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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거울
그레이엄 핸콕 지음, 김정환 옮김, 산타 파이아 사진 / 김영사 / 2000년 8월
평점 :
절판
제 다른 블로그에도 올려두었습니다. 펌 리뷰 아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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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은 이 사진으로 시작된다. (똑같은 사진은 아니며 검색했다)
에티오피아 화강암 석비 Axum. 20m 넘는 높이에 300톤. 적어도 2000년 전 혹은 훨씬 더 이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 어떤 기술로도 기원과 연대 측정이 불가능한 돌...
숨이 턱 막힌다. 대체 지구의 과거에는 어떤 능력자들이 있었던 걸까.
앙코르와트 여행 전날 밤, 책을 빌렸다. A4 사이즈 400여쪽 올 컬러 화보의 무거운 책을 식탁 위에 펼치고 100쪽 가까운 앙코르와트 부분에 오전 3시까지 빠져들었다. 여행을 앞두고 EBS 다큐멘타리로 공부한 앙코르와트가 신기했다면, 이번엔 충격이었다.
그 모든 마법의 숫자들은 우연의 일치일까
앙코르와트는 경이로운 과학이다. 앙코르와트 북남 1300m. 동서 1500m. 총 5.6km 둘레 가운데 측정오차가 1cm라든지, 중심부 울타리 북쪽 벽(47.75m)과 남쪽 벽(47.79m)은 0.01% 미만의 오차를 보이면서 당시 건축가들의 무시무시한 정확도에 대해 ‘사이언스’에 논문이 발표됐다든지. 생각 그 이상?
별자리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설명은 기괴하고 어려웠다. 가뜩이나 어려운 이야기인데, 솔직히 번역이 참으로 난해하게 꼬였다. 책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번역에도 불구하고, 몰입을 도와준 것은 그림. 용자리의 주요 별들이 최소 15개의 앙코르 주요 사원들 배치도와 같은 모양새다. AD 802~1220년 사이에 건축된 앙코르 사원들의 배치도가 AD 1150년 춘분날 용자리를 빼닮았다는 추론도 그럴싸했다. 문제는 1150년 그 별자리는 수평선 너머에 있는 것이라 앙코르와트에서는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여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앙코르 사원은 BC 10,500년 춘분 일출 순간 하늘 정북 방향의 용자리를 본 뜬 것으로 추정됐다. 뭐 이렇게까지 돌려봤어야 했을까. 그런데 BC 10,500년 춘분, 이날은 문명사에서 그리 쉽게 넘겨버릴 시간이 아니다. 이날 정남 방향 오리온자리, 정동 방향 사자자리의 별자리가 각각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 스핑크스 배치도와 일치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신의 거울’로 번역됐지만 책의 원제는 ‘Heaven’s Mirror’다. 각 유적지가 우연히 별자리와 닮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하늘에서 하필 특정 시점까지 일치한 것은 우연일까. 이쯤 되면 저자가 인용한 바, 바이욘 사원 등 앙코르 톰의 창시자 자야바르만 7세의 비문에서 “캄부의 땅(캄보디아)은 하늘과 유사하다”고 선언한 것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여기에 저자는 “우주의 심장박동"이라는 "72"라는 숫자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지구 자전축 세차운동 1도에 소요되는 연수다. 72의 배수나 54, 108을 포함해 흥미로운 배열들. 사실 끼워 맞추기냐, 우연의 일치냐, 알 수 없지만 의도된 것이냐, 각자 판단할 몫이겠지만 숫자의 신비는 오묘하다.
책은 앙코르와트 뿐 아니라 멕시코, 이집트, 태평양, 페루와 볼리비아의 ‘불가사의’들을 추적하고 재구성하는데 우연하게도 이집트 기자에서 경도 72도 동쪽이 앙코르다. 그 동쪽 54도 태평양 Nan Madol, 72도 키리바티, 그 동쪽 108도 타이티에도 기원을 알 수 없는 천문학적 배열의 거석 구조물이 있다. 모아이로 유명한 이스터 섬은 캄보디아 동쪽 147도 부근이다. 혹시 별들의 신전이 144도 부근에 있었다가 가라앉았을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1958년 “매우 높고 확인되지 않은 수중 봉우리가 이스터 섬 부근에 존재한다”는 핵잠수함 노틸러스호의 보고를 끼워넣는다. 앙코르 동쪽에서 180도, 이집트 기자 서쪽 108도에는 페루 파라카스 유적지다. 이 모든 유적은 영혼의 사후여행과 연관된 종교적 기념비다. 역시 원래 그렇고 그런 걸까. 각종 유적과 신화에서 언급되거나 장식되고 배치된 '72'도 적지 않다.
고대인들의 능력은 어디까지인가.
최소한 고대인들이 천문학 수학 건축학 능력자였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을까.
저자는 ‘태양의 피라미드’, ‘달의 피라미드’가 잠든 신성한 도시 멕시코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 위의 사진) 역시 하늘과 정교하게 연결된 천문학적 설계구조가 엿보인다고 주장한다. 천문학적 지식체계의 기원을 “최초로 세계를, 길이를 재고 무게를 단 숫자에 따라 창조된 것을 감히 이해한 어떤 거의 믿을 수 없는 선조 문명(이런 식의 번역이란!!!)”으로 돌리는 프랑크푸르트대 헤르타 폰 데헨트 교수와 매사추세츠 테크놀로지 연구소 과학사 담당 교수 조르조 데 산틸라나의 ‘햄릿의 맷돌’(1969년) 인용 부분도 적지 않다. 책에서도 인정하지만 저자는 고고학계의 이단 쯤으로 여겨진다. 인정된 학설 외에 각종 의문들을 우연의 연결고리와 함께 제시한다. BC 2500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스핑크스에 대해 “그런 근거가 될 고대 비문은 하나도 없다”며 석회암 풍화작용을 토대로 최소 BC 7000년 이전이라는 다른 학자의 분석을 전한다.
고대인들은 또 수백 톤의 돌들을 어떻게든 다뤘다. 엄청난 노동력 착취였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그 시절 그 정교함과 물리적 힘에 대해서는 경외감이 없을 수 없다. 피라미드, 앙코르와트는 둘째 치고 이스터섬의 수백여개 모아이 가운데 저 18톤 짜리 모아이는 어떤가. 적회색 화산 응회암으로 만들어졌는데 머리 위 매듭으로 6톤 짜리 붉은 돌조각을 올렸다. (아래 사진) 섬 저편 라노 라라쿠에는 수백개의 석상들이 남겨졌다. 인구 몇천명 안되는 섬에서 대체 어떤 일을 벌인걸까.
이집트나 멕시코 마야 문명의 피라미드, 페루와 볼리비아의 잉카 문명, 앙코르와트, 어디를 가도 거대한 돌들을 엄청난 규모로 쌓았고, 정교하게 조각했고, 신비롭게 맞춰놓았다. 잉카문명인 쿠스코 북쪽 사크사이우아만(Sacsayhuaman, 아래 사진)에 대해 16세기 기록은 “마치 어떤 마법이 그 건축 공사를 주재한 듯 보인다”고 전한다.

'정론'과 '이단'의 가설 경계선에서..
영국 이코노미스트 동아프리카 특파원으로 일했고 베스트셀러 ‘신의 지문’을 냈던 저자는 각 유적지를 직접 꼼꼼하게 돌아봤다.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도 내려보고, 잠수하여 해저 유물도 직접 챙겼다. 각 고대 문명의 문헌과 기록, 종교와 신화도 꼼꼼하게 엮었다. 어쩌면 지나치게 세밀하게 살펴본 나머지 상관관계가 약해보이는 고리까지 찾아내 의미 부여를 하고자 욕심낸게 아닌가 싶은 부분도 엿보인다. '신의 거울'을 따라가다 보면, 중간중간 중복된 느낌 혹은 난해함에 당혹스럽다. 종종 번역이 불편함을 더한다는 점도 밝혀두자. 그렇다고 해서, 그의 문제 제기를 모두 ‘우연’으로 치부하고 폄하할 수 있을까. 돌과 돌을 결합했던 금속 거멀못 자국이 티아우아나코, 올란타이탐보, 앙코르와트, 이집트에서 거의 유사하게 나타나는 사진을 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이집트의 파피루스와 꼭 닮은 남미 티티카카 호수의 토로라 갈대배는 어떤가.
‘영적인 장소에 기념물을 짓거나’, ‘우주적 어둠과 무지의 세력에 맞서는’ 것을 목표로 중동 지역 옛 영지교(Gnosis)가 여호와를 ‘어둠의 세계 지배자들’ 가운데 하나로 봤다는 문헌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여호와에 대해 인류를 영원히 영적인 무지 속에 가두어 놓고자 했던 ‘집정관’ 정도로 받아들였고, 아담과 이브의 유혹에서 각성을 시키고자 했던 뱀이야 말로 인류의 은인으로 묘사한다고 한다. 신성모독이다. 그런데 어쩌면 신비의 고리를 파헤치다가 부딪치게 되는 종교적 도전이 저자를 학계의 이단으로 몬 것은 아닐까. 이건 무엄한 독자의 가설이다.
종말론 혹은 그와 유사한 가설의 출구
저자는 각 신화와 기록이 공유하는 개념으로 ‘잃어버린 황금기의 존재’를 제시한다. 홍수나 그 비슷한 파멸적 재앙이 있었고, 옛 문명의 지혜를 미래에 전하고자 했던 시도가 오늘날 ‘불가사의’로 남았다는 주장이다.
BC 10,500년은 지구학자들의 관심 대상인데, 대략 12,400년 전 지구의 자기극이 180도 뒤집혔음이 확인됐다고 한다. BC 9600년에는 지구가 혜성 조각들과 충돌해 지진, 지형 왜곡, 증기기둥, 간만 차이 등 12가지 재앙이 벌어졌다는 연구도 있다. 또 지구 자기장이 쇠퇴중인데 2300년 이전 북-남 자기의 ‘극 역전’이 발생할 것이라는 과학자들 전망도 있다고 한다. 별자리들은 1만3000년간 올라가고 1만3000년간 내려가는데 하반 주기가 시작된 것이 BC 10,500년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별자리의 거대한 변화는 2500년 이전에 찾아올 수 있다는 가설이 존재한다.
인류가 현명하게 대처할 것으로 기대하지만, 이런 ‘불가사의’를 폄하하거나 외면하기 보다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구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고대 문명의 신비는 '세계 O대 불가사의'라고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지구와 인류의 비밀을 풀어나갈 '열쇠'가 아닐까. 종말론에 빠져들 생각은 전혀 없다. 요즘 유행하는 마야 책력에 굳이 관심 없다. 어떠한 종교적 비의를 탐구하고 신비주의에 탐닉할 의사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종류의 열쇠를 갖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살펴볼 가능성이 있다면, 근사한 일 아닐까.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불현듯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고대인들은 ‘돌’에 역사와 문명을 기록했다. 우리는 첨단 전자 칩에 현재를 기록할텐데, 그것은 얼마나 유효할지 문득 궁금해진다.
아참. 이 책 절판됐다. 책을 빌려준 K님께 진심 감사. 중고책으로 하나 구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