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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카리아트. 새로운 위험한 계급
가이 스탠딩 지음, 김태호 옮김 / 박종철출판사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제13호 2014년10월호
[불온한서재]
위험한 계급의 성장,
프레카리아트와 접속하라!
《프레카리아트》 / 가이 스탠딩 / 박종철출판사 / 2014년6월 / 30,000원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2014년 7월, 일본 요코하마에서는 세계 사회학회(ISA) 주최, 세계 사회학대회가 열렸다. 현재 세계 사회학회 학회장은 ≪생산의 정치≫로 유명한 마이클 뷰러워이(Michael Burawoy) 교수이다. 그는 노동자들은 저항과 동의의 양면적 태도로 ‘생산의 정치’ 내에서 노동과정의 ‘상대적 자율성’을 획득한다고 주장하면서, 구상과 실행의 분리로 인한 탈숙련화 테제를 주장했던 해리 브레이버만의 1974년 기념비적 저작 ≪노동과 독점자본≫을 논박한 바 있다. 사회학회 전임 회장은 마이클 뷰러워이와 함께 ‘유토피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리얼 유토피아≫로 유명한 분석마르크스주의 계급론의 대가 E.O.라이트였다. 이러한 새로운 맑스주의 사회학자들이 기세등등한 사회학대회에 전세계 6천명이나 되는 사회학자가 몰린 것은 자본주의가 좀처럼 위기에서 탈출하기는커녕 더욱 깊은 수렁에 빠지고 있는 지구적 위기상황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새로운 위험한 계급, 프레카리아트
이번 학술대회에서 가장 이목을 끌었던 주장은 ‘기본소득론자’로 잘 알려진 영국의 경제학자인 가이 스탠딩(Guy Standing) 교수였다고 한다. 그의 저작 ≪프레카리아트≫는 계급론의 새로운 지평을 열면서 ‘변혁주체’로서의 프레카리아트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구적 신자유주의는 새로운 위험한 계급을 창출하고 있는데, 이 계급은 이전 시대의 ‘노동계급’이나 ‘프롤레타리아트’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계급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친디아(Chindia)를 포함해 풍요로운 시장경제와 신흥 시장경제에 속한 수백만 명의 새로운 존재들이기도 하고, 제1세계의 배제되고 정체성이 결여된 노인, 범죄자, 여성, 청년 등의 불안정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이기도 하다. 이름하여 ‘프레카리아트’. 불확실하다는 뜻의 “precarious”라는 형용사와 그 어근이 되는 “proletariat”라는 명사를 조합한 신조어인 이 말은 일시직 노동자, 계절노동자를 묘사하기 위해 80년대 프랑스 사회학자들이 최초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들은 고용주가 누구인지 모르고, 피고용인으로서의 집단적 관계나, 미래에 대한 전망도 알지 못한다. 또한, 노동시장 보장, 고용보장, 직무보장, 소득보장, (집단적) 대표권 보장, 숙련기술 재생산 보장 등에서 제외되어 있으며, 일에 기반을 둔 정체성, 즉 직업정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다른 집단의 화폐임금보다 더 낮게 받고 더 가변적이다. 실업은 이미 그들의 삶의 일부이며, 불안은 내재적 속성이다. 따라서 프레카리아트들은 분노(anger), 아노미(anomie), 걱정(anxiety), 소외(alienation) 등 네 가지 A를 일상생활 속에서 경험하게 된다.
프레카리아트의 취약성
그렇다고 이 성장하는 계급은 20세기 ‘프롤레타리아트’처럼 세상을 확 뒤집을 수 있을까? 저자는 이들이 성장하고는 있지만, 아직 대자적 계급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들은 ‘기술상의 힘들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스스로와 교전 중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3차산업 중심의 사회이고, 더구나 업체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프레카리아트들은 내부 경력을 쌓거나, 기술적 숙련을 쌓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일본의 NEET족)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공통된 이해관계를 찾기 이전에 이미 집단 내부에서 스스로와 교전 중이라는 것이다. 각종 연금개혁과 복지의 축소 속에서 노인들은 청년들과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여성들은 남성들과 경쟁하며, 신자유주의 정치는 점증하는 범죄자, 장애인, 이주자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긴다.
국가는 이러한 프레카리아트의 취약성을 이용해 이간질에 몰두한다. 또한, 이들의 ‘시간을 쥐어짜면서’ 생활속 여유를 거세하고 스트레스에 기반한 지옥정치(politics of inferno)를 구사한다. 영장 없이 도청이 행해지고 촘촘한 감시가 일상적인 사회경관이 된다. 근로연계복지(workfare)를 통해 죄책감을 주입하면서 노동윤리를 훈육한다. 프레카리아트의 일부 집단(예컨대 이주자, 범죄자)을 악마화하면서 네오파시즘으로 이끈다. 민주주의는 앙상해진다.
극우파의 부상과 그 계급적 토대
저자는 프레카리아트를 ‘좋은 프레카리아트’와 ‘나쁜 프레카리아트’로 나누는 것은 사태를 단순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현실에서는 ‘나쁜 프레카리아트’의 준동(?)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일본에서 ‘조선인’의 권리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자이토쿠가이(ざいとくかい, 在特会)는 일본 프레카리아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일본의 넷우익(Net 極右)들은 한국으로 건너와 ‘일베’가 되었다. 추석 연휴기간동안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극렬하게 집결해 먹방을 선보였던 ‘일베’들은 일본의 우익들이 조선인들의 권리를 문제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공격, 다문화주의에 대한 반대에 열을 올린다. 비단 일본과 한국만이 아니라 유럽과 북미에 불고 있는 극우파 정당의 부상에는 이러한 ‘계급적 토대’가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태도는 면밀히 분석될 필요가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은 치열하고, 자기 존재는 찌질하고, 일자리는 없고, 불안이 내재화된 현재가 좋을 리가 없다. 나쁜 프레카리아트에게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은 지난날의 ‘황금기’이다.
저자는 이들에게 집단적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기본적인 생존을 보장해주기 위한 낙원정치(politics of paradise)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 공동체의 합법적 거주자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현금 급여를 주는 기본소득은 시장 압력으로부터 독립적인 힘을 길러줘 자본과의 교섭에 당당하게 임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시간 쥐어짜기’에 맞서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되찾기 위한 가능성을 높인다. ‘슬로우 타임운동’이 필요하다.
새로운 형태의 저항은 어떻게 가능한가
우리는 프레카리아트의 상태를 ‘일시적인 예외상태’로 보아서는 안된다. 지구적으로 늘어나는 점차 다수가 되는 이들의 삶의 양태를 그대로 인정해주고 ‘정상상태’로 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지만 이들의 삶의 조건에 부합하는 새로운 형태의 저항방식, 조직방식, 운동방식, 공감과 자긍심의 고양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예컨대 아마미야 가린이 주도한 일본 ‘프리타운동’과 기존 노동조합운동의 외부에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하는 ‘유니온운동’, 그리고 유럽의 유로 메이데이운동(Euro mayday)의 퍼레이드(한국에서도 이를 모방한 시도가 있었다.), 영국의 ‘거리되찾기 운동’(Reclaim the Street)은 프레카리아트의 집단적 역능의 일부를 보여준다.
정통적 맑스주의자들에게는 이러한 프레카리아트라는 카테고리가 계급을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는 자격미달로 보일 수도, 따라서 분석도구의 무용성을 주장할 지도 모른다. 더구나 이러한 반란주체의 새로운 조합과 제시가 새로운 것도 아니다. 네그리와 하트는 ‘사회적 노동자’라는 개념과 ‘다중(multitude)’을 제시한 바도 있다. 또한 계급론적 분석도구로서의 유의미함이 곧바로 실천적 유의미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가이 스탠딩의 개념과 논의를 교조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다만, 우리가 오랫동안 마주하고 있는 ‘운동의 위기’의 알맹이가 ‘운동 주체의 (재)생산의 위기’라고 한다면 우리는 익숙하지 않더라도 좀 더 긍정적인 숙고를 일부러 해야만 한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되풀이되는 세대론에 기댄 폄하는 지겨울 뿐만 아니라 반대급부의 혐오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우리가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는 사이 프레카리아트는 우파들의 선동 속에서 정말로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읽을만한 책>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 이진경·신지영 / 그린비 / 2012년8월 / 20,000원
《일본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전》 / 기노시타 다케오 / 2011년7월 / 15,000원 / 이 책의 5장과 6장에는 프리터를 중심으로 기업횡단적, 개인가입 유니온 건설의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프레카리아트》 / 아마미야 가린 / 미지북스 / 2011년7월 / 15,000원
《분배의 재구성》 / 브루스 액커만 외 / 나눔의집 / 2010년 2월 / 18,000원 / 이 책은 기본소득에 대한 논쟁과 분석을 다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