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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의 그림
타샤 튜더.해리 데이비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25년 2월
평점 :
*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린 나이에도 난 양장책을 좋아했다. 특히 시공주니어의 '네버랜드 클래식'은 『세라 이야기』, 『세드릭 이야기』, 메리 포핀스 시리즈까지 꽤 많은 책을 모았었다.
그 중, 『세라 이야기』는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을 정도로 감명 깊게 읽었다. 오죽하면 '중풍'하면 벽난로 앞에서 흔들의자에 앉아 세라에게 말을 건내는 중후한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절로 떠오를 정도니 말이다. (실제로 『세라 이야기』에 등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냥 어린 시절 내게 그런 이미지로 깊게 각인되었던 것이다.)
그 정도로 좋아하던 『세라 이야기』의 원화를 그린 '타샤 튜더'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니, 굉장히 설렜다.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게다가 찾아보니 직접 글을 쓰기도 했다니 더욱 기대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타샤의 그림 초판 (2007년), 리커버 (2018년)
이 책은 『타샤의 그림』 개정판으로, 2007년 초판이 나온 후 두 번째 개정판이다. 그 전의 표지가 궁금해서 찾아보니 타샤의 여러 그림들을 감각적으로 모아 삽화가의 분위기가 물씬 났다면, 이번 표지는 겨울에 어울리는 푸른빛에 음각으로 글씨를 채웠고 하얀 눈밭의 그림이 강조되어 있다.
구간을 마케팅하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게 '리커버'라고 들었는데, 『타샤의 그림』이 그에 해당하는 듯했다. 왜냐하면 출간된 지 18년이나 되었는 데다가 타샤의 열정팬이 아닌 이상 그의 이름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겨울 분위기에 어울리는 양장책으로 나오니, 누군가에게 선물하거나 고급진 일러스트북을 소장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수요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타샤의 그림』을 읽으며, 그의 삶을 알아가며 놀라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타샤의 부모님이 불륜 관계였다는 점과 그 둘이 이혼했다는 사실, 타샤가 만난 남자가 정말 별로였고 그와 이혼했다는 점 등 타샤의 가정사를 알수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타샤의 그림에서 따뜻하고 가정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겼는 데다가, 1900년 중반의 사회 분위기상 결혼과 이혼, 그리고 부부 간의 경제권 등 여러 부분에 있어 자유롭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의 인생과 그의 창작물을 떨어트릴 수 없다고 믿기에, 타샤가 겪은 여러 사건은 오히려 그가 예술 세계에 집중하는 환경으로 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타샤는 삽화와 글로 가정의 생계를 책임졌다. 이는 배우자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도리어 여성이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남편이 돈을 잘 벌어오고 그걸로 가정을 유지했다면, 타샤의 예술 활동에 간섭할 여지가 생긴다.
그러나 타샤의 창작 활동이 생계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돈을 더 벌어다줄 길을 찾아봐야"한다는 채근을 들을 망정, 일을 하지 말라는 압박은 들어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타샤는 벌이로써 그림을 그렸기에 누군가에게 제대로 배운 적은 없었으나, 사물과 주변을 관찰하고 그걸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그림을 보고 굉장히 놀랐다. 빛의 명암을 표현하는 건 그림을 그릴 때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스한 햇살 덕분에 평화로운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타샤는 자신의 '테두리 그림'이 아이덴디티라고 생각할 정도로, 테두리 그림에는 타샤 고유의 느낌이 살아있다. 나는 이걸 보면서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꾸미기'의 일종이라고 생각했다. 타샤는 가운데 강조하고 싶은 그림을 삽입하고, 그 분위기에 어우러지는 여러 요소를 찾아 지루하지 않게 표현했다. 이는 그림에 장식적인 요소를 추가하면서 마치 액자를 두른 듯한 느낌으로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는 효과를 일으킨다.

물론 타샤의 그림은 나의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와 '폴꾸(폴라로이드 꾸미기)'에 비교할 수 없는 예술 작품이다. 그러나 타샤의 그림을 볼수록 나의 스티커가 생각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어쩌면 타샤의 그림을 여러 굿즈 등으로 판매한다면 "20세기 최고의 '폴꾸' 삽화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불경한 생각도 조금 든다.
『타샤의 그림』에는 타샤의 인생이자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의 삶과 그림, 자녀와 손주, 손수 가꾼 정원 등 다양한 것들이 모여있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며 눈이 즐겁기도 하고, 그의 철학을 보며 '나는 어떻게 늙어갈까' 고민하게 되었다. 삶이 예술이길 바라거나, 예술로 채워진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롤모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