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진해.창원 여행자를 위한 도시 인문학
김대홍 지음 / 가지출판사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처 :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18년12월, 통권50호

 

책담(冊談)

 

 

 

공간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방법

 

마산·진해·창원/김대홍/가지/201811/16,000

 

 

   

양솔규 / 편집위원장

   

 

내가 마산에 처음 와 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1989) 형과 함께 내려왔을 때였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탄지 5시간을 넘겨 달린 끝에 마산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화장실을 갔는데, 너무 낡아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곤 밖으로 나왔는데 싸우듯이 소리를 지르는 경상도 사내들의 사투리들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일본말 하는 줄 알았다. 너무 시끄럽기도 하고 답답한 나머지, 터미널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밖에서 얼굴도 모르는 우리 형제를 마중 나와 있던 사람은 대림자동차 ()건곤이형이었다. 형은 우리 형제가 어린 국민학생일 거라 생각해서 종합사탕 두 봉지를 사놓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고삐리둘이서 내리자마자 담배부터 꼬나물고 있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창원에 처음 가 본 것도 그 즈음이었던 듯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명곡동, 명서동을 지났고, 창원광장과 용지문화공원, 그리고 창원대로를 따라 공단을 둘러보았다. 명곡동, 명서동의 잘 정비되어 있는 인도와 가로수, 인도 옆 파란 풀밭과 그 위에서 삼삼오오 돗자리를 깔고 삼겹살을 불판에 올리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들, 빨간 벽돌 2층집들이 도열한 모습을 보면서, “한국의 노동계급이 이렇게 잘 사는가?” 라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제 나는 서울에서 보낸 유년시절과 청소년기 기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마산, 창원, 부산에서 보냈다. 대략 마산에서 6~7, 창원에서 7~8, 부산에서 9~10년 쯤 보낸 거 같다. 창원은 뜨내기(?)들이 모인 도시이다. 내 가까운 주변만 보더라도, 함안에서, 경북 성주에서, 고성에서, 산청에서, 구미에서, 남해에서, 밀양에서, 창녕에서, 전북 남원에서, 서울에서 창원으로 온 사람들이다. 창원 토박이는 만나본 적이 없는 거 같다. 논밭 밖에 없던 곳에 대규모 기계단지가 들어섰으니 이런 상전벽해가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수도권에는 창원 같은 도시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고 있다. 인천공항 가는 길에 있는 서울 강서구 마곡이라는 곳은 대규모 R&D 센터와 아파트가 입주해 있는데, 불과 4년 전인 2014년에는 이곳도 논밭뿐이었다. 아직도 40% 밖에 안 지어졌다니, 그 규모가 얼마나 될지 모를 일이다. 경기도 고양시 삼송이라는 곳은 어떤가? 신세계 스티필드와 이케아 쇼핑몰, 대규모 세브란스 병원과 아파트 단지까지 없는 게 없다. 도시에도 생로병사가 있는 건 당연할 터이지만, 그 속도는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고향과 거주지가 같지 않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만, 고향에 대한 개념도, 또 자기 지역에 대한 개념도 또 제각각일 것이다. 태어난 곳이 꼭 자기의 고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거주지라고 해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만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산과 창원, 진해에 사는 사람들은 오랜 시간 그 터전 위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가족, 동료들과 살아가면서 준거(準據) 지역으로서의 마창진(또는 통합창원시)을 만들어 나간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하는 마산, 창원, 진해(또는 통합창원시)와 남이 생각하는 마산, 창원, 진해가 같은 것만은 아니다. 도시는 용광로와 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서, 집단적 경험을 공유하고, 새로운 경험을 창조하며, 후속세대에게 전파하고, 또 새로운 집단과 세대가 이를 반복하면서 낡은 것이 소멸하고 새로운 것이 창조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도시에서의 경험, 도시에서의 기억은 고정된 것일 수가 없는 것이다.

막 촌에서 올라와 창원 공단에 입사했던 50년대, 60년대생 남성 노동자와, 도시에서 태어나 대학에 다닌 70년대생과, 마창진에서 태어나고 자란 90년대생 청년들의 도시 경험은 결코 같지 않다. 마산에서 고입 입시지옥을 치렀던 평준화, 또는 비평준화 세대들과, 진해에서 해군으로 복무하는 직업군인의 경험도 다를 것이다.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 시골에서 올라와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일하다가 마산에 정착한 중년의 여성과 2000년대 대학을 다니고 지금은 공무원이 된 창원의 여성 노동자의 도시 경험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마산, 창원, 진해에 대해 우리의 기억은 무궁무진하고 아직 이해하지 못할 만큼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 지역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그 지역을 잘 안다거나 잘 이해한다고 가정할 수는 없다. 자기 경험에 갇혀 지역의 다양한 면을 보지 못할 수도 있고, 삶 속에 묻혀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외지인을 안내하다보면 답답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 무지 때문일 때도 있지만, 그만큼 잘 알려지지 않고 정보가 부족한 마산, 창원, 진해의 소중한 문화와 경관들이 안타까운 것이다.

 

이러한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해소시켜줄만한 책이 나왔다. 마산·진해·창원는 따끈따끈한 책이다. 발간된 지 한 달도 안된 책이다. 게다가 글쓴 이가 아마도 나보다 한 살 위(1972년생)인 거 같고, 마산에서 초중고를 나왔으며(마산중앙고), 진해에서 군생활을 했고, 창원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 책에는 주로 80년대 마산에서 초중고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만이 아는 정서가 깔려 있다. 가야백화점과 성안백화점에 대한 글도 그렇고, 고입시험 커트라인 전국 1위였던 마산에 대한 추억이 그렇다. 물론 저자는 이를 극복하고자 마산, 창원에 살았던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와 60~80년대 신문 기사들도 인용하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자세히 알지 못했던 여러 정보들을 집대성한 데 있다. 예를 들어 신라시대 최치원과 마산에 얽힌 여러 사연들이 그렇다. 한때 청주 생산 1번지였던 술의 도시 마산에 대한 글에서는 일제 강점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술의 역사, 청주, 맥주, 소주에 얽힌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강은철의 노래 <삼포로 가는 길>의 삼포가 진해의 삼포마을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80년대 유명 듀엣 베따라기의 멤버 이혜민이 무전여행을 이곳 진해 삼포마을에 왔던 게 인연이 되어 이 노래가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재밌다. 나도 학창시절 이 노래를 즐겨 불렀기 때문에 눈길이 갔다. 진해 중화요리집 영해루(현 원해루)에 대만 장제스 총통이 방문했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이 책은 이해하기 쉽게 깔끔한 문체로 잘 썼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저자의 꼼꼼한 조사와 취재에 더해 자신의 경험을 녹여 냈기에 더 돋보인다. 또 하나의 미덕은 최신 정보들을 전부 반영했다는 것이다. 2018년 여름 다시 개장한 광암해수욕장 소식이나, 출사 명소로 뜬 옛 도지사 관사 앞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창원(진해)해양공원 소개가 그것이다.

 

목포나 인천, 부산, 또는 바다 건너 산둥반도 칭다오 등을 가보면 근대 도시역사에 대한 각 도시들의 치열한 발굴 노력들을 볼 수 있고, 또 이러한 노력들이 자기 지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높은 지역애와 지역정체성 형성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점들이 마산, 창원, 진해 각각의 경우에도 타 도시에 비해 뒤떨어져 있고, 더군다나 무리한 행정통합으로 만들어진 통합창원시는 이런 점들이 진척되는 것을 가로막고 더 꼬이게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점에서 마산 토박이(토박이라는 말도 상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들이 가진 상실감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아무튼 통합창원시에 대한 판단과는 별개로 마산과 창원과 진해는 시내버스를 타고 서로 교류를 해왔던 친숙한 단위공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1987년에 마산창원노동조합총연합(마창노련)을 만들었었던 거 아닌가. 이 책은 그동안 마산, 창원, 진해의 도시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도, 그리고 이를 타 지역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데에도 귀중한 참고점이 될 것이다.

 

여러 기관들에 책 서평이나 책 소개글을 쓰다보면 과연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저 책을 사서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 소개하는 이 책 마산·진해·창원는 꼭 사서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경험한 마산, 창원, 진해와 비교도 하고, 술자리에서 아는 체도 하고, 마창진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안내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주변에 이 책 소개도 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2000년대 비정규직의 눈으로 본 마산진해창원 도시인문학이 나올 수도 있고, 경력단절여성의 눈으로 본 도시인문학이 나올 수도 있다. 도시는 그렇게 풍요로워질 수 있다.

    

 

<함께 보면 좋은 책과 사이트>

 

*아래 책들과 블로그 등에서 마산 창원 진해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오만둥이나, 이만기 이전 씨름계의 전설 김성률에 대한 이야기 등이 있다. 아래 책 저자 중 한 사람은 극우적 입장이기는 하나, 마산에 대한 내용은 꼭 그런 관점은 아니어서 소개한다. 경남대 유장근 교수님의 책들은 현재 서점에서 구하기는 힘들다. 걸어서 만나는 마산이야기는 사림평생학습센터, 의창평생학습센터, 중앙평생학습센터에서 대출할 수 있다.

 

그곳에 마산이 있었다/남재우, 김영철/글을읽다/2016

걸어서 만나는 마산이야기/유장근 외/리아미디어/2011

마산 창원 역사읽기/유장근, 박영주 외/불휘/2003

부산/유승훈/가지/20179/14,000
허정도와 함께하는 도시이야기 http://www.u-story.kr/

역사와 삶의 풍경들(유장근 명예교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yufei21


<오류 & 띄어쓰기>

-115쪽 : 1873년 => 1973년
-125쪽 : 2003년 3월 3.1 민주묘지 => 3.15 민주묘지

-139쪽 : 경복고 => 경북고(?) 경복고는 서울.

-275쪽 : 것투성이 => 것 투성이  (띄어쓰기)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 호감을 갖고서 보는 것과 비호감인 상태에서 보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마산, 진해, 창원은 비슷한 위도 경도 상에 있지만 제각기 다른 매력을 뽐낸다. 실제 세 도시를 다녀보면 너무나 다른 매력에 놀랄 것이다. 마산에 와서 아귀찜만 먹지 말고, 진해에 와서 벚꽃만 보지 말고, 창원에 와서 잘 뻗은 도로만 보지 말고 그밖에 숨은 매력들도 많이 즐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기춘과 그의 시대 - 위험한 법 기술자의 반면교사 현대사
김덕련 지음 / 오월의봄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담(冊談)

 

위험한 법 기술자의 반면교사 현대사

 

김기춘과 그의 시대/김덕련/오월의봄/20185/19,500

 

    출처 :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49호(2018년 9월호)

   

양솔규 / 편집위원장

 

      

이번 호의 제목은 지금 소개하는 책의 부제와 같다. 위험한 법 기술자의 반면교사 현대사! 이 부제와 같이 이 책의 내용을 잘 설명해주는 제목은 없는 거 같다.

 

특이한 점은 저자가 법 기술자라는 표현을 쓴 점이다. 보통 우리는 판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을 지칭할 때, ‘법 기술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기술자라고 하면 법조인에 비해서는 어떤 의미에서 하위 계층이라는 뉘앙스도 있고, 법조인에 대해 오랜 기간 동안 전문적인 자격을 갖춘 직업인이라는 상식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공평부당한 기준이자, ‘진리’, ‘정의등의 이미지가 덧 씌워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법 기술자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저자는 누군가의 주문에 따라 을 이용하고 적용하고 만들어내는 일종의 도구적 존재로 법률가들을 보고 있는 거 같다. 그렇다면 누가 법조인들을 일종의 기술자로 고용하고 부리는 것일까? 바로 권력자일 것이다. 권력자의 입맛에 맞게 을 이용하는 법 기술자들은 공명정대하지도 않으며, 합리적이지도 않다. 개인의 출세와 욕망을 위해 반공극우체제 권력자들에게 기생해 을 수단화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고 이들이 그렇게 구축해 온 암흑의 현대사가 대한민국의 현대사이다.

 

또 하나 특이할만한 점이 있다. 보통 현대사를 다루는 책을 보면, “87년 민주화 이후”, “876월 항쟁이 지나고등의 표현이 많이 쓰인다. 그러나 이 책에는 876월 항쟁과 더불어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시대의 결절점으로 반복해서 언급한다. 그만큼 저자는 소위 일반민주주의, 형식 민주주의의 분기점이라고 얘기되는 6월 항쟁뿐만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 실질적 민주주의의 도약점이 되는 789월 노동자 대투쟁을 중요시하고 있다. 저자는 국사학을 전공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바꾸는 파업>(이후, 2001)이라는 책을 통해 국내외 노동자들이 파업이라는 자신의 무기를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지 요약한 바가 있다

  

 중앙정보부 대공수사실장 시절의 김기춘

 

이 책에서 다루는 인물은 우리가 다 아는 그 김기춘이다. 그런데 이 김기춘이라는 인물은 그를 통해 한국 현대사가 거의 전부 설명될 정도로 지대하고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얼마나 광범위한지는,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는 적폐꺼리들, 예컨대 최악 인권유린에도 무죄다시 재판정 서는 형제복지원’”(2018.9.13.),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노태우 정권 기획 여부 조사”(2018.9.10.) 등 연결되지 않는 구석이 없는 걸 봐도 잘 알 수 있다.

 

김기춘은 61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후 67년 대학원 석사논문을 쓰게 된다. 석사 논문 제목은 <습관적 범인의 처우에 관한 연구: 보안처분의 도입을 중심으로> 이다. 그는 이 논문을 통해 보안 처분을 광범위하게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신 장애자의 치료 요양 시설, 음주자, 중독자 등을 위한 요양 금단 시설, 부랑자의 노동소 수용, 경향범에 대한 보안 구금 제도 등을 시급히 채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김기춘은 유신 헌법을 기초한 사람이다. 유신 헌법은 보안 처분을 최초로 규정하였고, 이후 사회안전법, 보안관찰법, 내무부 훈령 제410호 등이 만들어진 바 있다. 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체 강제로 끌려가 강제노동과 폭행, 고문 등에 시달리다가 500명 넘은 사람들이 사망한 사건이 바로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그리고 형제복지원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이를 방조한 사람이 김기춘의 고등학교, 대학교 1년 선배이자, 고시 한 기수 후배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다. 박희태는 876월 당시 부산고검장이었고, 김기춘은 대구고검장을 하다가 법무연수원장으로 이동한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김기춘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당시 노태우 정권에 항의하며 분신 자살한 김기설 전민련 사회부장의 유서를 강기훈 총무부장이 써줬다는 말도 안되는 날조된 사건이다. 오죽하면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이라고 불렸을까? 당시 법무부장관이 바로 김기춘이었다. 김기춘이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91526, 검찰은 강기훈에 대해 자살 방조 혐의로 사전 구속 영장을 발부받았다. 강기훈은 948월 만기 출소했고, 2015, 사건 발생 24년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를 구속 기소했던 책임자들, 법무부 장관 김기춘, 검찰총장 정구영, 서울지검장 전재기, 그리고 잘못된 판결을 내렸던 1심 부장 판사 노원욱, 2심 부장 판사 임대화, 주심 대법관 박만호 등 그 누구도 강기훈에게 사과와 반성, 참회의 말 한마디 건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88년 12월, 노태우로부터 검찰총장 임명장을 받은 김기춘

 

이 책의 목적은 한국 현대사를 암흑으로 만든 악의 축들이 어떤 방식과 과정을 통해 이를 수행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지배체제의 민낯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 세력의 뿌리가 너무나 깊고 그 해악이 크기 때문이다. 김기춘은 노태우 정부 시절, 검찰총장으로 재직시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 했다고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무좀과 비슷해서 뿌리를 뽑지 않으면, 또 언제 독버섯처럼 돋아날는지 모른다.……그만큼 끊임없는 사상 투쟁, 국민의 사상 무장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김기춘이 92년 대선을 앞두고 부산시장, 부산경찰청장, 부산고검장 등 주요 기관장들을 초원복집에 모아놓고 관권선거, 부정선거를 획책했으나, 처벌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초원복집에서 김기춘의 선거 부정 발언에 한 술 더 떠 맞장구를 쳤던 당시 부산지방경찰청장은 5개월 후 경찰청장이 되었고, 1997년 대선에서는 안기부 1차장으로서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북풍 공작을 주동했다. 요즘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던 영화 <공작>의 실제 사건이 바로 저 북풍 공작인 것이다. 발본색원 하지 못하면 독버섯처럼 피어나는 극우지배세력의 끈질긴 생명력과 멈추지 않는 활동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 그리고 문민정부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지나왔지만, 유신의 잔재, 군사독재의 뿌리는 광범위하고 건재하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이명박근혜 시대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방심하고 있거나, 역사를 망각하고 용서를 입에 올리는 순간 저들은 자신들의 학맥, 혈맥, 지연 등을 이용해 순식간에 상황을 역전시킨다.

 

400쪽이 넘는 분량에 빼곡한 원조 법꾸라지’, 위험한 법 기술자의 행적을 좇다보면 우리는 이번 정부가 촛불혁명의 성과를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그리고 적폐청산과 제도적 변화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꼼꼼하게 감시해야 할 필요성을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 유신잔재, 5, 6공 잔재를 청산하지 않고 타협하고 이와 더불어 재벌중심 경제체제를 오히려 강화시킨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가 사실은 이러한 권력에 기생하는 위험한 법 기술자들과 적폐세력의 숨통을 열어준 것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기춘이 제시한 노무현 탄핵 논리들은 고스란히 박근혜 파면의 정당성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김기춘은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 대법원 선고가 늦어지면서 구속된 지 1년 반 만에 풀려났다. 수많은 사람들을 간첩으로 조작하고, 고문하고, 감금했던 사람, 부정선거를 기획하고, 헌법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말살한 사람, 법의 허점을 이용해 법을 권력자의 도구로 전락시킨 사람은 지금 자유롭게 활보하고 있다. 우리가 김기춘과 그의 시대를 반추해야 할 이유는 김기춘 한 사람만의 처단을 넘어서는 문제다. 해고 노동자들과 민주화를 위해 힘써 온 사람들의 피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청와대와 결탁해 재판을 거래하고 삼권분립을 스스로 허문 사법부, 그리고 아직도 권력에 빌붙어 정치 검찰공화국의 신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검찰, 재벌과 권력자에 기생하는 수많은 로펌 등 법 기술자들의 네트워크는 여전히 강고하다. 그들의 잘못된 행태를 반면교사 삼아 그들이 군림할 수 있었던 토양을 바꿔 내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자, 남아 있는 자들의 도리일 것이다. 아직 촛불혁명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함께 보면 좋은 책>

 

남산의 부장들, 김충식, 폴리티쿠스

시크릿파일 반역의 국정원, 김당, 메디치미디어

역사의 퇴행을 막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한다. 청산해야 할 것을 청산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를 해방 후 한국인들은 뼈아프게, 거듭해서 되새겨야 했다..."뿌리를 뽑지 않으면, 또 언제 독버섯처럼 돋아날는지 모른다." 이것이 어쩌면 김기춘이 자신의 삶을 통해 반면교사 형태로 한국 사회에 전한 최대 교훈일지도 모른다. 396~39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 - 기획: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오건호 외 지음 / 철수와영희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처 : 창원 노동사회교육원 <연대와소통> 2018년 여름호(48호)

 

책담(冊談)

 

복지국가 주체형성도 우리 몫

   

나라는 부유한데 왜 국민은 불행할까?/남재욱, 오건호 외/철수와영희/20182/16,000

        

양솔규(편집위원장)

 

이번에 소개할 책 제목은 너무나 직접적이다. 책 제목이 주제를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어서 더 이상 소개가 필요 없을 지경이다. 그래도 책 제목을 다시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책 제목은 두 명제로 나뉘어진다. 나라는 부유하다. 국민은 불행하다. 두 가지는 상호 모순적이다. 상식적으로는 나라가 부유하면 국민이 불행할 이유가 없다. 역으로 국민이 불행한데 나라가 부유하다는 것 역시 이해가 안된다. 두 명제 사이에 뭔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뜻이다.

   

베버리지가 1942년에 제출한 <사회보험과 관련서비스> 보고서. 영국 사회보장제도의 기초가 되었다.

 

나라가 부유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동남아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우리나라가 상당히 잘 산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못사는 나라 국민들에 비해 부유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데, 그렇다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하지는 못한다.

 

나라가 진짜 부유한가?’ 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 한편으론 자본가들이 국제경쟁 운운하며 엄살을 피고, 국가는 경제지표 악화를 얘기하고, 보수언론들도 장단을 맞추며 설레발을 치면 진짜 어려운가보다!’ 하며 불안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허덕이는 본인의 살림살이를 스스로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부유함이 의심스러워진다.

 

이 책을 쓴 저자들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약칭 내만복’)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이론적, 실천적 과제들을 검토하고, 교육하고, 실천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의사, 변호사, 진보정당, 노동조합, 협동조합, 주민운동 등의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조직이다.

저자들의 생각은 1강과 2, 그리고 7강을 통해 알 수 있다. 1강에서는 복지국가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논의한다. 무상급식 도입을 둘러싸고 벌어진 보편복지, 선별복지 논쟁을 거치면서 점차 복지 확대를 거치게 되는데, 그럼에도 우리 복지제도의 약점들이 드러났다. 재정장벽 복지의 불균등발전(공공부조와 사회보험의 취약) 낮은 복지의 질 과도한 사적복지 지출 복지주체의 부재가 그것이다. 서구의 경우 마지막 다섯 번째 문제인 복지주체를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이른바 경성권력)이 담당했지만 우리 사회는 이 경성권력이 취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당장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이 힘이 배가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만은 없다. 저자는 아래로부터의 의제별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연성권력을 구축하면서 주체의 부재를 돌파하자고 주장한다. ‘건강보험 하나로운동을 반성하면서 어린이 병원비 완전 100만원 상한제사회복지세신설을 추진해 나가자고 한다. 이 책의 주요한 결론이 1장에서 다 나온다.

 

2강는 보편적 복지의 원리를 설명한다. 다른 나라 복지국가의 경험을 통해 우리 복지 담론에서 대립되었던 보편적 복지제도선별적 복지제도간의 대립된 구도가 실은 근거가 없고, 둘은 할당 원리일 뿐이며, 보편주의와 선별주의가 정도로 구분되는 개념임을 밝힌다. 따라서 보편적 복지국가를 추구하는데 있어서도 두 가지 원리가 모두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7강은 복지제도의 가장 중요한 전제인 복지 재원인 세금 문제를 다룬다. 저자는 문재인 정부가 바라는 초과세수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법인세 과세표준 대상을 2000억이 아니라 200억으로 확대하고, 법인세율은 25%로 정상화 해야 한다. 둘째, 주식 양도 차익과 주택 임대 소득에 대해 과세 기준을 낮추고, 누진 과세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보유세를 늘려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토지 60%, 주택 70%) 고정시켜버린 공정시장가액을 지방세법 시행령을 통해 100%로 늘리거나, 과세표준을 공시지가가 아니라 실거래가로 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여기서도 목적세 방식의 사회복지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3, 4, 5, 6강은 의료복지, 주거복지, 공적연금, 노동복지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문재인 케어의 문제점들과, 스페인 스캇운동, 일제 강점기 차가인 동맹’, 독일의 세입자 협회 등 주거복지 주체 소개, 국민연금 외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의 구축 문제, 도 결코 만만한 내용은 아니다.

 

-지난 2010, 2014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보편복지를 주장하면서 수도권 광역의원 판도를 뒤집은 바 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복지이슈가 실종되었다.

 

슈퍼위크가 지나가고 있다. 북미정상회담이 있었고,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있었다. 아쉬운 것은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속에서 복지제도를 둘러싼 지방선거의 의제들이 전혀 주목받지 않았고 논의되지 못한 것이다. 선거가 문재인으로 시작해 문재인으로 끝나면서 과연 민주당의 지방정부들이 복지제도를 확충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심사숙고 했고, 추진할 수 있을지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보편복지 논쟁이 시작되면서 지방선거 판세를 뒤집었던 2010, 2014년을 돌아보면, 2018년의 지방선거는 묻지마 정책’, ‘묻지마 후보속에서 치러지면서 경천동지할 변화를 일구어 냈음에도 불구하고 내실을 다지지는 못한 거 같다. 지방권력을 선출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감시하고 개입하는 4년간의 실천이 절실한 이유다. 저자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복지국가의 주체형성의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이 고민은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의 토대를 만드는 것과 별반 다른 고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 중 한명인 최창우 내만복운영위원장은 이번 2018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 노원병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것이다. 결과는 저조한 득표에 머물러 아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노원주거복지센터 등 주거권 운동을 해오면서 정치에도 개입하는 것을 보면(그는 예전에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노원구청장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복지주체 형성, 복지제도 확충과 진보정당의 토대 마련이 언젠가는 결실을 맺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제 한국은 발전국가 단계를 지나 복지국가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국내외 환경이 격변하고 있지만, 그건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일관된 방향성과 기준을 마련하고 꾸준히 요구하고 관철하는 활동만이 중단없는 개량(?)으로 안내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제도적 문제점과 개선할 방향을 이 책을 통해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내가 만드는 공적 연금>, 오건호, 책세상, 20169, 13,000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오건호 외, 피어나, 20132, 15,000

-EBS 다큐프라임, 2013, <행복의 조건 복지국가를 가다> 1~6(노동,의료,주거,보육,교육,노후)

    

그런데, 한 단계 더 나아간 복지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재원이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이 사회 복지세의 신설입니다... 사회복지세는 기존에 걷는 세금에 일정 비율을 곱해서 목적세 방식으로 걷자는 제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럽민중사 -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출처 : 평등사회노동교육원 <함께하는 품> 통권 35호, 2018년 5월호


책소개

역사의 무대에 선 민중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유럽민중사》/윌리엄 A. 펠츠/서해문집/2018년3월/20,000원


양솔규(회원)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려는 국회 움직임에 맞서 민주노총은 각 지역별로 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 조금 전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가석방 되었다. 민중총궐기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었던 한상균 전 위원장은 많은 동지들의 박수를 받으며 2년 5개월여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왔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할 것이다. 중요한 싸움의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었고, 폭압적 탄압과 회유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해고는 살인이다!’ 외치며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싸움에 임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국가폭력에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한상균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위원장으로서 박근혜의 퇴진을 위한 민중총궐기를 책임졌다. 6월항쟁
과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이던 2016~2017년, 역사적인 촛불혁명의 전야제의 총책임자가 한상균이었다. 단지 노동자 투쟁뿐만이 아니었다. 작년 5.18 광주민중항쟁 37주기와 올해 38주기 기념식에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나서 5.18 영령들 앞에 고개를 숙였지만, 정작 80년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으로 광주민중항쟁에 참여한 바 있는 한상균 위원장은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에게 80년 광주의 5월과 2009년 평택의 여름, 그리고 2015년 광화문의 겨울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상균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의 선택은 단지 개인적 차원의 이성적 동의 혹은 감정적 호응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집단적 기억과,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 그리고 이를 전승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변이들, 이를 받아들이는 개인들의 다양한 존재조건이 버무려지고 켜켜이 쌓여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즉각적으로, 때로는 연속적으로, 때로는 단절적으로 역사의 장에 등장한다.


아마도 ‘문빠’들에게는 문재인 대통령이, ‘노빠’들에게는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맨’들에게는 3대에 걸친 이씨 왕조가 현재의 사회를 주조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한국사회의 ‘진보’(?)를 책임진 이들은 말없이 싸우다 죽어간, 꿈 없이 일하다 물러난, 욕심 없이 나누다가 퇴장한 다수의 축적된 노력들일 것이다. 민주화투쟁 과정에서부터 강조된 이러한 ‘민중사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퇴조(?), 자본주의의 첨단화 속에서 알게 모르게 퇴색되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결국 ‘조직의 계보’가 집단의 역사를 해석하는, 앙상하지만 유일한 틀로 기능하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민중사관이 퇴조하면서 ‘운동의 원칙’이라는 미명하에 개개인의 선택을 구속하던 올가미들도 사라졌다. 운동사회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고, 아무렇게나 변명해도 되는(또는 변명조차 필요 없는) ‘자유로운’(?) 시대 속에 있다. 바른미래당 후보로 나가도 되고, 공공기관 이사로 가도 되고, 전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 된 것이다. 고도의 숙고(熟考)가 필요한 자력갱생(自力更生),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에 오히려 개개인의 선택은 즉자적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A. 펠츠가 자신의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고와 행동의 유행 역시 영원한 것은 아니고, 또한 처음 겪는 일도 아니다. ‘무력함’은 새로운 ‘노력’을 만들어 낼 것이고,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광범위한 민중들이 만들어낸 장대한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 있다. 시카고의 노동계급사연구소 이사이며, 엘긴 커뮤니티 칼리지의 역사학 교수인 윌리엄 A. 펠츠(William A. Pelz)가 쓴 《유럽민중사》(서해문집)은 장장 600년 동안의 유럽 민중들의 역사를 단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해 냈다.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영국의 맑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펠츠가 다룬 시기보다 더 짧은 시기를 ‘자본의 시대’, ‘혁명의 시대’, ‘제국의 시대’ 3부작과 그에 더해 20세기를 두 권의 ‘극단의 시대’로 묶어 낸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자도 지적하듯이 이 책은 특유의 ‘압축성’ 덕분에 유럽 민중사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적합한 책이 아니다. 서술 자체가 어렵지는 않지만, 분명 ‘사전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책이다. 아마도 그런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기존에 알고 있던 역사적 맥락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해줄 것이다.


1871년 최초의 노동자국가 파리코뮨 시기 민중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저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거둔 놀랄만한 성과는 단지 기나긴 시간을 ‘압축’한 것에만 있지 않다. 무엇보다 이 책은 굉장히 많은 유럽의 나라들과 다양한 시대의 사료들을 인용함으로써 역사의 물줄기에 생생한 입체감을 더해주고 있다. 그 사료들에는 냉전시기 축적된 미국과 러시아 양국에서 해제한 기밀문서 등의 1차 사료들을 포함하며, 다양한 ‘보통사람’들의 수기, 구술사 등을 통한 목소리를 포함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국, 프랑스, 독일 서유럽 삼국 중심의 유럽사에 대해 재고할 수 있다. 체코,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를 통해서 소련과 자본주의 서유럽 양쪽으로부터 탄압 받고 배반당한 동유럽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루터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을 넘어 중세의 다양한 사상적 변이와 저항을 알 수 있다.


1933년 1월, 나치돌격대

가 독일제국의회 건물에 방화를 한 뒤, 공산당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운 후 권력을 장악했다.

또한 이 책은 ‘아래로부터의 역사’, ‘민중사’의 주역에 여성들을 당당히 등장시킨다. 그동안 역사책들, 심지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서조차 무시하거나 배제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책 전체에 걸쳐 꼼꼼하게 강조하며 싣고 있는 점은 아마도 다른 책들과의 가장 큰 차별점이라 하겠다. 여성들이 단순 ‘참여’했다거나 배달이나 심부름 등 ‘투쟁지원 서비스’(?) 차원에 머물렀다는 정도가 아니다. 여성들의 투쟁 없이 민중들의 투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시각으로 보면, 세계 인구의 절반이 역사학자들에게 가치 있는 주제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계급 편향과 마찬가지로 반여성 편견의 역사는 길고도 추악하다.(15쪽)


남성이 남성을 위해 남성에 관해 쓴 책들은 여성은 모두 집에서 밥만 하고 있었던 것처럼 1871년(파리코뮨) 파리의 사건들을 서술한다. 여성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은 오직 코뮌이 무너지던 와중에 그들이 날뛰며 방화했다는 중상모략을 통해서만이다. 여성의 반란 참여를 목격한 이들의 기술에 따르면 이런 묘사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코뮌의 짧은 생존 기간에 다양한 정치클럽에 적극 참여한 여성들이 있었다.……여성연합은 분명 코뮌 기간 중 계급의식의 가장 발전된 표현이었다.……코뮌의 급진적 여성들은 성별‧계급‧문화, 전통적 권력 배열 등의 비판을 위해 투쟁했다.(pp.158~159)


이 책은 역사가 단선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역사는 부침(浮沈)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이 와중에 민중들은 생존조건 뿐만 아니라 심지어 평균신장, 평균수명까지도 후퇴하고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대로 “대중은 바다와 같았다. 어떤 때는 잔잔하고 평화롭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 사나운 격랑으로 돌변”했다. 이러한 민중들의 ‘변덕’(?)은 객관적 조건만으로도, 주관적 의지만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파시스트 프랑코에 맞선 스페인 내전(1936~1939)에 참여한 국제여단 소속 중국인들


한편, 이 책은 서구의 역사, 지배계급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도 함께 가르쳐주고 있다. 흔히들 알고 있는 도식적인 20세기 역사에 대한 설명, 예컨대, “추축국에 대항한 연합국의 전쟁수행을 통해 민주주의(어떤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었고, 극우와 극좌를 제외시킴으로써 전후 계급타협에 기초한 수정자본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해석이 가지고 있는 편협함과 지적 태만 말이다. 그리스와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의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 영국에게는 반파시스트 투쟁만큼이나 (또는 그보다 더) 반공산주의 투쟁이 중요했고 그런 점에서 파시스트와의 연대가 필요했다. (따라서 냉전의 시작은 더욱 앞선 시기로 볼 수 있다.) 더불어 소련 역시 지배체제의 존속을 위해 수많은 공산주의 동지들을 죽음의 포연 속으로 밀어 넣었다. 연합국은 독일 내 반파시스트 저항 세력인 노동자들의 주거지에 융단폭격을 가했고, 소련은 독소불가침조약을 통해 프랑스 공산당을 포함한 반파시스트 대오를 고립시켰다. 말하자면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대당하는 위로부터의 지배의 본질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1936년 나치의 베를린올림픽에 대항해 사회주의 성향 ‘스포츠 인터내셔널’이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개최한 노동자 올림피아드(Worker’s summer Olympiade) 포스터. 17개국 2만7천 명의 노동자가 참가했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계급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경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옳은 방향성과 과학적 방침도 실천하는 자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이를 위한 주체의 지난한 실천이 불꽃같은 고양기의 외침보다 주목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들이 하나하나 켜켜이 쌓일 때 계급의 역사가 되고, 계급의식이 되며, 공통의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선배 노동자들은, 그리고 아시아의 노동자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투쟁과 연대의 경험을 쌓아 왔을까? 유럽 민중들의 600년 투쟁의 역사를 돌아보며 아시아 민중들의 경험을 아우르는 책 한권 제대로 없는, 아니 한국 민중들, 한국 노동운동의 통사조차 없는 우리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스탈린과 코민테른 지도자이자 불가리아 지도자 게오르기 디미트로프(Georgi Dimitrov, 오른쪽). 그는 유고슬라비아으 티토와 함께 소련에 자주적인 연방공화국(발칸연방)을 만들고자 했다. 1949년 급서했는데, 소련의 독살설이 끊이지 않는다. 1933년 독일제국의회 방화범으로 억울하게 지목된 바 있다.

유럽이든 아시아든 간에 지난한 과정을 통해 이룩한 현재의 삶의 조건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당연히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과정인 것도 아니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예전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대부분 그들이 이제껏 싸워온 덕택”(393쪽)이다. “역사라는 무대에서 투쟁으로 제 길을 열어 간 보통사람들이 아무런 충격을 주지 못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44쪽) “많은 경우 보통사람들은 패배했다.……(그러나) 일단 민중이 투쟁하면 거대한 진보를 이룰 가능성이 열린다. 반면 그들이 무관심이나 절망에 빠져든다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394쪽)


다수가 만들어 낸 거대한 변화의 바다에 뛰어들기 바란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자본주의와 노예제도》/에릭 윌리웜스/우물이있는집/2014년5월/24,000원
《이탈리아 현대사》/폴 긴스버그/후마니타스/2018년2월/33,000원
《암흑의 대륙》/마크 마조워/후마니타스/2009년5월/23,000원
《티토》/재스퍼 리들리/을유문화사/2003년12월/18,000원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대부분 그들이 이제껏 싸워온 덕택"(393쪽)이다. "역사라는 무대에서 투쟁으로 제 길을 열어 간 보통사람들이 아무런 충격을 주지 못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44쪽) "많은 경우 보통사람들은 패배했다.……(그러나) 일단 민중이 투쟁하면 거대한 진보를 이룰 가능성이 열린다. 반면 그들이 무관심이나 절망에 빠져든다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39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럽민중사 -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출처 : 평등사회노동교육원 <함께하는 품> 통권 35호, 2018년 5월호


책소개

역사의 무대에 선 민중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유럽민중사》/윌리엄 A. 펠츠/서해문집/2018년3월/20,000원




양솔규(회원)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려는 국회 움직임에 맞서 민주노총은 각 지역별로 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 조금 전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가석방 되었다. 민중총궐기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었던 한상균 전 위원장은 많은 동지들의 박수를 받으며 2년 5개월여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왔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할 것이다. 중요한 싸움의 현장에는 항상 그가 있었고, 폭압적 탄압과 회유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해고는 살인이다!’ 외치며 ‘생즉사 사즉생’의 각오로 싸움에 임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국가폭력에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한상균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위원장으로서 박근혜의 퇴진을 위한 민중총궐기를 책임졌다. 6월항쟁
과 노동자대투쟁 30주년이던 2016~2017년, 역사적인 촛불혁명의 전야제의 총책임자가 한상균이었다. 단지 노동자 투쟁뿐만이 아니었다. 작년 5.18 광주민중항쟁 37주기와 올해 38주기 기념식에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나서 5.18 영령들 앞에 고개를 숙였지만, 정작 80년 당시 고등학생 시민군으로 광주민중항쟁에 참여한 바 있는 한상균 위원장은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에게 80년 광주의 5월과 2009년 평택의 여름, 그리고 2015년 광화문의 겨울은 하나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한상균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간의 선택은 단지 개인적 차원의 이성적 동의 혹은 감정적 호응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집단적 기억과,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 그리고 이를 전승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변이들, 이를 받아들이는 개인들의 다양한 존재조건이 버무려지고 켜켜이 쌓여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즉각적으로, 때로는 연속적으로, 때로는 단절적으로 역사의 장에 등장한다.


아마도 ‘문빠’들에게는 문재인 대통령이, ‘노빠’들에게는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맨’들에게는 3대에 걸친 이씨 왕조가 현재의 사회를 주조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한국사회의 ‘진보’(?)를 책임진 이들은 말없이 싸우다 죽어간, 꿈 없이 일하다 물러난, 욕심 없이 나누다가 퇴장한 다수의 축적된 노력들일 것이다. 민주화투쟁 과정에서부터 강조된 이러한 ‘민중사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의 퇴조(?), 자본주의의 첨단화 속에서 알게 모르게 퇴색되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결국 ‘조직의 계보’가 집단의 역사를 해석하는, 앙상하지만 유일한 틀로 기능하고 있다. 아래로부터의 민중사관이 퇴조하면서 ‘운동의 원칙’이라는 미명하에 개개인의 선택을 구속하던 올가미들도 사라졌다. 운동사회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고, 아무렇게나 변명해도 되는(또는 변명조차 필요 없는) ‘자유로운’(?) 시대 속에 있다. 바른미래당 후보로 나가도 되고, 공공기관 이사로 가도 되고, 전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이 된 것이다. 고도의 숙고(熟考)가 필요한 자력갱생(自力更生),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에 오히려 개개인의 선택은 즉자적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A. 펠츠가 자신의 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고와 행동의 유행 역시 영원한 것은 아니고, 또한 처음 겪는 일도 아니다. ‘무력함’은 새로운 ‘노력’을 만들어 낼 것이고, ‘자신감’과 ‘자부심’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광범위한 민중들이 만들어낸 장대한 역사 속에서 우리는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이 있다. 시카고의 노동계급사연구소 이사이며, 엘긴 커뮤니티 칼리지의 역사학 교수인 윌리엄 A. 펠츠(William A. Pelz)가 쓴 《유럽민중사》(서해문집)은 장장 600년 동안의 유럽 민중들의 역사를 단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해 냈다.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영국의 맑스주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펠츠가 다룬 시기보다 더 짧은 시기를 ‘자본의 시대’, ‘혁명의 시대’, ‘제국의 시대’ 3부작과 그에 더해 20세기를 두 권의 ‘극단의 시대’로 묶어 낸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자도 지적하듯이 이 책은 특유의 ‘압축성’ 덕분에 유럽 민중사를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적합한 책이 아니다. 서술 자체가 어렵지는 않지만, 분명 ‘사전지식’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책이다. 아마도 그런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기존에 알고 있던 역사적 맥락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해줄 것이다.



1871년 최초의 노동자국가 파리코뮨 시기 민중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저항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거둔 놀랄만한 성과는 단지 기나긴 시간을 ‘압축’한 것에만 있지 않다. 무엇보다 이 책은 굉장히 많은 유럽의 나라들과 다양한 시대의 사료들을 인용함으로써 역사의 물줄기에 생생한 입체감을 더해주고 있다. 그 사료들에는 냉전시기 축적된 미국과 러시아 양국에서 해제한 기밀문서 등의 1차 사료들을 포함하며, 다양한 ‘보통사람’들의 수기, 구술사 등을 통한 목소리를 포함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국, 프랑스, 독일 서유럽 삼국 중심의 유럽사에 대해 재고할 수 있다. 체코,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를 통해서 소련과 자본주의 서유럽 양쪽으로부터 탄압 받고 배반당한 동유럽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루터로 대표되는 종교개혁을 넘어 중세의 다양한 사상적 변이와 저항을 알 수 있다.



1933년 1월, 나치돌격대가 독일제국의회 건물에 방화를 한 뒤, 공산당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운 후 권력을 장악했다.

또한 이 책은 ‘아래로부터의 역사’, ‘민중사’의 주역에 여성들을 당당히 등장시킨다. 그동안 역사책들, 심지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에서조차 무시하거나 배제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책 전체에 걸쳐 꼼꼼하게 강조하며 싣고 있는 점은 아마도 다른 책들과의 가장 큰 차별점이라 하겠다. 여성들이 단순 ‘참여’했다거나 배달이나 심부름 등 ‘투쟁지원 서비스’(?) 차원에 머물렀다는 정도가 아니다. 여성들의 투쟁 없이 민중들의 투쟁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시각으로 보면, 세계 인구의 절반이 역사학자들에게 가치 있는 주제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계급 편향과 마찬가지로 반여성 편견의 역사는 길고도 추악하다.(15쪽)


남성이 남성을 위해 남성에 관해 쓴 책들은 여성은 모두 집에서 밥만 하고 있었던 것처럼 1871년(파리코뮨) 파리의 사건들을 서술한다. 여성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은 오직 코뮌이 무너지던 와중에 그들이 날뛰며 방화했다는 중상모략을 통해서만이다. 여성의 반란 참여를 목격한 이들의 기술에 따르면 이런 묘사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코뮌의 짧은 생존 기간에 다양한 정치클럽에 적극 참여한 여성들이 있었다.……여성연합은 분명 코뮌 기간 중 계급의식의 가장 발전된 표현이었다.……코뮌의 급진적 여성들은 성별‧계급‧문화, 전통적 권력 배열 등의 비판을 위해 투쟁했다.(pp.158~159)



이 책은 역사가 단선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역사는 부침(浮沈)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이 와중에 민중들은 생존조건 뿐만 아니라 심지어 평균신장, 평균수명까지도 후퇴하고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자 룩셈부르크가 말한 대로 “대중은 바다와 같았다. 어떤 때는 잔잔하고 평화롭다가도 바로 다음 순간 사나운 격랑으로 돌변”했다. 이러한 민중들의 ‘변덕’(?)은 객관적 조건만으로도, 주관적 의지만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파시스트 프랑코에 맞선 스페인 내전(1936~1939)에 참여한 국제여단 소속 중국인들


한편, 이 책은 서구의 역사, 지배계급에 대해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도 함께 가르쳐주고 있다. 흔히들 알고 있는 도식적인 20세기 역사에 대한 설명, 예컨대, “추축국에 대항한 연합국의 전쟁수행을 통해 민주주의(어떤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었고, 극우와 극좌를 제외시킴으로써 전후 계급타협에 기초한 수정자본주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해석이 가지고 있는 편협함과 지적 태만 말이다. 그리스와 스페인, 포르투갈 등 남유럽의 사례에서 보듯이 미국, 영국에게는 반파시스트 투쟁만큼이나 (또는 그보다 더) 반공산주의 투쟁이 중요했고 그런 점에서 파시스트와의 연대가 필요했다. (따라서 냉전의 시작은 더욱 앞선 시기로 볼 수 있다.) 더불어 소련 역시 지배체제의 존속을 위해 수많은 공산주의 동지들을 죽음의 포연 속으로 밀어 넣었다. 연합국은 독일 내 반파시스트 저항 세력인 노동자들의 주거지에 융단폭격을 가했고, 소련은 독소불가침조약을 통해 프랑스 공산당을 포함한 반파시스트 대오를 고립시켰다. 말하자면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대당하는 위로부터의 지배의 본질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1936년 나치의 베를린올림픽에 대항해 사회주의 성향 ‘스포츠 인터내셔널’이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개최한 노동자 올림피아드(Worker’s summer Olympiade) 포스터. 17개국 2만7천 명의 노동자가 참가했다.


여기서 우리는 “노동계급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유명한 경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옳은 방향성과 과학적 방침도 실천하는 자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이를 위한 주체의 지난한 실천이 불꽃같은 고양기의 외침보다 주목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실천들이 하나하나 켜켜이 쌓일 때 계급의 역사가 되고, 계급의식이 되며, 공통의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선배 노동자들은, 그리고 아시아의 노동자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투쟁과 연대의 경험을 쌓아 왔을까? 유럽 민중들의 600년 투쟁의 역사를 돌아보며 아시아 민중들의 경험을 아우르는 책 한권 제대로 없는, 아니 한국 민중들, 한국 노동운동의 통사조차 없는 우리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스탈린과 코민테른 지도자이자 불가리아 지도자 게오르기 디미트로프(Georgi Dimitrov, 오른쪽). 그는 유고슬라비아으 티토와 함께 소련에 자주적인 연방공화국(발칸연방)을 만들고자 했다. 1949년 급서했는데, 소련의 독살설이 끊이지 않는다. 1933년 독일제국의회 방화범으로 억울하게 지목된 바 있다.

유럽이든 아시아든 간에 지난한 과정을 통해 이룩한 현재의 삶의 조건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당연히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과정인 것도 아니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예전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대부분 그들이 이제껏 싸워온 덕택”(393쪽)이다. “역사라는 무대에서 투쟁으로 제 길을 열어 간 보통사람들이 아무런 충격을 주지 못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44쪽) “많은 경우 보통사람들은 패배했다.……(그러나) 일단 민중이 투쟁하면 거대한 진보를 이룰 가능성이 열린다. 반면 그들이 무관심이나 절망에 빠져든다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394쪽)


다수가 만들어 낸 거대한 변화의 바다에 뛰어들기 바란다.

<함께 보면 좋은 자료>


《자본주의와 노예제도》/에릭 윌리웜스/우물이있는집/2014년5월/24,000원
《이탈리아 현대사》/폴 긴스버그/후마니타스/2018년2월/33,000원
《암흑의 대륙》/마크 마조워/후마니타스/2009년5월/23,000원
《티토》/재스퍼 리들리/을유문화사/2003년12월/18,000원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대부분 그들이 이제껏 싸워온 덕택"(393쪽)이다. "역사라는 무대에서 투쟁으로 제 길을 열어 간 보통사람들이 아무런 충격을 주지 못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44쪽) "많은 경우 보통사람들은 패배했다.……(그러나) 일단 민중이 투쟁하면 거대한 진보를 이룰 가능성이 열린다. 반면 그들이 무관심이나 절망에 빠져든다면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는다.……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394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