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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들판 도토리숲 시그림책 5
이상교 지음, 지경애 그림 / 도토리숲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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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




  서울에서 목포까지 KTX를 타고 오간 지 벌써 8년째.

  창밖으로 보이는 들판은 이제 너무나 익숙해져 감흥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펼치니 순식간에 호남선 기차를 탄 기분이었다.


  처음 『겨울 들판』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어쩌다가 겨울 들판을 보게 된 걸까?'라는 의문이 있었다. 두 저자는 그걸 예상한 듯이, 사계절의 변화를 보여주고 기차를 타는 장면을 부드러운 그림들로 보여준다. 여기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바로 도시에서 겨울을 맞이하는 주인공의 삽화였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서서 겨울이 왔음을 느낀 주인공의 뒤로, 세로로 길게 늘어진 아파트 창문들은 마치 눈이 내리는 듯했다. 자연스럽게 세로줄이 그려지며 도시의 겨울도 멋진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에 반해 기차를 타고 겨울 들판을 보고 느끼는 장면은 대체로 가로줄이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기차, 흘러가는 강물, 바람에 몸을 맡기는 풀들, 텅 빈 들판의 모습까지 우리의 시선을 자연스레 가로로 흘러가게끔 한다. 물론 메마른 나무나 소복소복 내리는 눈처럼 가로가 아닌 이미지도 존재하지만, '겨울 들판'과 '겨울 도시'가 다른 방향성을 추구하며 대비감을 주고 있다.


  '햇볕도 느릿느릿 내려와 쉬는 중이다.'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지경애 작가가 표현한 겨울 들판은 포근하고 따뜻하다. 책 말미의 이상교 시인의 시 이야기에서 언급되었듯이 '조금도 차갑게 보이지 않았던' 겨울 풍경을 그림작가 덕분에 우리도 함께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눈 내린 들판 위에 햇볕이 잠시 쉬어가며 남긴 온기를 전달하며, 우리에게 겨울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안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겨울의 끝자락에 출간되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나 추웠던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겨울 들판을 한번 더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리뷰어클럽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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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그림
타샤 튜더.해리 데이비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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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린 나이에도 난 양장책을 좋아했다. 특히 시공주니어의 '네버랜드 클래식'은 『세라 이야기』, 『세드릭 이야기』, 메리 포핀스 시리즈까지 꽤 많은 책을 모았었다.


  그 중, 『세라 이야기』는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을 정도로 감명 깊게 읽었다. 오죽하면 '중풍'하면 벽난로 앞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세라에게 말을 건내는 중후한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절로 떠오를 정도니 말이다. (실제로 『세라 이야기』에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어린 시절 내게 그런 이미지로 깊게 각인되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좋아하던 『세라 이야기』의 원화를 그린 '타샤 튜더'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니, 굉장히 설렜다.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게다가 찾아보니 직접 글을 쓰기도 했다니 더욱 기대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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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그림 초판 (2007년), 리커버 (2018년)


  이 책은 『타샤의 그림』 개정판으로, 2007년 초판이 나온 후 두 번째 개정판이다. 그 전의 표지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타샤의 여러 그림들을 감각적으로 모아 삽화가의 분위기가 물씬 났다면, 이번 표지는 겨울에 어울리는 푸른빛에 음각으로 글씨를 채웠고 하얀 눈밭의 그림이 강조되어 있다.


  구간을 마케팅하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게 '리커버'라고 들었는데, 『타샤의 그림』이 그에 해당하는 듯했다. 왜냐하면 출간된 지 18년이나 되었는 데다가 타샤의 열정팬이 아닌 이상 그의 이름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겨울 분위기에 어울리는 양장책으로 나오니, 누군가에게 선물하거나 고급진 일러스트북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수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타샤의 그림』을 읽으며, 그의 삶을 알아가며 놀라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타샤의 부모님이 불륜 관계였다는 점과 그 둘이 이혼했다는 사실, 타샤가 만난 남자가 정말 별로였고 그와 이혼했다는 점 등 타샤의 가정사를 알수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타샤의 그림에서 따뜻하고 가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는 데다가, 1900년 중반의 사회 분위기상 결혼과 이혼, 그리고 부부 간의 경제권 등 여러 부분에 있어 자유롭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의 인생과 그의 창작물을 떨어트릴 수 없다고 믿기에, 타샤가 겪은 여러 사건은 오히려 그가 예술 세계에 집중하는 환경으로 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타샤는 삽화와 글로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는 배우자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도리어 여성이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남편이 돈을 잘 벌어오고 그걸로 가정을 유지했다면, 타샤의 예술 활동에 간섭할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타샤의 창작 활동이 생계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돈을 더 벌어다줄 길을 찾아봐야"한다는 채근을 들을 망정, 일을 하지 말라는 압박은 들어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타샤는 벌이로써 그림을 그렸기에 누군가에게 제대로 배운 적은 없었으나, 사물과 주변을 관찰하고 그걸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그림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빛의 명암을 표현하는 건 그림을 그릴 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스한 햇살 덕분에 평화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타샤는 자신의 '테두리 그림'이 아이덴디티라고 생각할 정도로, 테두리 그림에는 타샤 고유의 느낌이 살아있다. 나는 이걸 보면서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꾸미기'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타샤는 가운데 강조하고 싶은 그림을 삽입하고, 그 분위기에 어우러지는 여러 요소를 찾아 지루하지 않게 표현했다. 이는 그림에 장식적인 요소를 추가하면서 마치 액자를 두른 듯한 느낌으로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는 효과를 일으킨다.



  물론 타샤의 그림은 나의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와 '폴꾸(폴라로이드 꾸미기)'에 비교할 수 없는 예술 작품이다. 그러나 타샤의 그림을 볼수록 나의 스티커가 생각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어쩌면 타샤의 그림을 여러 굿즈 등으로 판매한다면 "20세기 최고의 '폴꾸' 삽화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불경한 생각도 조금 든다.


  『타샤의 그림』에는 타샤의 인생이자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의 삶과 그림, 자녀와 손주, 손수 가꾼 정원 등 다양한 것들이 모여있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눈이 즐겁기도 하고, 그의 철학을 보며 '나는 어떻게 늙어갈까' 고민하게 되었다. 삶이 예술이길 바라거나, 예술로 채워진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롤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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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사람이 읽게 만드는 글쓰기 기술 - 짧지만 강력한 콘텐츠 쓰기 전략
미야자키 나오토 지음, 김지혜 옮김 / 유엑스리뷰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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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안에서 두 시간 만에 이 책을 다 읽었다. 부제 '짧지만 강력한 콘텐츠 쓰기 전략'처럼 192페이지로 짧지만, 강력한 이야기를 건내는 책이었다.


글쓰기는 재능이 아니라 기술이다.


저자가 '들어가며'에서 글쓰기는 배울 수 있는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출판 마케터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나 마케팅 계획안을 쓰고 있는 입장에서 굉장히 기대가 되었다. 그 기대는 책을 읽으며 충분히 충족되었다. 내 글을 읽을 독자(예를 들면 채용 담당자)의 시선에서 글을 쓴다고는 하지만 분명 놓치는 것들이 생긴다. 그런 면에 있어서 글을 써야하는 일이 생길 때 옆에 두고 있다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올해 읽은 책 중 『쓸수록 선명해진다』는 글의 재료를 만들기 위해 내 머릿속을 종이 위에 꺼내놓는 것이라면, 『더 많은 사람이 읽게 만드는 글쓰기 기술』은 그렇게 꺼낸 재료들을 효과적으로 깎는 방법을 알려준다. 좋은 카피와 예시를 보여주고, 필요하다면 연습 문제를 제시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여러 전략을 이해시킨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책의 디자인이다. 보통 우리가 접하는 인문서는 글이 빼곡히 들어있고, 가끔 등장하는 명조체로 강조하는 형식이 많았다. 그리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있을 때 긴 인덱스를 붙이거나 형광펜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책은 대여섯줄이 넘어가면 여백을 주어 한 면에 들어가는 글자수를 적절히 조절했다. 그렇다보니 '맑은 시냇물'처럼 술술 읽히고 조금만 읽어도 페이지가 넘어가니 독서의 성취감도 쉽게 따라왔다.

또한 연한 초록의 하이라이터를 이용해 내용을 강조한다. 내가 중요하다고 느낀 부분에 이미 저자가 선수를 쳐 하이라이터를 그어두니 집중도 잘 되었다. 저자가 책의 서두에서 자신있게 이 책이 잘 읽힌다고 말할 만한 디자인이었다.

여기서 문서 디자인의 중요성도 다시금 깨달았다. 출판 마케터 준비반을 수강하며 선생님께서 이력서나 자소서의 문서 디자인을 굉장히 강조하셨다. 한 번에 수백 건을 읽어야 하는 채용 담당자 입장에서 예쁘게 잘 읽히는 문서가 얼마나 좋은 인상을 주는지 이제야 이해되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누구에게든 읽히고 싶은 글을 쓰고 싶다. 그 욕구를 들어줄 수는 없지만, 그걸 실현시킬 기술은 키울 수 있다. 이 책을 통한다면 그 비결을 조금은 알 수 있다.


💡유엑스리뷰어 10기로서 유엑스리뷰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한 서평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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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 돌봄부터 자립까지,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함께 사는 법
윤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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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ADHD 등 정신질환을 다룬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하미나, 동아시아), 『나는 오늘 나에게 ADHD라는 이름을 주었다』(신지수, 휴머니스트)이나, 여성학의 시선에서 바라본 장애(특히 신체장애)와 질병을 이야기한 『거부당한 몸』(수전 웬델, 그린비) 등 정말 다양한 책이 장애와 정신질환을 다룬다. 그리고 돌봄 노동을 다룬 책 『사랑의 노동』(매들린 번팅, 반비)에서는 돌봄의 비가시성과 긴축으로 빈곤해지는 돌봄 시스템 등을 사회학의 언어로 말한다. 이처럼 각기 다른 경험과 학문, 시선으로 장애를 바라보면 다각도에서 장애당사자의 삶과 현재 제도의 문제 등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 『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를 왜 읽어야 할까.

우선 이 책은 단편적인 경험이 아닌 돌봄 제공자의 시선에서 18년간 보호자이자 동반자,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말하는 생생한 삶의 이야기다. 소아조현병 환자로서 많은 돌봄이 필요한 아이를 키우며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비관적이거나 절망하는 말투가 아닌 '버티는 사람의 감정'이 여실히 느껴진다.


아프거나 아프지 않거나, 장애가 있거나 있지 않거나, 모든 아이는 우리 사회의 일원이다.

또한 이 책은 연구사례가 아닌 저자와 '나무 씨'의 삶이기에 의미 있다. '공공의 공간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현실에서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한 사람이자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드러내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주변에서 안 보인다고 일어나지 않는 일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 구성원의 삶을 알고 이해하며 연대해야 한다.

그렇기에 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가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자취를 해보는 아주 사소한 일상을 보내는 나무 씨의 이야기는 소중하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끔 사랑과 희생으로 돌봄을 제공한 저자의 생각 역시 중요하다. 틈틈이 삽입되어 있는 저자만의 인사이트와 의학 정보는 다년간의 노력이 아니라면 얻을 수 없는 귀한 정보들임에 틀림없다.



책을 읽은 후, 언급된 '씨리얼' 영상을 찾아보았다. (영상 보기) 글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심지가 보이는 듯했다. 영상의 여러 댓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말씀을 굉장히 잘하시는데, 글로 읽을 때 그 점이 엄청난 장점으로 다가온다.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에 어느새 이만큼 읽었나 놀라기도 했다. 목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담담하지만 솔직하게 풀어낸 글 자체의 맛이 좋아 에세이로서의 완성도도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돌봄과 함께 자라오고 돌봄과 함께 늙어가는, 타인의 도움을 떼어놓을 수 없는 나약한 존재다. 그게 누구든 말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을 인지하고 이해하는 것, 그 한 발자국을 내딛을 계기가 이 책이 되길 희망한다.


✨하니포터 10기로서 한겨레출판에서 책을 제공받아 솔직한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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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온라인 게임
김동식 지음 / 허블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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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용실에서 볼륨매직을 하는 날이었다. 미용사가 머리를 계속 만지고 있다보니 이어폰을 사용하기도 난감하고, 화면이 뻔히 보이니 SNS도 열기 싫었다. 그럴 때면 나는 핸드폰으로 이북을 읽는 편인데, 리디 셀렉트의 메인을 둘러보다 '우주라이크소설' 카테고리가 보였다.


강렬한 서사! 오직, 리디에서만! ⟪우주라이크소설⟫ ☄️


  도대체 어느 정도길래? 둘러보니 김동식 작가의 책이 있었다. 한국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김동식 작가를 모르기 쉽지 않다. 공장노동자 출신 초단편소설을 쓰는 작가. 나는 김동식 작가를 딱 이정도의 수식어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라디오 일을 하면서 작가와 직접 만나기도 했지만, 주로 에세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보니 오히려 작품 자체는 잘 몰랐다.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만큼, 어느 정도의 기대감을 안고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세 개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김동식 작가의 첫 단편집이다. 처음 쓴 단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읽었는데 전혀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힘이 대단했다.


  첫 번째 단편이자 표제작인 「현실 온라인 게임」은 서울이나 수도권 거주자라면 쉽게 몰입할 수 있는 배경이다. 여러 지하철역을 거점으로 퀘스트를 해결하는데, 이런 점에서는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초반부가 생각나기도 한다. 소설의 주 무대를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는 건 독자가 깊게 몰입해 상상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이어진다. 소설을 읽으며 '나도 저런 퀘스트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라는 희망이 피어나는 건 당연하다.


〈현실 온라인〉을 하고 있으면 내가 특별하게 느껴지거든.

  한때 게임에서 농사를 지으면 실물 농산물을 받을 수 있던 '레알팜'처럼 이 소설 속 <현실 온라인>은 즉각 입금&배송되는 퀘스트 보상과 유럽 중세풍의 스토리로 주인공에게 엄청난 효능감을 준다. 그런데 그 퀘스트의 내용이 점점 수상해지면서 주인공에게 큰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이 소설의 내용은 어딘가 낯설지 않다. '고수익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으로 나도 모르게 보이스피싱, 대포통장, 마약 운반(지게꾼) 등의 범죄에 연루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기 때문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소설 속 〈현실 온라인〉은 알바가 아닌 '게임'이라는 점이다. 퀘스트를 수행하고 보상을 받고, 레벨업을 해서 스킬을 사용하는 게임 말이다.

​지시를 내리는 '최 팀장'과는 텔레그램으로만 소통했는데 첫 지시는 피시방에 뒀다는 서류봉투를 가져오란 거였습니다.
KBS 뉴스 / [단독] “고수익 알바에 속았다”…대포통장 부르는게 값

  넥슨 UX 분석실에서 분석한 '게임에서 이탈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성취와 몰입의 나비효과가 있다. 소설 속 김남우와 홍혜화도 〈현실 온라인〉을 플레이하며 즐거움과 쾌락을 느껴 몰입도가 올라간 상태다. '하룻밤에만 보상으로 10만 원 넘게 벌'며 게임을 통한 성공 경험이 계속 플레이하고 싶은 동기 부여가 되었고, 결국 무언가 잘못된 걸 알면서도 끊을 수 없이 몰입하는 결말로 흘러간 것이다.

  위와 같은 글에서, 달성하지 못한 목표일수록 계속 아른거리고 생각나는 심리현상, 자이가르닉 효과 때문에 게임에서 이탈하지 못한다고 한다. 김남우도 고급 퀘스트 두 개를 실패하고, 어떤 보상이 있을지 계속 생각이 나고 홍혜화를 통해 퀘스트를 수행하려는 짓까지 벌이게 된다.

  이 소설은 굉장히 몰입도 높은 게임 시스템으로 사람을 어떻게 조종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마지막 반전까지 술술 읽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이 단편집의 표제작으로서 '레벨업'을 향한 열망을 가장 잘 표현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제일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작품은 마지막 단편인 「내일을 부르는 키스」였다.  타임루프는 영화 〈사랑의 블랙홀〉, 〈엣지 오브 투모로우〉, 웹소설 『리셋팅 레이디』, 『유월의 복숭아』 등 정말 많은 콘텐츠에서 사용하는 소재인데, 이 소설에서는 '키스'라는 장치를 통해 타임루프를 통제할 수 있게끔 해두었다.

  중반까지 전개는 매우 빠르게 흘러가 주인공 부부가 미친듯이 많은 부를 쌓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모습을 몰아치듯 보여준다. 석상의 저주를 생각할 틈도 없이 폭풍 같은 이야기가 지난 후,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다. 다음날로 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오싹하면서도 처참한 마음이 든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급박한 전개에 숨도 못 쉬고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마지막 홍혜화의 선택까지 예측 불가한 이야기가 정말 흥미진진했다.

  단편집 전체에 깔려있는 '레벨업'을 향한 욕망은 노골적이고 원초적이다. 그리고 대가가 필요하다. 어쩌면 추하거나 무거운 소재가 될 수 있던 이야기를 저자는 아주 재치있게 풀어낸다. 술술 읽히는 필력만으로도 이 소설은 5점짜리인데, 통찰력 있는 결말까지 빼놓을 게 없다.

  이 소설을 끝까지 읽으며 저자의 다른 책이 몹시도 궁금해졌다. 초단편소설은 어떤 매력이 있을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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