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 애매하게 가난한 밀레니얼 세대의 '돈'립생활 이야기
신민주 지음 / 디귿 / 2021년 4월
평점 :
퇴사한 지 꼬박 두 달. 지난달 중순쯤 실업급여를 신청했고, 지난주 금요일에 처음으로 한 달 치 실업급여를 받았다. 하루에 60,120원, 한 달에 168만원이 조금 넘는 그 돈은 막상 통장에 들어왔을 때 더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통장을 한참 들여다보며,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에 대해 상상했다. 해보고 싶었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프로그램을 해볼 수도 있을 테고, 쌓아뒀던 책을 실컷 읽을 수도, 가보고 싶었던 독립서점에 모두 가볼 수도 있을 터였다. 당장 일을 안 한다고 우리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저런 계획과 실험들로 올해를 채워 넣어 보겠다고 생각한 데는 실업 급여의 역할이 컸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종의 '가능성'으로서, 지난날의 나를 점검하고 앞으로의 나를 상상하고 계획하는 데 쓰일 시간을 가져다준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월 30만원씩 꼬박꼬박 받는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될 것 같나요?
이 책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의 저자 신민주는 '기본소득'을 상상한다. 어떤 조건도 요구하지 않고, 30만원이든 50만원이든 70만원이든- 모두 똑같이 '매달' 지급받는 것이다. 이는 장애나 질병, 나이나 개인의 특성을 심사하거나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상정하지 않고 언제나 '모두'를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임금노동을 하는 사람도, 안 하는 사람도, 가사노동을 하는 사람도, 안 하는 사람도 모두- 기본소득 수급의 대상자가 된다.
정말 '기본소득'이 현실화된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 나는 실업급여가 내게 주었던 '가능성'이 '기본소득'으로 모두에게 확장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버는 일이 아니기에, 무가치한 일이라고 생각되어왔던 많은 일들이 점차 제 가치를 찾게 될 것이라고, 또- 돈을 벌기 위한 일만이 소중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사회적 믿음이 생기게 될지 모른다고도 생각하게 됐다. (한때 영화 만드는 일을 했었고, 지인 가운데는 글을 쓰거나, 공연을 만들거나,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끼리는 웃으면서 생계를 걱정하지만, 타인들이 건네는 '그거 해서 어떻게 먹고살아요?'하는 질문은 여전히 따끔따끔하므로. 적어도 '기본소득'이 실현된 사회에서는- 좀 더 마음 편하게 나의 세계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았다) 그러니까 어쩌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돈이 아니라 '가치'를 쫓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가꾸고 돌보는 데 삶을 투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어쩐지 아직 꿈같은 얘기로만 들린다. 코로나19로 한시적으로 지급되는 지원금도 계층을 나누고, 대상자를 세분화한다. 전국민에게 지급되었던 지원금은 1회성이 짙었기 때문에- 다들 쇼핑을 하거나 외식을 하는데 쓰고 말았다. (물론 이것도 중요했다. 지역 소상공인들의 고통이 너무도 컸으므로) 그러니 '매달', '모두에게' 지급된다는 기본소득은 아직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어렵다. 일단 나부터도 재원을 걱정하게 된다. 저자와 기본소득당은 종합부동산세를 없애고 땅에 대한 과세를 의미하는 '토지보유세'를 신설하자고 주장한다. 12억이 넘는 집을 가진 사람에게만 세금을 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를 가진 모든 사람이 용도 구분 없이 세금을 내고- 모아진 세금을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으로 분배하자는 주장이다. 땅을 가지고 있지만 그 땅이 별로 비싸지 않은 사람들이나 아예 집이 없는 사람들은 낸 세금보다 기본소득이 더 클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이것만으로 재원 마련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돌보는 삶을 살아갈 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잘 의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 연결된다. 잘 의존할 수 있는 사회의 시작은 위기 상황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지 자격을 묻거나 증명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가난해야만, 몸이 아파야만, 가족이 있어야만, 세대주여야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회여서는 안된다. 그게 얼마건 간에- 기본소득으로 주어지는 몇 십만 원은 많은 사람에게 '가능성'의 폭을 넓혀줄 것이다. 배우고 싶었던 것을 배우게 할 것이며, 보고 싶었던 공연을 향하게 할 것이다. 물론, 기본소득이 우리 모두의 삶을 평등하게 만들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어떤 밑바닥을 다져줄 수는 있지 않을까. ... 그런 상상을 하게 한 이 책이 고맙고,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