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경 지도 - 2008~2014 변경을 사는 이 땅과 사람의 기록
이상엽 글.사진 / 현암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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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막 안에서 별 헤아리는 난쟁이들에 대한 기록

양솔규 기획조정실 국장


변경 지도/ 이상엽 / 현암사 / 201412/ 25,000




출처 : 노동당 기관지 <미래에서 온 편지> 2015년 1월호 


우리 당원들의 책을
불온한 서재에 여러 번 소개하게 되니 너무 당파적인거 같아 면구스러운 구석이 없지 않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 당원들이 그만큼 불온한것을.

이번엔 사진집이다. 아니, ‘포토 르포르타주이다. 사진집이라고 하기에는 글이 너무 많은 거 같고, 애드가 스노우의 중국의 붉은별이나, 존 리드의 세상을 뒤흔든 열흘에 비해선 사진이 많다. 그러니까 포토 르포르타주이다.

 

사진이라는 최후의 언어가 우리에게 너무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일찍이 19805월 광주에 대한 사진은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바꿔 놓지 않았던가? 또한 운동권의 잘 나가던 시절에는 사회사진연구소의 아주 선동적인 사진들(노동자-강철과 눈물의 빛)이 우리 가슴을 뜨겁게 달구웠다. 또 다른 종류의 사진들도 있었다. 1988, 1회 노동문학상을 수상한 박노해의 신작시가 발표되어 엄청난 판매고를 올렸던 노동문학의 표지에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 선생이 찍은 탄광촌의 소녀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조세희 선생의침묵의 뿌리의 표지에도 사용). 그리고 75년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 강운구 선생의 사진들과, 부산 사람들의 억척스러운 삶을 기록한 최민식 선생의 사진들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이상엽이라는 낯익은 작가를 만난다. 우리에게 이상엽은 사진가보다는 진보신당 정책위 부의장, 문화예술위원회 준비위원장으로 더 익숙하다. 그런 그가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발적이었다. 1991년 인민노련이 중심이 되어 만든 월간길을 찾는 사람들(93년에 사회평론과 통합해 사회평론 길이 됨. 보통 지에 비교해 지로 불림)에 입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는 예술적 교양(?)에 상당한 공을 들였던 거 같다. 지금은 시대의 스테디셀러가 된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이 지면을 통해 연재되었고, 탄광 화가로 잘 알려져 있는 황재형 작가의 그림이 표지를 장식하곤 했다. 그런 지였지만 경영난을 피할 수는 없었다. 사진부 기자들이 임금체불로 모두 사직하게 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진부 기자로 발령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그는 사진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이상엽은 변경 지도를 통해 이 땅의 변경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을 기록했다. 변경(邊境)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지리적 변경과 심상적 변경 양 측면을 모두 아우른다. 예를 들어 변경처럼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이미 변경이 된 곳들, 예컨대 철거민들의 주거지”(10)가 그렇다. 그렇기에 변경은 공간적으로만 구축되는 것이 아니모든 변경은 서사를 통해 역사적 기억에 관한 의식을 제공하면서 구축된다. 따라서 모든 변경은 역사적이며 인위적이다. 또한 변경은 원심력으로 밖으로 튀어나가기도 하지만, 구심력을 통해 중심으로 돌진하기도 한다. 변경은 단지 무질서의 세상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는 자궁이다. 이때 오래된 권력이자 자본이 만든 중앙에 맞서 변경자본과 낡은 권력을 허무는 진지가 된다.(16)

이상엽을 비롯해 수많은 사진가들은 현장으로 달려갔다. 싸우는 현장, 소리치는 현장으로 말이다. 용산으로, 강정으로, 밀양으로, 진도로, 광화문으로. 사람들의 울부짖음과 고통을 사진으로 옮기고자 했다. 왜 그랬을까? “도덕적인 책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상엽의 사진들을 통해 이러한 변경의 지도를 각인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슬퍼서가 아니다. 이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이들의 기시감이기 때문”(42)이다. ‘기묘한 사막이 되고 만 새만금과 녹조로 인해 거대한 고체가 된 듯한 4대강의 운명은 어찌 이리도 같은가? 용산참사와 밀양의 밀려나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리 닮았을까? 그래서 저자는 다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탐욕은 이제 강으로 갔고, 다음은 어디일까? 분명 산이다. 그 다음은 어디일까? 섬이다. 그리고 또 어디로 이어진 것인가?”(79) 변경에 머무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내성천과 같이 자본과 권력에 피해 입는 자연도 역시 변경이다. 학살당한 내성천의 수양버들과 금호동의 재개발지역의 철거민들은 모두 변경에 머무는 주체들이다. “나무든 인민이든 소리치지 못하면 이리 된다.”(99) 그럼에도 끊임없이 돌진하는 변경의 삶은 깊게 흐르던 내성천을 닮았는가? 눈에 잘 띄지는 않아도 면면히 흐르는 도도한 삶의 의지가 우리를 중심으로 이끄는지도 모른다.

 

지리적이든 심상적이든 변경은 무엇보다도 경계이다. 변경의 경계는 가림막으로 나타난다. 용산참사의 현장을 가리는 가림막, 강정 해군기지 건설현장의 참혹함을 가리는 가림막, 그리고 밀양 송전탑 현장 접근을 막는 가림막. 성북에도, 왕십리에도, 서대문에도, 마포에도. 세상을 나누는 가림막 “21세기,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가림막 안쪽에서 별을 헤는 난쟁이들이 있다.”(42) 그리고 난쟁이들가림막 안쪽 폐허 속에서 소곤거린다.(26)

사실 그의 이러한 변경에 대한 사색은 오래된 것이다. 그의 전작 최후의 언어에서도 이러한 사색의 일단을 내비췄으며, 파미르에서 윈난까지에서는 중국의 변경 서부중국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 변경 시대는 철저하게 변경만을 묵묵히 기록한다. 그래서 사진은 흑백이다. 사진가들에게 흔히들 기대하는 아름다운 이미지들은 중단된다.(40) 화려한 스펙타클한 경관을 기대한다면 차라리 그의 전작들, 파미르에서 윈난까지,최후의 언어,중국을 보기 바란다.

 

저자는 기록가로서의 자기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삶에 대해 숙고한다. “노동자 계급도 아니고, 인텔리겐차에 가까운, 그러나 노동자 계급처럼 행동하지만 또한 자본과 권력의 미디어에 의존해야만 하는”(115) 모순적 위치와 역할행동에 대해 말이다. 그는 노동자들에게, 분단의 풍경에 다가가지 못해 억지로라도 망원렌즈를 당겨보지만, 피사체는 커지기만 할 뿐 그곳으로 한 발자국도 다가서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사진가들의 사진을 사준 역사가 없을 뿐만이 아니라 사진집도 사지 않는다. OECD 최장 노동시간, 불평등 지수 최고인 한국사회에서 독서 안하기로 OECD 1위인 것은 당연한 것인가?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우리는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그래서 그는 사진가라는 외피를 벗고 그들의 벗이 되어 보겠다고 진보정치에 뛰어들어 5년을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카메라는 무력했고 나의 글은 공허했다. 19대 대통령선거가 있었던, 앞으로 5년이 결정된 밤에 꾸역꾸역 글을 썼다. 그리고 또 깨닫는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는.”(최후의 언어, 38) 그래서 그와 내가 동의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내게 가장 좋은 카메라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손에 잡았을 때 그것이 손의 연장으로 느껴지며 파인더를 눈에 대는 순간 그것이 내 눈이라고 생각되는 카메라다.” (최후의 언어, 275) 아마도 민중들이 노동당을 필요로 한다면, 노동당이 이러한 카메라가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일게다. “문을 나서면 추락할 것 같은”(125) 사람들의 몸을 녹여 주는 국밥 같은존재 말이다.

 

 

<더 읽을만한 책>

최후의 언어/ 이상엽 / 북멘토 / 20146/ 16,000

파미르에서. 윈난까지./ 이상엽 / 현암사 / 201112/ 17,000

중국/ 이상엽 / 눈빛 / 2007/ 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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