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카나리아 살인사건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62
S.S. 반 다인 지음, 안동민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평점 :
2003년 11월 어느 주말, 늦게 일어나서 [몽크]를 놓치고 허전함을 못이겨 책장에서 아무 책이나 눈감고 찍은 것이 이 책. 현재 DMB로 나온 반 다인 시리즈 중 마지막 편인데 표지의 압박이 심해 맨 뒤로 밀렸다. 표지만 봤을 땐 4명의 무희 중 하나가 살해되고 나머지 여자들이 용의자가 되는 전형적인 전개일 줄 알았는데, 읽어가며 용의자는 모두 남자임을 깨닫고 시대상황(30년대)을 감안하지 않은 선입관을 잠시나마 가졌다는 사실을 반성해야만 했음.
반 다인의 소설은 참 이상한 것이, 초반의 사건 개요도 말할 나위 없이 지루하고 - 피해자, 용의자들 모두 클리셰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으며, 트릭은 단순하다 못해 독자의 지능을 시험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 그걸 수사해 가는 과정은 지루하다 못해 멍청하기까지 한데, 번스의 범죄 미학에 대한 일장 연설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눈을 뗄 수가 없어진다. 마치 발터 벤야민의 미학 저술의 한 부분을 인용한 듯한 착각까지 드는 마술적인 느낌의 연설 하나로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되는데, 아마도 작가의 본업(미술 평론)이 적용되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대체로 반 다인은 크리스티처럼 Whodunit? 류의 문제를 제시하면서도, 대부분의 추리 소설이 중요시하는 기발한 트릭이나 확실한 논리, 탐정의 매력 따위를 과감히 배제하고 거의 강박에 가까운 인간 심리 분석, 잔혹하고 쿨한 분위기 연출에 모든 것을 거는데 적어도 나에게는 그것이 100%의 재미로 다가온다. 최근 출간된 반 다인의 일련의 저작들을 읽으며 단 한번도 상황의 엽기성에 전율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이 녀석도 예외는 아니어서 범죄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번스의 묘사로 상상할 때 등골을 지나가는 오싹한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항상 그렇듯이 이번에도 번스는 범인과 냉정한 심리전을 벌인다. 번스와 범인과의 뜬금없는 포커 승부는 다른 번스 시리즈에서의 맞대결에는 그 긴장의 정도가 조금 미진했던 것이, 역자의 친절한 룰 설명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룰에 충분히 익숙해지지 못했던 탓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판돈을 2배로 올려가며 즉석 야바위 게임을 펼친 부분이 기억에 남았으니까... 다시한번 읽으면 어떻게 느껴질지 모를 부분.
화자 '반 다인'의 번스+매컴 커플(-_-) 심리분석이 슬슬 오버처럼 느껴지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딱 이 책을 끝내게 되었다. 좀 쉬어가면서 DMB 예정 목록에 들어 있는 <딱정벌레 살인사건>을 기다리게 된게, 시리즈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잘 된 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