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6월 5주
<포화 속으로> - 이재한 감독
정기적인 것은 아니지만, 6월에는 6.25 전쟁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들이 자주 개봉한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달이자, 오래 전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고 의로운 피를 흘렸던 6월. 반 세기가 지나서 이젠 잊혀진 전쟁처럼 느껴졌지만, 2010년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준 한 해였다. 그리고 그 날의 비극을 잊지 말라는 죽은 자들의 외침이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 학도병들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남한군의 고육지책이었다. 그들은 총 쏘는 방법만 배우고 현역 군인들과 같이 즉시 최전선에 배치되었다. 생각하면 얼마나 기가막힌 일인가? 사춘기의 청소년들을 전쟁터로 데려가 총 한 자루 쥐어 주고 최전선에서 잘 훈련된 북한군을 상대로 조국을 위해 싸우라고 하다니! 전쟁에는 이유불문이 없다하더라도 그들은 너무 어렸다.
시대가 많이 변했기에, 영화에서 학도병들이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모습들을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보면 어색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에 상관없이 군대를 가본 남자들이라면 공감 할 것이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국방의 의무란 무엇인가? 군복만 입었다고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 속 깊이 가족과 친구들을 비롯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겠다 다짐하고, 나라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목숨도 바치겠다는 투철한 정신이 의무를 만든다. 좋은 싫든 군대에 와서 이것을 깨달았다면 국방의 의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군인이다.
<서부전선 이상없다> -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
1930년대 만들어진 전쟁영화라고 믿겨지지 않을만큼의 구성의 탄탄함이다. 일단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제작된 전쟁영화들의 교과서와 같다. 전쟁의 참상과 병사들 개개인이 바라보는 전쟁의 회의적 시각, 비극을 짐작하게 하는 복선 등. 이 영화에는 전쟁영화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정확하게 담겨져 있어 더욱 실감난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도 수준급이었고, 특히 그들이 말한 대사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특히 주연급 배우들은 거의 첫 데뷔작일 듯 싶은데, 전쟁과 어울리지 않는 꽃미남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1930년대 배우들이라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이 없다. 이외에도 긴장감을 주는 배경음악과 타격감이 느껴지는 효과음은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반전(反戰)영화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전쟁은 평범한 집배원을 하사관으로 만들고, 학문에 열중해야 할 학생들을 병사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명분을 부여한다. 즉, 자국 내에 전쟁이 발발하는 순간부터 개인의 꿈과 야망은 잠시 접어두고, 조국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날아오는 총탄 속에 바쳐야 하는 것이다.
전쟁은 권력자들이 보기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하겠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는 일이다. 물론 자국 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가족과 친구들의 생존을 위해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막는 것이다. 국민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데 국가 위정자들의 판단 속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국민이 져야 하는가? 나는 이 대답을 정확히 말하기 힘들지만, 한 가지 예로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먼저 도망가는 것은 국가 위정자들이었고,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합법적인 군복무자들과 국민들이었다. 이건 우리 나라 역사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엘라의 계곡> - 폴 해기스 감독
전 세계에 교양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 10명 중 5명 이상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그것을 복구하고 되찾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실제로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 감독의 <화씨9/11>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파병된 병사들은 전쟁을 통해서 점차 반인륜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았고, 포로와 약자에 대한 인정과 자비는 희미해져갔다. 실제로 미군들이 포로들을 학대하고 성적 수치심을 주는 사진들이 언론을 통해 공개 되었을때, 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이 무척이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전쟁터는 선량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기 쉬운 곳이며, 악인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쉽다. 그 곳에서는 오로지 승리를 위한 반칙과 승리자의 만행만 존재한다. 아쉽게도 영화에서 나오는 병사의 말처럼 그 곳에 핵폭탄이 떨어져 모든 것이 가루가 되야 이 전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군복무를 마쳤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지만, 군대라는 곳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특히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인 우리나라는 더욱 더 그렇다. 그들의 인성이나 적성은 솔직히 크게 상관없고 공통적으로 약 2년의 시간만 지나면 자동적으로 전역을 한다. 그러기에 각 병사들의 심신이나 의지에 상관없이 전역 하는 그 날까지 모두가 한 생활관에서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다들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단체생활을 통해 서로를 도울 수 있다고 좋은 취지로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단체생활이 익숙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내성적이거나 심약한 병사들은 진정 하루하루가 힘들고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군대이다. 또한 계급사회에서는 상명하복이 당연한 의무이다. 그렇다면 이미 병사들의 인권이란 사실상 무늬 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 군대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편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군대는 엄연히 남성위주의 사회상이고 웃음과 기쁨보다는 슬픔과 우울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물며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군의 군부상황은 어떨까? 총탄과 폭격이 난무하여 자신과 옆 전우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인권이나 인성, 자비심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큰 기대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포로들은 좋은 먹이감이다. 인간 본성이 가진 폭력과 잔인성은 전쟁에서 표출되기 너무 쉬우며,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침없다. 누가 그들을 전쟁으로부터 구원할 것인가? 아쉽게도 지구의 종말이 오지 않는 이상 이 땅에서 전쟁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