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1999년 5월
구판절판


"서른 명의 학생이 하나의 죽은 정물을 바라보는 모습은 전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느 젊은 여교사에게 왜 미술시간에 학생들에게 석고 데생을 시키지 않느냐는 질문에.-85쪽

"당신 말이 전적으로 옳소, 무슈 수상."-시락의 "당신을 무슈 대통령이라고 불러 마당하겠으나 지금은 똑같은 후보의 처지로서 만나는 것이므로 무슈 미테랑이라고 부르겠소."에 대한 미테랑의 대꾸-102쪽

토론자의 무기는 칼이 아니라 말이며, 수사법이며, 정연한 논리이며, 정확한 용어와 발음의 구사이다.
"단결로 인내하는 것은 토론이다"-죠스팽-103쪽

어디서나 난시(亂時)에 살아 남는 데에는 양비론보다 더 좋은 보신책이 없는 것 같다. 행동보다 말로 한 몫 보는 현대의 양비론자들은 비유컨대,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양쪽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과 비슷하다. 자신을 내세우면서 싸움의 현장에서 떠나 있다. 현실이란 좌표 바깥에서 고고한 비판 놀음을 즐기는 것이다.-194쪽

....대부분은 동향보고자들이어서 분석도 필요없고 문제의식도 필요없다. 정치인들에게 정책이나 주장을 끌어낼 필요도 없다. 한국의 기자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도 기자노릇을 할 수 있는 까닭도 바로 이것이다. 동향보고서를 쓰면 되는데 왜 공부를 하겠는가? 공부를 안 하는 대신에 한국의 기자들이 꼭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있다. 술을 잘 마시는 일이다.-207쪽

극우와 광신은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다. 유신 긴급조치시대의 암울한 공기를 한 웅큼도 숨쉬어 보지 않은 젊은이가 박정희 씨를 숭배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볼테르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광신주의자들의 열성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면 지혜를 가진 사람이 열성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수치스러운 일이다. 신중해야 하지만 소극적이어선 안 된다."-243쪽

.......1961년 10월 17일의 증언을 전한 <르 몽드>의 기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프랑스를 사랑한다는 것, 그 정체성을 쓰다듬는다는 것, 그 미래를 건설한다는 것이 다만 잃어버린 위대한 과거를 돌이키는 것이 아니다. 그 이름으로 저질렀을 수도 있는 잘못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컨대 <아사히신문>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는가?-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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