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 1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은하철도의 밤 - 양장본
미야자와 겐지 지음, 이선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01년 7월
평점 :
품절



"달밤이라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은하라서 빛나는 거야."

- 미야자와 겐지 <은하철도의 밤> 中



이 책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것은 내가 좋아하던 작가와 작품들 속에서 숱하게 읽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원작자인 마쓰모토 레이지와 감독 린 타로는 이 동화에 영감을 받아 은하철도 999를 제작했다.) 단 한 권의 동화책은 너무나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고, 너무나 많은 곳에 영향을 끼쳤다. 아마 우리가 현재 읽고 있는 일본 작가, 만화가, 영화 제작자들의 대다수가 이 책에서 한 줄 정도의 영감은 받지 않았을까. 그 정도다. 때문에 상당히 알려져 있던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동화는 즐겁지 않다. 무엇보다, 달콤하지가 못하다. 동화가 보여주는 꿈과 환상을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이 꿈은 전혀 달거나 행복하지 않다. 여행을 함께 하는 조반니와 캄파넬라는 꿈 속에서마저도 온전히 꿈을 즐기지 못한다. 꿈을 꾸면서도 그것은 조반니가, 캄파넬라가 잊고 싶어하던 현실과 맞물린다. 은하수를 달리는 꿈을 꾸고 있으면서도 꿈은 온전한 꿈이 아니다.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이 묵직했던가.


꿈이 쏟아지는 은하수의 축제와 함께 열차에 올라 우주를 누비던 꿈은 한 순간에 현실로 돌아온다. 꿈에서 깨어나면 누구나 허탈하고 누구나 서럽다. 꿈에서 깬 것과 동시에 현실은 도둑처럼 닥쳐오고, 이 어린 아이들에게 그 현실은 너무도 잔인하고 서글프다. 그래도 조반니는 웃으며 강둑을 달린다.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상실감보다 보고 싶었던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소년은 웃는다. 그게 참 좋았다. 꿈의 거짓이 아닌, 이따금 괴롭고 잔인하긴 해도 소중한 사람을 만나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을 향해 뛰어가는 소년. 

누구나 한 번은 꿈을 꾼다. 꿈은 누구나 꿀 수 있다. 꿈을 꾸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건 사춘기의 열병처럼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래도 마냥 꿈 속에 잠겨있지만은 않기에 이 글은 슬프다. 또 마냥 꿈만 꾸는 것이 아니기에 이 글은 참 아름답다. 글의 묘사가 아닌, 전체적인 텔링을 두고 아름답다고 말해도 될런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참 아름답다. 이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내가, 그래도 이 현실을 잘 살아가고 있는 내가 참 뿌듯하다. 


은하철도의 밤은 언젠가는 끝난다. 꿈이 끝나듯 현실이 온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간다. 살아는 진다. 그렇게 모두 자란다. 어른이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 - 지속 가능한 미래를 상상하라
데이비드 스즈키 지음, 오강남 옮김 / 서해문집 / 2012년 1월
절판


그러나 제가 믿는 바는 우리가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지금이라도 너무 늦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15쪽

"삶에서 가장 큰 위험은 인간이 먹는 음식이 모두 영혼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잡아먹어야 하는 모든 것들, 우리가 옷을 만들기 위해 때려죽여야 하는 모든 것들이 우리와 똑같이 영혼을 가지고 있지요. 이 영혼들은 몸이 죽는다고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그들의 몸을 없앤 것에 대해 그들이 우리에게 복수하지 않도록 그들을 달래야 하는 겁니다."-24쪽

우리들의 창의적 능력이 놀라울 정도의 기술적 업적들을 가져다주었지만, 그것들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대가를 동반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연계가 어떻게 작용할까 하는데 대한 우리들의 지식이 너무나 원시적이기 때문이다.-34쪽

우리는 태양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신진대사를 가능하게 하고, 움직이고 자라고 생식하게 한다.-45쪽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생태계의 조건들을 파괴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창안하는 것, 이것이 발전이란 것인가? 우리 자녀들이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유산으로 남겨 놓아야 할 것을 다 써 버리는 것, 혹은 우리가 저질러 놓은 문제들을 그들이 해결하도록 남겨 놓는 것, 이것이 발전이라는 것인가?-83쪽

우리가 다음에 쉬는 숨에는, 당신의 것이든 나의 것이든,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코골이, 고함, 비명, 유쾌함, 그리고 말로 한 기도가 조금씩 들어가 있다.
- 천문학자, 하로우 섀플리-116쪽

우리는 토양이다. 따라서 우리가 토양에 대해 하는 일은 모두 우리 자신에게 하는 일이다.-120쪽

모두가 이야기의 문제다. 우리가 지금 곤란을 겪고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훌륭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야기들의 과도기에 살고 있다. 옛날이야기, 우리가 거기 어떻게 적응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는 이제 그 시효가 지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새로운 이야기를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철학자, 토머스 베리-13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의 세계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5월
절판


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겁 많은 여행자는 모르는 고독보다 아는 고독을 선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체인점이라는 것이 세상에 번창하는 것이다.-161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구를 부탁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뛰어난 운동선수는 범인에게 반성을 촉구한다.”

오쿠다 히데오, <야구를 부탁해> 中



+) 나는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한다. 오쿠다 히데오 최고의 매력은 역시 한 번 펼치면 책을 닫지 못하게 하는, 무섭도록 몰입하게 만드는 그 스피디한 전개와 군더더기가 없는 문체라고 생각하는데 그 매력의 정수는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듯 싶다. 네 편의 소설을 읽었고, 에세이집은 이번이 두 번째지만 조금도 실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기껏 돈주고 산 책을 한 호흡에 후르륵 읽어버려서 화가 날 지경. 어쨌거나 오쿠다 히데오는 읽을 때마다 날 숱하게 감탄하게 한다. 다 읽고 난 후에야 '어 다 읽었네' 싶은 그 전개 방식, 깨알 같은 유머와 읽고 난 후 진득하게 따라붙는 여운과 단지 가볍지만은 않은 시선까지. 적재적소에 찔러넣는 위트는 또 얼마나 달인의 솜씨인지. 그 매력의 정수가 아마 에세이집들이 아닐런지. 세상에, 이렇게까지 자기자랑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 이렇게까지 재미있는 에세이를 쓰는 작가라니. 

정신없이 낄낄낄 웃고 나니 '아 오쿠다 히데오였구나' 하고 이제사 뒤늦게 감이 온다. 다 읽으니 왠지 개운하고 후련한 밤. 다 읽으면 항상 시원하게 져버린 기분이 든다. 오쿠다 히데오의 글은.






* 원글은 2011년 8월 23일, 달찬블로그 (http://dalchan.tistory.com/171)에서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앞으로 너에게는 너무나 많은 일요일이 찾아올 거야.

네 소원이 이뤄지는 일요일도 분명히 찾아올 거야.

그러니 너는 돌아가. 너의 삶 속으로."


- 김연수 <원더보이> 中







나름 손을 꼽아 기다리던 김연수의 신간이 드디어 나왔단다. 출간 되었다는 소식을 듣기가 무섭게 당장에 장바구니에 넣고 구입을 했다. 이번 글은 어떨까 싶어 받기가 무섭게 첫 장을 열었다.

오늘 저녁의 일이다. 그리고 난 참 난감해졌다. 눈물이 도저히 멈추질 않아서.



사실 난 김연수 작가의 글에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없다. <달로 간 코미디언>을 제외하고 늘 김연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난 도도하고 시크하게 굴었다. 습작생에게 김연수의 문장은 늘 명문이고, 어떻게든 본받고 싶은 구석을 찾아내 배움을 강탈하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눈을 열고 읽어댔던 모양이다.


<원더보이>는 그런 글이 아니다. 첫장부터 도무지 도도하게 굴 수가 없어서 나는 정말 난감했다. 실실 웃으며 빠져 들었고, 여러 다양한 캐릭터의 모습들에 웃기도 하고 비통하기도 하고 짠해지기도 하고. 한참 읽던 차에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게 정말 난감하다. 이건 이상한 일이다. 이 책은 전혀 슬프지 않다. 억지로 감동을 쥐어 짜는 것도 아니고 클리셰에 가까운, 때문에 누구라도 울 수밖에 없다는 소위 '최루탄급'도 아니다. 사실 재미있다. 정말 즐거운 글이다. 즐겁고 재미있고 우스워야 하는데, 웃기지가 않다. 재미있지만 우습지는 않다.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꼼꼼히 보면, 이 소설엔 참 기이한 풍경들이 많이 나온다. 겉으론 태연히 희극을 진열하면서 뒤돌아 곰곰히 생각해보면 전혀 우습지가 않다. 아니, 슬프다. <원더보이>를 생방송 무대 위에 올리고 청와대로 들여보내야 하는 인공적인 연출이 우습다가도 그들이 울고 있는 모습에 나도 운다. 원더보이에게서 시작된 눈물은 사람들을 울리고, 책을 읽는 나에게까지도 전이 되는 모양이다. 


난 80년대를 잘 모른다. 그 시대를 살았던 것은 분명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올림픽 개막식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소년의 얼굴이나 호돌이 정도다. 숱한 책이나 매체 속에 놓여 있는 그 시대는 늘 내게 인공적이었다. 잘 짜여진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처럼 사람들은 그린듯이 웃고, 그린듯이 환호한다. <원더보이> 속에 담겨 있는 그 시절은 좀 더 인공적이다. 모두가 웃고 모두가 밝고 건강하다. 감동이 생산되고 웃음을 창작하던 시대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 글은 개운하다. 내게도 그렇지만, 아마 이 글 속의 인물들이 그랬을 것이다. 누군가 웃으라며 억지로 입꼬리를 당겨줘서 웃는 대신 사람들은 운다. 웃음이 상처를 잊게 할지 몰라도 낫게 하는 것은 결국 눈물이다. 누군가는 눈물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마음을 낫기 위해서라고 그랬었던가. 그래서 운다. 덕분에 나도 운다. 그리고 지금은 후련하다. 덕분에.





개인적인 이유에서, 내게 <원더보이>는 꼭 필요한 소설이었다. 재미있고 즐겁고 유쾌하지만 이 글은 내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한다. 아직 울 수 있다는 것. 그래도 맘껏 울 수 있고 아파할 수 있다는 것. 언젠가는 눈물도 사치가 되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모두가 괜찮고 모두가 잘 살고 있다며, 다 잘 해결 될 거라면서 덮어놓고 웃기만 하는 세상이 오게 되면 우린 정말로 눈물을 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이 글이 참 고맙다. 아직 울 수 있어서 기쁘다. 맘껏 울어서 원더보이에게 고맙고, 글에 고맙고, 마음을 찔러준 문장들에 고마우며 이것들을 모두 잘 빚어내준 김연수 작가에게 가장 고맙다.


이유 없이 울 수 있는 소설이 존재한다는 것, 웃으면서도 울 수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김연수는 정말로 좋은 소설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1 | 12 | 13 | 14 | 15 | 16 | 1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