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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ㅣ 새움 세계문학
조지 오웰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21년 4월
평점 :
절판
예전엔 이 책 <동물농장>을 읽고 어떤 생각을 했더라. (블로그를 뒤적여 예전 리뷰를 다시 읽어보니) 그때 나는 혁명의 달콤한 순간에 취해있었던 것 같다. 고려 후기의 '만적의 난'을 처음 마주했을 때와 같이- 동물들이 인간의 착취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다는 사실만으로 희열을 느끼며, 그 이후로 동물농장이 어떻게 변해갔던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다시 읽은 <동물농장>에서는 어쩐 일인지 혁명, '그 이후'가 읽혔다.
자, 동지들, 우리들의 삶의 본질은 무엇이겠소? 우리 그것을 직시합시다. 우리의 삶은 비참하고, 고되고, 짧소. 우리는 태어나, 단지 우리 몸에 숨이 붙어 있을 만큼의 음식이 주어졌고, 우리 중 그것을 할 수 있는 이들은 마지막 한 톨의 힘까지 일하도록 강제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유용성이 다한 바로 그 순간 끝이 찾아오고 우리는 끔찍한 잔학행위로 도살당하는 것이오. 영국의 동물들은 한 살이 지나면 누구도 행복이나 여가의 의미를 알지 못하오. 영국의 동물들은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동물의 삶은 비참함과 노예 생활이오.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입니다. (본문 중에서, 13쪽)
사실, 다시 만난 혁명의 순간은 여전히 짜릿했다. 하지만 혁명, '그 이후'를 생각하다 보니 혁명은 오히려 쉬웠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동의할만한 혁명의 명분은 언제나, 어떤 형식으로든 잠재워져 있었고, 누군가 그것을 터트리면 사람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하지만 그 이후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달콤하고 짜릿했던 순간이 지나자- 그들은 다시 지워내고 싶었던 모습으로 자연스레 회귀했다. 대체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그러니까 동물들의 무지 때문이었는지, 돼지들의 탐욕 때문이었는지, 권력욕 때문인지 딱 꼬집을 수는 없지만- 스노볼이 악으로 규정되어 쫓겨나고, 나폴레옹과 인간 중 누가 돼지이고 누가 인간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 그 장면에 이르기까지 몇 번이고 우리는 마른 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뭔가 잘못됐다. 하지만 동물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언제부터' 잘못되었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는 7계명 조항 아래에 '그렇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는 문장이 쓰일 때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 뒤돌아 봤을 때 불현듯 나타난 그 문장을 읽을 수 있는 동물도, 사실 몇 안 됐다. 그러나 그 문장이 거기에 있음을 알아챘을 때,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는 '어떤 동물들'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고- 얼마간은 그것이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했을지 모른다. 돼지들은, 늘 그렇게 말해왔으니까.
동물들은 돼지들의 말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그렇다고 존스 씨의 장원농장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 시절에 그들은 노예였고, 지금 그들은 자유인이므로. 아무리 돼지들의 결정이 이상하다 한들, 그들의 자유까지 빼앗아간 것은 아니므로. 그것만으로 동물들은 많은 것들을 참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들에게 진정 '자유'가 있었던가. 그들이 같이 꿈꾸었던 '동물농장'은 여전히 그들의 이상 세계에 있던 동물농장과 닿아있는가.
만약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더라면, 자신들이 수년 전 인간 종족을 타도하기 위해 임할 때 목표했던 것은 이게 아니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한 공포와 학살 장면은 늙은 소령이 처음 그들에게 반란을 선동했던 그날 밤 자신들이 고대했던 게 아니었다. 그녀 자신이 미래에 대한 어떤 그림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건 동물들이 굶주림과 채찍으로부터 해방되고, 모두 평등하며,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일하고, 소령의 연설이 있었던 날 밤 자신이 어미 잃은 오리 새끼들을 앞발로 보호해 준 것처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보호해 주는 그런 사회였다. (본문 중에서, 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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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사를 공부하고 있는 요즘- 몇 가지 사건과 <동물농장>이 겹쳐 보였다. 먼저는 고려 후기에 일어난 '만적의 난'이 그랬다. 이는 만적과 노비들이 일으킨 신분 해방 운동이었는데, 천민 계층의 주도로 이루어진 최초의 조직적 신분 해방 운동이었다고 한다. 만적은 노비였지만 똑똑하고 사회의식 역시 높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그는 노비들을 모아놓고 매우 논리적인 연설을 하며 신분 해방을 주장했다고 한다.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 그것도 가장 낮은 계급인(사실 '사람'으로도 취급하지 않았던) 노비가 봉기를 부추겼다는 것은 <동물농장>에서 혁명이 시작되던 그 짜릿한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2. 스노볼이 악으로 규정되어 쫓겨나고 나폴레옹이 유일한 권력자가 되어가는 모습에서는 일제 강점기의 친일파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웃으면서 같은 민족들을 수탈했다. 특히, 누가 돼지인지- 누가 인간인지 구분할 수 없었던 그들만의 파티 장면이 그랬다.
3.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했던 동물들의 모습에서는 오늘의 우리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지금보다 더 이상한 것이 분명했던 일제강점기나 유신시대에는 그래도 분명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물들이 존스 씨에게 반기를 들었던 것과 같이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외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적'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뭔가 이상한 게 확실한데,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니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모습은, 동물농장의 동물들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