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은 읽는 자들을 배려하는 책이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독서를 불편하게 느꼈다. 그 전에 읽었던 소설책이 너무 술술 넘어갔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 전에 두 주 동안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쫒는 아이>와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었는데, 언제 그 두꺼운 책을 다 읽었는지 모를 정도로 책읽는 일이 쉬웠다. 이 책은 무려 3주 동안이나 들고 있었다. 200쪽 정도 읽고나니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는데, 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사라마구의 글쓰는 방식이다.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글을 보는 것처럼 빡빡하게 들어찬 글의 숲을 헤쳐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이었다. 문장 안에 말하는 이와 듣는 이를 구분해주는 문장부호 같은 것은 전혀 없다. 따옴표도 없고, 물음표조차도 없다. 오로지 반점과 온점이 있을 뿐이다. 거기다가 장이 바뀌면 나오는 소제목도 없고, 장 번호조차도-1,2,3 하는 식으로 구분되는-없다. 책의 내용이 눈먼 자들의 곤혹함을 다루는 것처럼 책을 읽는 자들도 문장의 늪 속에서 헤매야 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쨋든 나는 그게 힘들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소설에 희망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소설이 거의 끝나갈 때까지 희망-눈을 뜨게 되고, 세상이 질서와 평화를 되찾는-의 싹을 도무지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읽는 이의 고통을 배가시켰다.
주제 사라마구는 포르투갈의 태생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당대 최고의 작가이다. 경력을 보니 재미있는 것은 그가 20대에 소설가로 데뷔하고서도 상당히 긴 세월동안 소설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기간에 그는 공산당 활동을 했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현대사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그가 왜 그랬는지는 추측만 할 뿐이다. 60살 가까운 나이가 되어서야 소설을 써 내기 시작한 그는 이후에 '환상 역사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면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킨 작품들을 써냈다. 위대한 소설가들이야 대부분 당대의 이단적인 존재였다는 점에서 그도 공통점이 있기는 하다. 그와 비슷한 이미지로 겹쳐지는 작가는 남미의 마르께스,터키의 오르한 파묵, 우리나라의 황석영 같은 이들을 떠올릴 수 있겠다. 책뒤에 보니 사라마구의 책들은 많은 분량이 우리나라에 번역이 되어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해냄'출판사에서 나왔는데, 다른 책들도 대부분 '해냄'출판사에서 나온 것 같다.
이런 책들을 묵시록적인 책이라고 하던가. 미래세계에 닥치는 무시무시한 파탄을 보여주는 문학갈래들이다. 유토피아에 반대되는 개념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까뮈의 <페스트>나 오웰의 <1984> 같은 소설들이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고 한다. 하나같이 미래세계의 암울함을 비춰보임으로써 인류의 추악한 면을 반성하게 하는 책들이다. 그 속에는 저항하는 고귀한 인간성을 가진 존재들이 늘 등장한다. 카뮈의 <페스트>는 도시를 덮친 질병으로 인하여 변해가는 인간사회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소설과 비교해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간단하다. 어느날 갑자기 어떤 한 남자가 갑자기 눈 앞이 안 보이는 병에 걸린다. 도로 한 가운데서 이 사내는 눈이 멀어 버린다. 이어서 안과 병원에 간다. 눈에 안과적인 병의 흔적은 전혀 없는 특이한 질병이다. 이어서 안과 의사도 눈이 먼다. 이 백색질병-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마치 우유 속처럼 뿌옇게만 보이는-은 순식간에 도시를 덮친다. 정부에서는 병에 걸린 이들을 수용소에 격리시킨다. 정신병원 건물이 수용소로 이용되는데, 이 곳에서는 인간사회가 파괴될 때 생길 수 있는 온갖 야만적인 일들이 발생한다. 곳곳에 넘치는 오물들, 음식을 둘러싼 아귀다툼, 사적인 이익을 갈취하는 폭력집단의 등장, 여자들에 대한 강간, 살인. 이 곳에서 눈이 멀지 않은 사람은 딱 한 사람, 의사의 아내 뿐이다. 작가는 이들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다. 의사, 색안경을 쓴 여자, 처음으로 눈 먼 사내, 의사의 아내 하는 식으로 부를 뿐이다. 의사의 아내는 마치 여신 같이 여겨진다. 어쩌면 작가는 그런 의도성을 내포하면서 이 소설을 쓴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야기의 중간 정도에서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 힘들었다. 눈먼 자들 중에서도 총을 가진 폭력집단이 등장하고, 그들이 음식을 독점하고 배급하면서 사람들에게 돈과 귀중품을 요구하는 대목에서 주춤했다. 200쪽 정도 되는 부분이었다. 어지간한 분량의 소설같으면 결론부 정도에 해당할 것 같다. 예전 같았으면 이 쯤에서 소설을 던져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어쨋든 이번에는 끝까지 읽기로 마음먹고 계속 나아갔다. 드디어 강간과 살인, 화재, 탈출이라는 대목이 이르자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왜 나는 이 대목에서 흥미를 느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감정이입을 한다면 어둡고 무시무시한 장면이기도 한데 왜 이런 것에 끌릴까. 우리가 추리소설이나 모험소설에 열광하는 이유의 한 단면도 여기에 있을 것 같다. 영화로도 나왔다고 하는데, 극장에서는 간판이 내려졌다. 비디오로 나오면 한번 빌려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