 단, 이 책만 읽고서 미국역사를 논하기에는 너무 간단하다는 것이 단점이다. 물론 이 책의 의도에 비추어본다면 단점도 아니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깊이 미국역사를 이해하고 싶으면 두꺼운 개론서를 보던지, 각각의 주제들을 다룬 책들을 따로 보던지 하면 될 것 같다. 나는 케네스 데이비스의 <미국에 대해서 알아야 할 모든 것>과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저항사>를 여름 방학 중에 같이 읽어볼 계획이다. 그게 끝나면 베트남 전쟁과 쿠바혁명에 대한 책도 같이 읽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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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시대 - 에릭 홉스봄 자서전
에릭 홉스봄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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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홉스봄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아직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홉스봄의 역작으로 알려진 근현대사 4부작도 우리집 책꽂이에는 다 있다.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읽어보았다. 제국의 시대는 읽다가 말았고 극단의 시대도 70% 정도 읽다가 그만두고 있다. 읽을 때는 무척 흥미롭게 들어가다가도 다 읽고나면 좀 헷갈리는 것이 사실 19세기 서양사다. 극단의 시대는 20세기 현대사라서 그런지 좀 쉽게 넘어간 편이다. 홉스봄의 자서전을 보니 극단의 시대는 세계적으로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한다.

홉스봄이 지은 책들의 저자 소개를 통해서 어렴풋하게 지은이 소개를 보던 것과는 다른 딴판의 세계가 이 책 속에는 펼쳐져 있다. 막연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삶을 지은이는 살아냈다. 캠브리지대학교 출신으로 캠브리지 버크벡 칼리지 교수로 평생을 가르쳤다는 대목도 알고보니 표면적으로 보는 것하고 다르다. 나는 그가 킹스칼리지를 졸업하고 비슷한 곳의 칼리지에서 가르쳤던 캠브리지대학교의 교수이겠거니 했는데 저간의 사정이 다르다. 공산당 출신의 학자이다보니 냉전 시기에 캠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버크벡 칼리지에서 가르쳤는데, 그곳은 야간대학이었다. 야간에 직장인 출신들의 역사학도들을 가르쳤던 것인데, 결국 홉스봄은 평생 캠브리지의 주류에는 속하지 못했던 셈이다. 똑똑했지만 처음부터 잘나간 사람이 아니었단 것이다. 남들은 30대에 이루어놓는 업적들을 홉스봄은 40대부터 쌓아나갔다. 그 이유는 오로지 그가 선택한 공산당원이라는 신분때문이었다. 홉스봄은 그의 동지들이 1956년의 흐루시초프 비밀연설로 스탈린의 학정이 드러나자 공산당을 떠날 때도 공산당원으로 남았다. 또한 1968년의 헝가리 사태때도 남았다. 결국 그는 1990년대에 소련이 무너지고 영국공산당이 스스로 해체를 선언하자 공산당원 신분을 그만두었다. 자서전을 서술하는 내내 이 '공산주의'문제는 쉬지 않고 나온다. 그만큼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홉스봄은 자신의 저서인 <극단의 시대>에서 20세기 역사는 결국 레닌의 사상이 빗어낸 공산당의 성장, 투쟁, 소멸의 역사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왜 홉스봄이 스스로도 실망한 공산당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공산당원이라는 신분을 지켰는지는 책을 자세히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홉스봄의 삶에 이정표가 되는 도시는 알렉산드리아, 빈, 베를린, 런던, 뉴욕이되겠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홉스봄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에릭 홉스봄을 낳았다. 그 때가 1917년이었다. 공교롭게도 홉스봄은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해에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유태인이었다. 아버지는 잉글랜드 태생이었고,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었다. 빈으로 이주한 두 사람은 곧 1929년 대공황의 타격을 받고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죽고, 곧이어 어머니도 죽는다. 아버지는 약간 무능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시대가 불러온 무능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소설도 쓰고 번역도 하던 중산층 출신의 지식인이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어머니가 안데르센의 동화를 좋아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홉스봄의 재능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일 수도 있겠다. 청소년 시절에 부모를 잃어버린 에릭은 베를린의 친척집으로 옮기게 된다. 이 시기를 에릭은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본다. 바로 거기서 그는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고 독일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다. 곧이어 히틀러의 나찌당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삼키고 전체주의 국가를 만드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뒤에 에릭은 런던의 이모 집으로 옮겨간다. 거기서 그는 고등학교 시절을 마감하고 캠브리지대학교에 입학한다.

홉스봄이 캠브리지대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대학생들 사이에 공산주의 사상이 가장 맹휘를 떨치던 시절이었다. 마치 80년대에 한국의 대학교에서 맑스주의가 사상의 제왕처럼 행세했듯이 30년대의 캠브리지대학교도 그러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르게 당대 유럽에서 대부분 대학생들은 진보적이라기보다는 보수적이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에 이어서 등장한 파시즘은 유럽을 비롯한 전세계를 삼킬듯한 기세였다. 스페인 내전은 파시즘과 민주주의의 대결장이었다. 그 무렵에 가장 열심히 파시즘과 싸운 세력은 공산주의였다. 파시즘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반파시즘의 투사인 공산당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홉스봄은 그런 시기에 캠브리지대학교에서 학생공산주의자로 활약을 했다. 홉스봄의 동료학생들 중에 몇몇은 스페인 내전에 공화파로 참가해서 싸우다가 전사한 경우도 있었다. 홉스봄은 혁명가 유형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후에 2차 대전시기에 영국군으로 징집을 받았지만, 공산주의 활동 전력 때문에 중요한 부대에는 속하지 못하고, 공병으로 군대생활을 했다. 공병으로 지내는 동안 홉스봄은 노동자출신의 병사들 속에서 살았다. 홉스봄은 거기서 '때로는 거칠어질 때도 있었지만 노동자들의 올곧음과 허튼 소리에 대한 경멸감과 계급의식과 동지애와 협동정신을 평생토록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군대에서 제대하고 난 뒤에 홉스봄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는 학문을 가지게 된다. 주로 영국의 캠브리지대학교에서 가르치면서 자신의 특기를 살린 역사학 저술을 내놓는다. <원초적 반란>,<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들을 써 내면서 역사학자로서 명성을 얻게 된다. 또한 영국공산당에 소속된 역사학자들과 함께 '공산당 소속 역사학자 모임'을 구성해서 맑스주의에 기반한 역사학 연구를 계속한다. 영국에서 유명한 역사학 저널인 <과거와 현재>를 창간해서 정치사 중심의 역사학에서 탈피하여 사회사에 기반한 역사학 연구의 새로운 기풍을 만들어낸다. 이 무렵에 프랑스에서는 이미 <아날>이라는 유명한 역사학저널을 중심으로 사회사를 탐구하는 새로운 세대의 역사학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아날학파의 거장으로 유명한 페르낭 브로델은 홉스봄보다 10년 이상 연상인 학자였는데, 엄청난 연구역량과 탁월한 조직역량으로 프랑스식 사회사학을 맑스주의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일구놓았다. 영국의 공산당 역사학자들 중에는 <영국노동자계급의 형성>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톰슨도 있었는데, 홉스봄은 톰슨을 '그야말로 난 사람이며, 천재라는 개념에 부합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역사가'로 묘사하고 있다. 여하튼 영국과 프랑스의 사회사 연구는 그전에 독일이 주도하던 정치사 중심의 역사학을 혁신하는 전환을 이루었다. 지금은 사회사가 이미 주류에 들어섰고, 오히려 그런 사회사 중심의 전체사에 대항하는 미시사학(작은 쟁점에 주목해서 세밀하게 연구하여 시대상을 복원하는 식의)이 요즘 유행이라고 한다. 홉스봄은 미시사학도 나름대로 의미는 있지만, 전체적인 시각을 포기하는 방식은 역사학이 역사의 진보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50년대에 제일 중요한 사건으로 홉스봄이 들고 있는 것은 흐루시초프가 소련공산당 대회에서 행한 '스탈린 격하'를 들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탈린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당시에는 스탈린이라고 하면, 전세계 민중에게 푸근한 아저씨 같은 인상이었다고 한다. 홉스봄을 비롯한 공산주의자와 민중들은 당시에 '스탈린을 정말로 엄청나게 존경했다'고 한다. 그래서 홉스봄은 '레닌의 10월 혁명이 세계 공산주의 운동을 만들었다면, 1956년 2월의 소련공산당 20차 대회는 그것을 무너뜨렸다'고 말하고 있다. 스탈린 격하 운동의 결과로 홉스봄은 '공산주의 투사에서 지지자 내지는 동조자로 다시 태어났다'고 한다. 영국공산당은 완강하게 소련공산당의 노선을 추종했기 때문에 홉스봄은 '몸은 영국공산당 당원이었지만, 마음은 내가 생각하는 공산주의 이념에 들어맞는 이탈리아 공산당 당원이었다'고 말한다. 그람시의 지적 유산을 가지고 있던 이탈리아 공산당은 당대 유럽에서 소련공산당을 제외하고는 최대의 당원을 보유한 공산당이었다. 노동자계급의 정당이라기보다는 인민의 정당으로 자신을 규정할 만큼 유연한 공산주의 노선을 가지고 있었다. 책 속에는 이탈리아 이야기뿐만 아니라 스페인, 소련, 남아메리카, 쿠바 등의 다양한 진보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읽을거리로도 좋다.

홉스봄은 나중에 미국에서도 가르치게 되었는데, 뉴욕에 있는 신사회연구원(New School of Social Research)이라는 대학교에서 교수로 오랫동안 있게 된다. 이 학교는 미국의 진보세력이 만든 일종의 대안대학교라고 볼 수 있는 곳이란다. 홉스봄은 뉴욕에서 가르치면서 미국이라는 세계제국에 대해서 몸으로 많이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제국이 자신의 힘의 한계를 모르고 무한정 힘을 휘두르며, 자기 편에 서지 않으면 무조건 적으로 몰아붙이는 데서' 어떤 고충을 느낀다고 한다. 역사가로서 느끼기에 '미국의 세기가 끝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게 될 것 같지는 않지만, 독자 중에는 그것을 볼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히 빗나간 예상이 아닐 것이다'라고 미국이라는 제국이 정점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고 있다고 관망한다. 물론 홉스봄이 가지고 있는 신념과 유럽인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우리가 느끼기에도 미국은 이미 역사상 많은 제국이 그러했듯이 전성기를 지난 느낌이다. 아마 20-30년 안에 그런 광경을 볼 수 있지도 않을까.

홉스봄은 1917년 태생이니까 우리나이로 치면 90살을 넘긴 나이다. 그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왕성하게 저술하고 강연도 한다. 청소년 시절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잃었던 소년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로 성공한 것을 생각하면 이 책은 일종의 성공담이기도 하다. 소련이 망할 때까지 공산당을 떠나지 않은 신념의 소유자라는 면에서 보면, 과연 20세기 중후반을 통틀어서 공산주의가 지식인들에게 가졌던 매력의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데서도 쓸모 있다. 나는 외국의 역사 중에서 좋아하는 사람을 꼽으라면(그렇게 아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홉스봄과 브로델을 꼽는다. 듣기로는 브로델도 자서전을 썼다고 하는데, 누가 번역해서 시장에 내 놓으면 당장 사보겠다. 프랑스 역사가의 삶은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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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제국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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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다. 일요일 아침부터 읽었더니 점심 때 쯤 되니 끝난다. 이야기의 흐름이 빨라서 책이 술술 잘 넘어간다. 그렇지만 300쪽을 넘기니 잘 안 넘어간다. 후반부터는 좀 이야기가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가 51장면 정도로 분할되어 있는 것이 마치 영화를 쓰기 위해서 준비한 시나리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는 그 시나리오가 좀 상투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지. 너무 냉소적으로도 보이고. 사이사이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에피소드는 실감이 났다. 기영의 북쪽생활 이야기에 나오는 그의 어머니의 죽음이나 정희라는 또래 여자아이 이야기도 감흥이 있었다. 또 마리의 아버지인 주류판매상 이야기도 좋았다. 박철수라는 국정원 정보원의 아버지, 어머니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런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한 데도 전체적으로 이 작품은 어떤 감흥, 혹은 문제의식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광고에 나왔던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는 발레리의 시구는 사람을 끌어당겼다. 과연 이 소설 속에는 이 시대에 대한 어떤 생각이 담겨 있으리라는 기대를 안고 보았던 것인데. '빛의 제국'이라는 제목과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어떤 내밀한 의미가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주인공인 김기영이 뭐하러 저렇게 헤매다녔나 하는 허탈감을 자아내게 했다. 후반부로 가서 기영의 아내 마리가 스무살 대학생 둘과 벌이는 난잡한 정사 이야기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읽는 내내 김혜수가 등장했던 <바람피기 좋은 날>이라는 영화를 떠올렸다. 뭐하러 저 따위 영화를 만드는가 싶게 한개의 소비품에 불과한 영화라고 보았는데, 기영의 아내 마리가 벌이는 정사도 이 소설의 문제의식과 꼭 맞아떨어지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이른바 386세대의 붕괴한 도덕의식이나 희망의 상실을 조롱하려고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글쎄, 내가 소설을 그냥 이야기로 읽지 못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기영이라는 인물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소설의 설정부터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10년 동안이나 상부선이 떨어진 남파공작원이라. 어쩌면 지은이는 이런 과도한 상황설정으로 우리 시대의 한 단면을 다루려고 한 것은 아닐까. 40대의  남자와 여자의 삶, 그들의 아이가 중등학교에서 겪는 삶. 어떤 면으로보든 속시원하지가 않다. 차라리 남파간첩이라는 설정을 빼버리고, 학생운동을 했던 부부의 삶과 도덕의식의 붕괴, 가정의 해체 현상 같은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렇게 메스를 들이댔다면 차라리 이해하기가 쉬웠을 텐데. 난데 없이 80년대 중반에 학생운동권에 침투했다가 10년 전에 상부선을 잃어버린 고정간첩이라니. <광장>에서 이명준이 월북하는 그런 동기나 이회성의 <금단의 땅>에서 다루어지던 남파공작원이나 자생적 사회주의자의 그런 고뇌가 없다. 한마디로 설정은 기막힌데 이야기는 상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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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에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3
에리히 캐스트너 지음, 장영은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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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케스트너의 고향은 독일의 작센 주 드레스덴이다. 그 곳에서 케스트너는 청소년시절까지 살았나보다. 케스트너의 어린시절이 끝나는 시점은 1914년이다.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행복한 어린시절을 종지부를 찍게 되는 것이다. 케스트너가 그리는 드레스덴의 어린시절을 어쩌면 그의 동화 속 이야기들과 많이 닮아 있다. 어머니가 가정집을 개조해서 미용실을 운영했다는 이야긴는 <에밀과 탐정들>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그의 집에 세들어 살았다고 하는 여러 선생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하늘을 나는 교실>의 선생들 이야기를 생각나게 한다. 어떻든 케스트너의 어린시절은 다양한 추억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의 아버지인 에밀 케스트너는 가죽제품을 만드는 마이스터였지만 공장제품에 밀려서 나중에는 일반 회사의 노동자로 입사해서 살아간다. 가죽제품을 만드는 것은 심심할 때 하는 소일거리로 전락한다. 작가의 어머니인 이다 케스트너는 도시에서 하녀로 살아가다가 결혼을 하지만 힘겨운 살림살이를 꾸려간다. 결혼한지 7년이 지나서나 처음으로 에리히를 낳게 된다. 에리히는 이 집안의 유일한 자식이 된다. 드레스덴에서 이 작은 가정은 어렵게 삶을 꾸려가는데, 그 과정에 에리히는 이 집안의 유일한 기쁨이 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에리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자 한다. 문제는 가난의 벽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 에리히는 사범학교를 들어가서 초등학교 선생이 되고자 한다. 그러다가 졸업을 앞둔 어느날에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길로 돌아서서 다시 대학을 간다. 그 결정을 어머니는 반대없이 지지해준다. 그렇게 해서 에리히는 글쓰는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1900년대 초이다. 그 시대는 수공업자인 마이스터들이 몰락하고 공장이 모든 산업을 장악해나가는 시대다. 말이 서서히 사라지고 자동차가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른바 현대문명의 중추들이 등장하던 시기이기도 하다. 전화, 자동차, 라디오, 텔레비전.  케스트너의 이야기 속에는 이런 것들이 등장하기 전의 과도기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방학이 되면 에리히와 그의 엄마가 2주 동안 도보여행을 떠난 이야기며, 레만 선생과 암벽등반을 하던 이야기 같은 것들이 등장하는데, 사는 모습을 그다지 다르지 않지만 삶에는 좀 더 여유가 있어보인다.

처음 기대했던 것보다는 이야기가 좀 어수선했다. 어쩐지 어린이용이라기보다는 청소년용이나 성인용 같았다. 린드그렌의 <사라진 나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오는 사건들이나 사회적인 배경들이 아이들이 읽어내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싶다. 5,6학년 아이들에게 읽혀보아야지 알 수 있겠다. 그래도 케스트너의 작품을 즐겨 읽는 사람으로서 작가의 어린시절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책이라서 참 귀중하게 느끼고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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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락앤락 아산공장 곳곳에는 주부사원들이 낸 아이디어들이 숨어있다. 생산라인에서 최상의 노동조건을 만들어내는 ‘작은 혁신’으로 불량률을 낮추고 안전사고를 줄였다.
 
‘락앤락’의 뉴패러다임 실험 2년


지난 18일 락앤락 아산공장에서 만난 허난순(43)씨는 “지난 주말 배를 타고 군산에 다녀왔다”며 “꿈도 못 꿨던 가족 여행을 하게 된 게 다 혁신 덕분”이라고 자랑했다. 그는 딸 여섯과 막내아들을 키우느라 빠듯한 살림 탓에 5년 전 락앤락에 취직해 아산공장을 다니고 있다. 초기 3년은 하루 12시간씩 주 6일 근무를 마치면 피곤에 절어 아들을 한번 안아주기도 벅찼다. 그러나 ‘혁신’은 허씨의 일상을 크게 바꿔놓았다. 주간 근로시간이 72시간에서 56시간으로 줄었다. 한달에 하루는 회사에서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남는 시간은 아이들 차지다. 허씨네 텃밭의 상추와 깻잎은 싱싱하고, 아이들은 엄마가 쉬는 날을 꿰고 있다.



 

» 락앤락의 뉴패러다임 개념도
 
허씨가 말한 ‘혁신’은 가정용 밀폐용기 제조업체 ‘락앤락’이 2년 전부터 추진한 ‘평생학습 체계의 구축’을 말한다. 2004년 인천·아산 등지의 공장을 통합하면서 종업원 306명 중 50여명의 여유 인력이 발생해 고심하던 락앤락은 정리해고 등 손쉬운 방법 대신 근무조 개편을 단행했다. 대부분의 플라스틱 사출업체들이 하는 2조 주야 맞교대 방식을 버리고, 종업원들을 3개 조로 나눠 각각 4일 동안 12시간씩 근무하고 이틀간 쉬게 했다. 또 한달에 하루는 8시간 동안 인성·안전·품질관리·건강 교육을 받게 했다. 고가의 사출 장비가 휴일 없이 돌아가니 회사에도 이익이 됐다. 그리고 무뚝뚝하던 주부 사원들이 점심시간이면 수다스러워졌다.

교육시간에 아줌마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느끼는 불편과 개선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절차 등을 줄여 생산 효율을 높이는 효과가 쏠쏠했다.

예컨대 제품 포장을 맡는 생산2부 사원들은 크기가 다른 반제품을 색깔이 다른 비닐에 담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반제품은 표면에 흠이 생기지 않게 비닐을 씌우는데, 색깔별로 구분하니 손놀림이 전보다 빨라졌다. 또 플라스틱 사출기에서 나온 제품을 검사하고 마무리 공정을 하는 생산1부에서는 상자 받침대에 바퀴를 달아 힘든 일을 줄였다.

이런 노력 덕분에 평생학습 모델 도입 전인 2005년 1~6월 각각 143건과 56건이던 품질 불량과 소소한 안전사고 건수가 이듬해 같은 기간엔 59건과 16건으로 줄었다.



 

» 생산2부의 정희천 대리가 주부사원들의 아이디어를 반영해 크기별로 색깔을 달리한 반제품 보호용 비닐을 보여주고 있다.(왼쪽) 교육훈련일을 맞은 주부사원들이 전문강사의 지도 아래 ‘몸살림 체조’를 따라하고 있다.
 
물론 ‘혁신’에는 진통이 따른다. 2005년 7월 락앤락이 근무조 개편을 단행할 무렵, 회사가 벌인 설문조사에서 찬반 비율이 40% 대 33%로 팽팽하게 나왔다. 주부 사원 서너명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충분한 휴식은 매력적이지만, 월급이 줄어든다는 걱정이 컸던 것이다. 2년 전 퇴사했다가 최근 재입사한 양순남(37)씨는 “아이 둘을 혼자 키우는 처지라 한달에 5만~10만원 월급이 줄어드는 게 큰 걱정이었다”며 “그러나 식당일 등을 하며 다른 공장들의 열악한 환경을 보니 회사로 돌아올 결심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기획본부의 최영철 부장은 “사출기를 맡는 생산1부 쪽은 전에는 한해 4분의 1 정도가 얼굴이 바뀌었는데, 지금은 무단결근이나 이직이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교육훈련은 직장 분위기도 바꿨다. 유한킴벌리에서 3년 전 락앤락으로 옮겨온 윤조현 공장장은 “처음 왔을 때 사람들이 일에 찌들어 목석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연간 96시간씩 안전·품질관리는 물론 중국 문화 강좌 같은 교양 학습을 받다 보니 직원들끼리 화제도 풍성해졌고, 팀별 회식 자리도 활기를 띠게 됐다. 거래 은행의 지점장에게 듣는 재테크 강좌와 건강관리 프로그램도 큰 인기를 끌었다.

회사 경영진은 락앤락의 변화가 성공적이라고 평가한다. 기계가 일년 내내 돌아가고 종업원들의 애사심도 높아졌으니 일석이조라는 것이다. 김준일 회장은 “한국에서 제조업이 힘들다고 베트남이나 캄보디아로 간다고 하는데, 후진국들도 기피(3D)업종을 싫어하기는 마찬가지”라며 “한국에서 사양산업이다 샌드위치다 하는 제조업 분야도 ‘뉴 패러다임’으로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사진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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