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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행 ㅣ 정신과학총서 4
이경숙 지음 / 정신세계사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과학으로 풀어 본 삶, 죽음, 영혼"이라는 부재가 붙은 이 책은 우리가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정신적인 부분, 영혼이나 전생, 생명이나 죽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한다. 특히 불교의 관점에서 많은 부분을 풀어놓는다.
몇 년 전,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국어선생님으로부터 '최고'라는 극찬과 함께 선물 받고는 지금까지 읽기를 미뤄온 책이다. 책을 받았을 당시에는 원자니 우주, 영혼, 마음이니 하는 방대하고 형이상학적인 주제에다 말나식, 아뢰야식과 같은 생소한 용어에 질려 결려 읽기를 포기했었다. 인간을 정신세계를 논하면서 원자의 불확정성과 시간의 상대성과 우주의 생성원리를 거론하고 있었으니 나의 '작심3일'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리라.
이런 무시무시한 책을 다시 폈다. 소설의 재미에 한창 빠져있다 문득, 너무 인생을 가볍게 사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은 심각해지고 싶은 욕구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다시 도전하리라, 인간정신의 심오함에 다시 온몸을 맡기리라!" ^^
역시 책은 어려웠다. 특히 우주와 물질, 생명에 대해 설명하는 1, 2장은 거의 물리학 전공서적 수준이었다. 하지만 조금 집중하다보니 그럭저럭 읽혔다. 특히 말나식이나 아뢰야식에 대한 개념이 잡히고 나자 한결 읽기가 수월해졌다.
말나식이란 "감정, 본능, 정서 등에 가까운 것이다. (중략) 모든 생리적인 욕구나 생존의 본능에 바탕을 둔 결정은 말나식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보면 된다. (중략) 이 말나식을 프로이트식의 정신분석학 용어로 표현한다면 '잠재의식'이 될 것"이며, 아뢰야식은 "최초로 등장한 생명체인 단세포 생물로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수십억 년의 진화를 통한, 그리고 억겁의 세월 동안 윤회를 반복한 모든 삶의 경험이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두 개념을 바탕으로 생명, 영혼과 사후세계, 전생과 윤회, 마음과 기, 반야에 대해 하나씩 설명한다. 그럼 잠깐씩 그 중심내용을 살펴보자.
- 새로운 생명체에 영혼이 어떻게 깃드는가?
수억 년을 진화해 혼 아뢰야식이 훈습을 통해 생명체에 깃든다고 설명한다. 훈습이란 향냄새가 옷에 배어들 듯 육체라는 하드웨어에 영혼이라는 소프트웨어가 연결되는 과정으로 그 연결의 끈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생명활동을 계속되는 것이다.
- 영혼이란 무엇이고 사후세계란 존재하는가?
사후의 아뢰야식을 영혼이라 하며 말나식이 소멸된 상태이므로 집착이나 연민이 사라져버린, 그저 '정보'의 상태로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사후세계의 체험이란 것도 의식이 돌아올 때의 환영에 불과하다고 했다.
- 전생의 유뮤와 윤회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윤회를 통해 거듭 태어난다. 하지만 사람은 억겁의 세월동안 진화한 아뢰야식의 결과이므로 그 이전 상태인 동물로 태어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다만 현생의 업에 따라 다음 생의 환경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 마음과 기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집단이라는 것. 그래서 이런 마음의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자기를 다잡으라고 한다. 또한 기를 영혼의 실체인 정보의 활동으로 보고 그 원활한 흐름을 강조한다. 그리고 한민족 최고의 경전이라는 천부경도 소개한다.
-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불교의 정수를 260자로 모아놓은 반야심경을 설명한다. 부처도 없고, 열반도 없다는, 그래서 결국에는 누구나 다 부처라는 사실을 '공'을 통해 이야기한다. "극한의 부정을 넘어서는 극한의 긍정"으로 말이다.
난해하고 심란하다. 삶이란 무엇이고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경숙 님은 오랜 시간의 수련과 통찰, 안목으로 허공에 떠있는 향기를 담아내면서도 숲 전체의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결국 이 책에 담으려는 '우주의 질서'는 그녀가 살아온 삶의 질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세상의 인연을 존중하고 그 질서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거대해 보인다.
그녀의 세계관이 나에게도 훈습된 것일까.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것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여러 채널을 통해 들어왔던 난잡한 생각들이 하나의 고리를 통해 추려지고 연결되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설명한 것을 모두 동의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나의 얕은 정신세계와 빈약한 과학적 지식으로 이경숙 님의 사상과 논리를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하나의 원리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 분야의 여러 결과물을 임의로 조합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러웠다. 어쩌면 정신적인 부분을 과학으로 풀어내려는 이런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처럼, 처음 그대로의 신비함을 간직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을까...
부처님의 손바닥 위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없다. 몇 권의 책으로 세상만물의 이치를 통달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에 대한 공부가 깊어질수록 우리의 영혼도 더 맑아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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