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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연애할 때 - 칼럼니스트 임경선의 엄마-딸-나의 이야기
임경선 지음 / 마음산책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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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좀 대충하고 삽시다'
그녀가 게스트로 출연한 육아팟캐스트의 부제는 그랬다. 육아, 왜 그렇게 다들 어렵게 생각하는지. 대충대충 좀 하고 살면 안되는지. 그녀의 목소리에 마음이 움직였다. 사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보다는 내가 먼저. 내 몸이 편하고 즐겁고, 또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거라고 믿는 나는, 진통이 무섭다는 이유로 제왕절개를 택했고, 모유도 꽤 잘 나오는 편이지만 분유를 먹으면 더 잘자는 것 같다는 이유로 하루에 두세번은 분유를 먹인다. 그럼에도, 나는 요즘 내 인생에서 가장 짐승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적어도 당시 모성애라는 것은 내게 핑크빛 부드러움이라기보다 선홍색 핏빛, 날것에 가까웠다. 그건 평소에 내새끼가 어디서 뛰어놀든 말든 관심도 없고 심지어 내 새끼가 먹던 먹이마저 심통 부리며 빼앗아 먹을 수 있지만, 막상 위태로운 순간이 오면 으르렁대며 이빨을 보이는 어미 사자의 심정 같은 것이었다. (임경선, 엄마와 연애할 때, 35쪽)

두 눈 말똥말똥 뜨고 더 안아달라고, 더 놀아달라고 보채는 아기를 토닥여 재우기도 전에 내가 먼저 잠들기 일쑤지만- 그래도 서너시간에 한번은 알람없이도 눈이 번쩍 뜨인다. 매우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기저귀를 갈아주고, 졸린 눈을 비벼가며 모유를 먹이는 새벽 세네시의 어느 순간들에 나는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다시금 인지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는 아기에게 어떤 엄마가 되어줄 것인가. 아기에게 어떤 엄마이기를 원하는가. 어떤 엄마들은 배냇저고리부터 매해 아이가 가장 잘 입던 옷까지 차곡차곡 간직한다기도 하고, 어떤 엄마들은 육아 일기를 쓰거나 영상이나 사진을 모은다. 고작 30여 페이지의 태교일기도 미처 다 쓰지 못한 나는 그런 것들에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엄마 노릇에는 나름 최선을 다해보겠다 다짐했지만, 이기적인 나는 여전히 엄마이기 전에 여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존중하고 싶다. 그런 내게 <엄마와 연애할 때>는 큰 위안이 되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생각만큼 그리 대단하지도, 대단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문장에서 힘을 얻는다. 때로 육아에세이를 쓰느라 아이에게 소홀할때도 있었다지만,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아이가 더 사랑스러워보였다는 말도- 문 쾅 닫고 글쓰고 있노라면 아이가 전혀 생각나지 않더라는 말도 힘이 된다. 어쩌면, 나를 잃지 않을수도 있겠다는 희미한 빛이 보인달까. "아기 예쁘지? 아기보다 더 소중한 건 없어"하는 지인들의 말에 괜히 죄책감이 들었던 순간들이 한순간에 씻겨내려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내게 이 책은, 사이다.
어깨 힘 쫙 빼고, 편안하게 써내려간 그녀와 그녀의 딸 윤서의 시간들은 나와 나의 딸 채원이의 시간을 상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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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클라라 2016-04-02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 참 좋아요 >_< 이제 육아책을 읽을 시기는 지났지만.. 끌리네요!
 
시인 동주
안소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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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한국영화사를 공부하던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아마도 40년대 초반 영화였을텐데, 눈물 콧물 쥐어짜던 신파영화가 갑자기 모든 주인공들을 운동장으로 한데 불러모아 일장기를 향해 경례를 하는 것이다. 개연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 장면에서 누군가는 웃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울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뭉글뭉글 올라왔다.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 어쨋든 영화는 그렇게 '황국신민만세!'를 외치며 끝나버렸다. 아, 그때의 허탈함이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아주 이해 안될일도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 영화를 만들었던 이들은 죄다 친일파였다는 사실 역시 낯설고, 또 인정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럴 수 밖에 없던 일이었다. 아, 얼마나 영화를 찍고 싶었으면 그렇게라도 해야했을까. 옳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저버리고 꿈만을 쫓은 그들의 삶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보았으나, 답은 없었다.

앉은뱅이책상 위, 펜과 잉크 옆에 단정히 놓인 습작 노트를 새삼 펼쳐 보았다. 동주의 시작 첫 번째 과정은, 떠오르는 시상을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구상한 뒤 먼저 습작 노트에 펜으로 써 보는 것이었다. 그런 다음 생각날 때마다 펼쳐 보고 조금씩 고치다가 이만하면 되었다 싶을 때 정식으로 원고 노트에 옮겨 썼다. 중학 시절 '나의 습작기의 시 아닌 시'에 이어, 두 번째 원고 노트의 제목은 '창'이었다. 동주는 책꽂이 한 칸에 따로 정리되어 있는 몇 권의 습작 노트와 두 권의 노트를 마저 꺼냈다. 그러고는 방 한쪽에 놓인, 잘 쓰지 않는 잡동사니가 담긴 사과 궤짝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
동주는 결심했다. 잘못된 전쟁을 지지하고 동포들의 고달픈 삶을 외면하는 것이 문학의 길이라면, 가지 않으리라. 감투와 명성을 탐하고 궤변으로 자신의 행동을 미화하는 자들이 문인이라면, 되지 않으리라. 하나의 시어를 찾기 위해 수없이 버리고 취하는 연마의 과정이 저렇게 쓰이는 것이라면, 더 이상 쓰지 않으리라. (안소영, 시인 동주, 127쪽)

안소영의 소설 <시인 동주>는 새삼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나라를 잃고, 말도 잃고, 생각까지 잃어버린 시대에 청춘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했다. 매일이 흐리고, 불확실한 나날들만이 계속되던 와중에도 윤동주와 그의 벗들의 청춘은 빛났다. 꼭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소설은 온 힘을 다해 보여주었다. 실로 동주의 고민은 한낱 청춘의 지나가는 무엇이 아니었다. 그는 식민의 땅에서 태어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스스로의 처지를 직시하면서도, 제 나라 말로 꿈꾸고 글쓰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그러한 절망의 시대, 사람들의 지성과 감성이 모두 무너진 폐허와도 같은 시대, 더 이상 아무도 시를 쓰려 하지 않는 시대에 동주의 시는 외려 새로이 움텄다. 문인이라는 빛나고 아름다운 이름은 더이상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자연과 사물들도 그곳까지 데려가, 일렁이는 감성들을 충분히 무르익게 하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정제되고 아름다운 우리말의 체에 걸러, 노트 위에 한 편의 시로 옮겨 적는 길고도 진실하고 순정한 시간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소설이 그의 청춘을 오롯이 따라가고 있기 때문인지, 알고있던 그의 시도 매번 다르게 읽혔다. 때로 절망의 어두운 그늘 속에 놓여있는 것 같기도 했고, 또 때로는 슬픔의 웅덩이 깊은 곳에 맞닿아 있는 듯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맑고 고요한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만 이십칠 년 이 개월이 채 못되는 삶. 윤동주가 태어날 때부터 조국은 이미 남의 나라 식민지였다. 단 한번도 근심없이 싱그럽게 웃어보지 못했고, 어떤 일을 마음껏 해 본적도 없었을 것이다. 길가다 순사나 헌병을 만나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을 그의 청춘에, 감히 손내밀어 인사를 건네본다. 고맙다고. 온전히 속 터놓고 자신을 꺼내놓지도, 기대고 의지할 하늘도 없었을 때에- 그래도 펜과 노트를 내려놓지 않아주어 참으로 감사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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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툽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황중환 그림 / 자음과모음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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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신간이라고 해서, 책 소개도 읽지 않고 얼른 장바구니에 담았던 <마크툽>. 읽으려고 꺼내들어보니 한 권의 우화집이다. 짧은 에피소드들로 엮인 우화집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아마도 나는 장바구니에서 이 책을 다시 뺐을 것이다. 어쨌거나 '파울로 코엘료'라는 이름 덕분에 정말이지 오랜만에(실은 거의 20여 년 만에) 우화집을, 이 동화 같은 이야기들을 읽게 되었다. 우화집답게, 책은 삶의 어느 조각을 떼어내어 낯선 시선으로 한참을 들여다본 후, 그 사이에서 하나의 빛을 발견하게 한다. 그것은 우리가 힘에 겨울 때, 길을 잃었을 때 하나의 나침반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화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신이며 현자는- 그럼에도 여전히 동화 같은 성격을 띠고 있어 '음, 역시 동화 같은 이야기군'하고 한걸음 떨어져 이야기를 관조하게 만들기도 한다. (내게 순수한 동심이나 믿음 따위는 없는건지'ㅁ;...)

책에 쓰인 179개의 이야기는 어디서 한 번쯤 들어본 듯하지만 다시금 무릎을 치게 만드는 이야기, 웃음을 머금게 하는 유머러스한 이야기들이다. 제목인 <마크툽Maktub>이 '그렇게 기록되어 있다'는 아랍어라는 것을 상기해본다면 이야기가 낯설지 않은 것은 일견 당연하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내게 큰 깨달음을 주지 못한 채, 그저 짧은 동화처럼 훅훅 지나가 버렸지만- 그래도 책을 덮을 때쯤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것은 '매일 글을 쓰는 것'. 코엘료는 이 책의 서문에서 잡지에 연재를 시작할 때는 의욕이 앞섰지만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스케쥴 속에서도 글을 쓰는 일이 힘든 과정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매일 글을 쓰는 과정 속에서 새롭게 글을 쓰는 힘을 터득하게 되었고, 자신의 글과 타인의 글을 포함하여 재발견하는 기쁨을 얻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영혼의 풍요'를 경험했다고.

여전히 첫 문장을 쓰는 일은 힘에 겹지만, 그래도 매일 읽고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금 생각한다. 아무도 이 글을 읽지 않는다 해도, 또는 내가 비밀로 간직하려 한 글을 결국 누군가가 읽는다 해도, 글을 통해 나의 영혼을 작동시키도록 애쓰기로 한다. 글을 쓰는 단순한 행위는 언제나 그렇듯 생각을 정리하고 주위의 일들을 명확하게 파악하도록 도와줄 테니까. 그러니까, 종이 한 장과 펜 한 자루가 가진 잠재적 가능성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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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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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를 정확하게 또 날카롭게 그러면서도 따뜻하게 표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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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앗! 가야지가야지하고 한번도 못가봤던 서울국제도서전! 어떤 책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너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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