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랍비는 늦잠을 잤다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5
해리 케멜먼 지음, 문영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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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마일은 너무 멀다>의 해리 캐멜먼의 또다른 저서라는 사전정보로 인해 또다른 단편집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책을 골랐는데 장편이었다. 또다른 편견을 털어놓자면, 제목만 볼 때 '금요일'이라는 낱말로 인해 왠지 시리즈의 중간에서 덜컥 시작할 것만 같은 분위기여서 적잖이 긴장했는데 다행히도 이것이 랍비 데이빗 스몰의 첫 시리즈여서 안도한 것. (그래, 로얄 스트레이트만 스트레이트인 것은 아니라고. 해설을 보면 <화요일,...> 시리즈까지 전 5권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것은 반다인 류보다 세이어즈 류에 가깝다. 초인적인 능력의 탐정이 나와서 활극을 연출하는 류가 아니라, 마을의 이런저런 인물들이 삶에 부대끼며 얼키고 설킨 실타래에서 탐정이 간간이 진실을 뽑아내는 부류인 것이다. 기대한 것보다 탐정인 랍비의 등장이 적고 사건의 실마리나 트릭이 간단하다. 오히려 젊은 랍비가 어떻게 유대인 공동체에 받아들여지는가를 그린 서브플롯(subplot)에 이야기의 중심이 자주 기울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별이 하나 깎이지만, 유대 공동체에서의 삶이라는 소재가 우리에게 매우 낯선 것이라는 면에서 충분히 신선함이 있다. 아마도 이런 소설은 히틀러의 박해가 아니었다면, 넓은 땅덩이에 여러 민족이 모여 서로 간섭하지 않고 사는 미국이라는 환경이 아니면 씌어질 수도 없었던 소설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의 큰 줄기에서 곁가지친 자잘한 해프닝에서 유대교의 기본 교리와 학습법, 이웃 기독교도(카톨릭, 프로스테탄트)들의 편견과 오해, 그리고 다른 문화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민족주의적 노력 등등이 주인공 랍비의 입을 통해 독자에게 전해지는데 진지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이 민족을 돋보이게 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소설이 발표된 1960년대에는 비 유태계 미국인들에게도 역시 낯선 소재였을 것이다. 스몰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유대교는 유교와 비슷한 면이 보인다. 내세관이 없다는 점, 사제(랍비)의 의미는 탈무드의 가르침을 조금 더 알고 있는 사람이자 행위의 귀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같은 것들이 말이다.

유대 문화적 요소를 배제하고 보면 덱스터의 <우드스톡행 마지막 버스>나 스티븐 킹, 탐 클랜시의 저작들처럼 이런저런 인물들이 각자의 장면을 차지하고 행동하다가 메인 플롯으로 합쳐지는 구성을 하고 있어서 많이 산만한 편이다. 아직도 나는 스탠리가 정확히 이 역할극에서 무슨 역할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마치 연재하다가 갑자기 끝내버린 것처럼 이 인물의 수상함은 설명되지 않고 넘어간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뭔가 역할을 하려나?

같이 합본된 <미드나잇 블루>는 로스 맥도널드의 루 아처가 등장하는 단편으로, 이것도 칼로 베어내는 듯한 신랄하면서도 간명한 문체가 괜찮은 작품이어서 읽을만 했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이 작은 공동체에 익숙해진 사람은 반드시 속편들도 출간되기를 바라리라 의심치 않는다. 영리하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데는 어리숙한 데이빗 스몰, 과연 다음 시리즈에서도 짤리지 않고 버틸 것인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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