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데온과 방화마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4
J.J.매릭 지음, 박명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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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 시리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EBS에서 어느 일요일 오후에 '기드온 경감'이란 영화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기드온(Gideon) 경감이 장래의 사위가 인사하러 와도 만날 틈이 없을 정도의 눈코뜰새 없는 하루를 보내는 게 내용이라 참 특이한 경찰 영화군, 하고 생각했는데 같은 시리즈의 발간 소식을 듣고 기다려 사본 결과, 원작의 분위기도 그리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영화와 지금 리뷰의 대상이 된 소설은 전혀 다른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으며 전개하는 방식도 다르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거의 같은 듯 하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뛰고 있다'

이 소설은 이를 테면 '경찰청 사람들'+'인간극장'의 내용을 갖고 있다. 해설을 읽어보면 기드온은 체포권이 있는 형사 중 가장 높은 직책을 맡고 있다. 그의 눈으로 전개되어 나가는 책은 곧 6백만 런던 시민의 안녕을 책임지는 스코틀랜드 야드의 일상을 의미한다. 흉악범에 대한 증오, 현장의 드라마, 주인공 자신의 사생활과 종으로 이어진 부하들과의 인간관계가 부수적인 줄거리로 짜여 있는데,

책을 처음 든 순간부터 전혀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갈 정도로 상당히 간결하게 잘 씌어졌다. 적어도 나는 재미있게 읽었다. 50분짜리 단편 TV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속도감을 몇백 페이지의 책에서 느끼기는 쉽지 않은데 말이다. 범인의 심리를 자술하여 범인을 미리 밝혀 놓고 진행하거나, 트릭이 너무 단순한 것이 본격물에 익숙한 눈으로는 거슬리긴 한데, 수법이 단순해! 하고 책을 던져버리기엔 주요 사건이 좀 심각하게 센세이셔널한 편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다루는 사건들이 단순하기 때문에 크로프츠 류와의 차이점이 생기는데, 프렌치 경감 시리즈가 복잡한 트릭을 사실상의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면 [방화마]는 경찰 제복 속의 사람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공무를 수행하다 상해를 입는 경관들의 얘기가 자주 짤막하면서도 비장하게 언급되는 것이 그 증거.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가 범인 찾기 놀이라기보다는 60년대 런던의 사회상과 경관들의 휴머니즘, 사람 사는 이야기인 듯 한데 자칫 유치할 수도 있는 얘기를 무뚝뚝한 기드온의 시점을 선택해서 진지하게 끌어가는 것이 사뭇 괜찮게 느껴진다.

재미있는 것은 똑같이 형사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87분서 시리즈하고는 그 분위기나 정서가 완전히 달랐다. 콜린즈에서 크로프츠, 덱스터, PD 제임스로 이어지는 영국 쪽 경찰 리얼리즘 소설 특유의 우직함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경찰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봄직하다.

호크의 <마법사의 죽음>이 권말에 합본되어 있다. 사이먼 아크라는 신비학자? 사이비 교주?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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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짐승 동서 미스터리 북스 85
에도가와 란포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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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몸이 아플 때, 약에 취하고 병에 짓눌려 도저히 헤어날 수 없을 듯한 꿈세계에 나타난 몽마를 그려내는 듯한 야릇하면서도 기분나쁜 아이디어가 특징이겠다. 수록된 중단편의 태반이 본격물이면서도, 이상심리라든가, 에로틱한 설정이나 기괴한 인물들에 의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찝찝한 느낌을 주는 괴담이 되어 있다.(사도-마조히즘이 대놓고 소재가 되고 있는 것도 상당히 독특하다.) 작가의 숭배 대상인 E.A.Poe의 멋진 작풍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나, 나름대로 읽는 동안 눈살을 찌푸릴 소재를 기괴하게 짜맞춘 솜씨는 높이 살 만하다.

다만 좀 이해가 안되는 것은, 그런 기발하고도 흔히 볼 수 없는 상상력을 실컷 보여주는 것은 좋은데, 그 기발함에 비해 항상 2프로 부족한 듯 결말을 맺는 경우가 많았다. 트릭이 허술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작자가 자기 아이디어에 자신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동양 특유의 겸양인 것인지, 아니면 작자 스스로 벌려 놓은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건지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이다.

마지막 단편 <배추벌레>가 가장 인상에 남았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 호러라고 분류해야겠지만, 그 처절한 분위기 묘사가 같이 수록된 여타 작품들보다 한 단계쯤 업그레이드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실제로 있었던 전쟁으로 인한 비극이라는 점에서 좀더 생생한 서술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note 1) 아마도 이 작가의 단골 탐정인 아케치 고고로의 이름을 <명탐정 코난>에서 차용한 것이 아닐까 한다. 다들 알다시피 코난의 성은 '에도가와'라는 사실도 있고...

note 2) 광학 전공은 아니지만, <거울지옥>에서 나온 장비를 시뮬레이션 해보면 과연 어떤 이미지가 나올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작가는 악마나 품어봄직한 의문이라고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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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 경감 최대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21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 지음, 김민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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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추리소설에서 사용하는 회상씬, 작위적으로 연출한 뒤통수 치는 단서 등등의 드라마틱한 장면이 전혀 쓰이지 않는, 언뜻 보면 건조해 보이는 순차적이고 단순한 스토리텔링에서 독자 자신이 사건을 해결해 가는 듯한 묘한 박진감을 주는 것이 크로프츠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이 소설은 그 독특한 매력이 <통>에 이어 마음껏 발산되는 수작이다.

살인 사건이 터지고 경찰이 수사에 나서 정말 열심히 단서를 수집한 끝에 사건을 해결한다는, 디테일은 꽤 복잡하지만 요약하면 간단하기 그지없는 내용. 덤으로 끝의 한 챕터를 할애해 사건의 경과와 트릭을 친절하게 해설까지 해주는데 이런 것이 소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갈 정도로 덤덤하게 사건을 시간 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렇기에 독자가 탐정보다 앞서 추리하는 재미 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고, 수사자-피수사자 사이의 인간적인 갈등이나, 동기를 설명하는 심리적인 묘사도 없거나 미미하다. 이와 같은 기록문적 성격에 문학적 향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은 바로 프렌치 경감이라는 캐릭터이다.

해설에서도 언급되지만, 프렌치 경감이라는 탐정은 JJ 매릭의 기드온이나 덱스터의 모스 경감과 같은 캐릭터의 선구격인 인물이다. 단란한 부부에, 존경받는 상사이자 유능한 경감이지만, 화려한 경력이나 군계일학의 지능으로 치장한 소위 '명탐정'이 아니기 때문에. 가끔은 사건 해결이 늦어진다고 윗사람에게 한소리 듣기도 하고 수사가 막혀 끙끙대면 부하들이 슬금슬금 피하기도 하는 그야말로 보통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설정인데, 이런 인물의 시선을 따라감으로써 작가는 실제 수사를 하는 듯한 일종의 리얼리즘을 강조함과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그의 감정선과 공감하여 뒤의 전개를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효과도 얻고 있다. 많진 않지만 간간히 보이는 풍경 묘사 같은 것도 철저하게 경감의 시선이 닿는 곳만을 적어 놓을 정도로 꼼꼼한 서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추리팬으로서 특기할 것이 있다면, 셜록 홈즈 시리즈에 대해 작가가 무한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 <통>을 읽을 때 홈즈의 광팬 경관이 등장하는 것을 무심코 넘겼었는데, 여기서는 주인공의 아내가 남편에게 대놓고 Mr. Watson이라고 부르는 장면까지 있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도 재미있지만 직접 읽으면서 느껴야 하는 부분이기에 적지 않는다.

<통>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마치 보고서마냥 살인 사건을 감정 없이 적어내려간 몇 페이지만 참고 읽어가면, UK와 남유럽을 넘나드는 추적담에 시간가는 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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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아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62
S.S. 반 다인 지음, 안동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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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1월 어느 주말, 늦게 일어나서 [몽크]를 놓치고 허전함을 못이겨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눈감고 찍은 것이 이 책. 현재 DMB로 나온 반 다인 시리즈 중 마지막 편인데 표지의 압박이 심해 맨 뒤로 밀렸다. 표지만 봤을 땐 4명의 무희 중 하나가 살해되고 나머지 여자들이 용의자가 되는 전형적인 전개일 줄 알았는데, 읽어가며 용의자는 모두 남자임을 깨닫고 시대상황(30년대)을 감안하지 않은 선입관을 잠시나마 가졌다는 사실을 반성해야만 했음.

반 다인의 소설은 참 이상한 것이, 초반의 사건 개요도 말할 나위 없이 지루하고 - 피해자, 용의자들 모두 클리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으며, 트릭은 단순하다 못해 독자의 지능을 시험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 그걸 수사해 가는 과정은 지루하다 못해 멍청하기까지 한데, 번스의 범죄 미학에 대한 일장 연설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눈을 뗄 수가 없어진다. 마치 발터 벤야민의 미학 저술의 한 부분을 인용한 듯한 착각까지 드는 마술적인 느낌의 연설 하나로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는데, 아마도 작가의 본업(미술 평론)이 적용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대체로 반 다인은 크리스티처럼 Whodunit? 류의 문제를 제시하면서도, 대부분의 추리 소설이 중요시하는 기발한 트릭이나 확실한 논리, 탐정의 매력 따위를 과감히 배제하고 거의 강박에 가까운 인간 심리 분석, 잔혹하고 쿨한 분위기 연출에 모든 것을 거는데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이 100%의 재미로 다가온다. 최근 출간된 반 다인의 일련의 저작들을 읽으며 단 한번도 상황의 엽기성에 전율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이 녀석도 예외는 아니어서 범죄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번스의 묘사로 상상할 때 등골을 지나가는 오싹한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그렇듯이 이번에도 번스는 범인과 냉정한 심리전을 벌인다. 번스와 범인과의 뜬금없는 포커 승부는 다른 번스 시리즈에서의 맞대결에는 그 긴장의 정도가 조금 미진했던 것이, 역자의 친절한 룰 설명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룰에 충분히 익숙해지지 못했던 탓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판돈을 2배로 올려가며 즉석 야바위 게임을 펼친 부분이 기억에 남았으니까... 다시한번 읽으면 어떻게 느껴질지 모를 부분.

화자 '반 다인'의 번스+매컴 커플(-_-) 심리분석이 슬슬 오버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딱 이 책을 끝내게 되었다. 좀 쉬어가면서 DMB 예정 목록에 들어 있는 <딱정벌레 살인사건>을 기다리게 된게,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잘 된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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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랍비는 늦잠을 잤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5
해리 케멜먼 지음, 문영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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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마일은 너무 멀다>의 해리 캐멜먼의 또다른 저서라는 사전정보로 인해 또다른 단편집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책을 골랐는데 장편이었다. 또다른 편견을 털어놓자면, 제목만 볼 때 '금요일'이라는 낱말로 인해 왠지 시리즈의 중간에서 덜컥 시작할 것만 같은 분위기여서 적잖이 긴장했는데 다행히도 이것이 랍비 데이빗 스몰의 첫 시리즈여서 안도한 것. (그래, 로얄 스트레이트만 스트레이트인 것은 아니라고. 해설을 보면 <화요일,...> 시리즈까지 전 5권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것은 반다인 류보다 세이어즈 류에 가깝다. 초인적인 능력의 탐정이 나와서 활극을 연출하는 류가 아니라, 마을의 이런저런 인물들이 삶에 부대끼며 얼키고 설킨 실타래에서 탐정이 간간이 진실을 뽑아내는 부류인 것이다. 기대한 것보다 탐정인 랍비의 등장이 적고 사건의 실마리나 트릭이 간단하다. 오히려 젊은 랍비가 어떻게 유대인 공동체에 받아들여지는가를 그린 서브플롯(subplot)에 이야기의 중심이 자주 기울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별이 하나 깎이지만, 유대 공동체에서의 삶이라는 소재가 우리에게 매우 낯선 것이라는 면에서 충분히 신선함이 있다. 아마도 이런 소설은 히틀러의 박해가 아니었다면, 넓은 땅덩이에 여러 민족이 모여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사는 미국이라는 환경이 아니면 씌어질 수도 없었던 소설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의 큰 줄기에서 곁가지친 자잘한 해프닝에서 유대교의 기본 교리와 학습법, 이웃 기독교도(카톨릭, 프로스테탄트)들의 편견과 오해, 그리고 다른 문화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민족주의적 노력 등등이 주인공 랍비의 입을 통해 독자에게 전해지는데 진지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이 민족을 돋보이게 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소설이 발표된 1960년대에는 비 유태계 미국인들에게도 역시 낯선 소재였을 것이다. 스몰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유대교는 유교와 비슷한 면이 보인다. 내세관이 없다는 점, 사제(랍비)의 의미는 탈무드의 가르침을 조금 더 알고 있는 사람이자 행위의 귀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같은 것들이 말이다.

유대 문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보면 덱스터의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나 스티븐 킹, 탐 클랜시의 저작들처럼 이런저런 인물들이 각자의 장면을 차지하고 행동하다가 메인 플롯으로 합쳐지는 구성을 하고 있어서 많이 산만한 편이다. 아직도 나는 스탠리가 정확히 이 역할극에서 무슨 역할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마치 연재하다가 갑자기 끝내버린 것처럼 이 인물의 수상함은 설명되지 않고 넘어간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뭔가 역할을 하려나?

같이 합본된 <미드나잇 블루>는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가 등장하는 단편으로, 이것도 칼로 베어내는 듯한 신랄하면서도 간명한 문체가 괜찮은 작품이어서 읽을만 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이 작은 공동체에 익숙해진 사람은 반드시 속편들도 출간되기를 바라리라 의심치 않는다. 영리하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데는 어리숙한 데이빗 스몰, 과연 다음 시리즈에서도 짤리지 않고 버틸 것인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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