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8일 

    해당일 며칠 전에, 아는 분이 쿠폰 10장을 주었다.
    무슨 바자회의 5,000원권 쿠폰. 합이 5만원.
    당일 하루만 하는 바자회, 누가 주최하는지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도 모르고, 주니까 받았다. 

    "가면 생필품도 있고 먹을 것도 있어~" 

    "........아, 네.. 잘 쓸게요~" 

    나는 바자회 같은데를 가본 적이 없다. 그러나 머리속에 그려진 모습은, 음식들이 굉장히 많은
    풍경이었다. (아마도 TV나 어딘가의 행사를 연결시킨 것은 아닐까, 긁적)
     

    당일날, 오전 11시.
    좀 이른 점심을 먹자며 친구이자, 사업 파트너이자, 회사 사장인 그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밖에 나왔다. 제길, 비가 왔다.
    내 딴에는, 생애 처음 가보는 바자회이기에 나름 기대를 했는데.
    이렇게 비가 와주시면, 내가 생각하는 풍경 연출은 뽀로롱~ 날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_-
    그럼에도 갔다.
    어차피 이 쿠폰은 이 바자회에서, 이 날 밖에는 쓸 수 없는 것.  

    질척질척 발 밑에 느껴지는, 아스팔트에 누워버린 빗물을 밟으며 갔다. 멀지 않아서 걸어서.
    예상대로 천막을 치고 음식과 생필품 등이 있었다.
    내 기대와는 달리 너무나 조촐한....바자회였지만.
    아니, 바자회라고 해야 하나? 현수막을 보니 무슨 대학 동창회 어쩌구 써 있던데.
    그러니까, 나에게 쿠폰을 주신 분은 나이가 좀 있으신....
    거기에 미리 와 있던 정장 빼 입고 계신 아저씨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시선은...
    '젊은 얘들이 여기 왜?'라는 표정. 아,놔. 내가 알았냐고. ㅡ.,ㅡ 

    어쨌거나 우린 비 오는 날, 처량맞게 천막 안에서 국수를 먹는 건 좀 웃기긴 하지만, 추워서 먹었다.
    김밥 두 줄에 홍어무침까지 사서.
    세상에, 국수 한 그릇도 5천원 쿠폰 1장(두 그릇이니까 2장 소비...),
    김밥 2줄에 또 1장,
    홍어무침 한 접시에 또 1장.
    여긴 뭐든 다 쿠폰 1장.....즉, 뭐든지 다 5천원이라는. (너무 비싼거 아냐!)  

    벌써 2만원 썼다.-_-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를 속도로 (추워서) 먹고 난 다음,
    싸갈려고 홍어무침 한 접시를 포장 구매,
    간식으로 먹으려고 한치 다리 구운거(바짝 말린게 아니더라),
    반찬으로 먹으려고 무말랭이 한 통,
    계란 한 판, 천연재료 수제품 비누 2 개....어랏, 쿠폰 1장은 어디다 썼지?

    그런데, 문제의 그 홍.어.무.침.
    친구가 먹자고 해서 샀는데, 난 사실 설마 그게 진짜 홍어겠어, 하는 생각을 했었다.
    왜냐면, 예전에 TV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소비자 고발' 뭐 그런데서? (긁적)
    시중에서 파는 '값싼' 홍어는 홍어가 아니라고.
    진짜 홍어의 색과 가오리의 피부(?) 색을 비교해서 보여줬었는데, 확 틀리더라.
    흰색과 분홍색.
    하지만 빨간색 무침으로 나오면 그 색을 알 수가 없다.
    특히나 나처럼 홍어를 먹어본 적도 없는 녀석은 더더욱이.
    그러나 '홍어는 암모니아 냄새가 지독하다'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먹기에 거부감 없으면,
    '아하, 이것은 홍어가 아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날, 먹었던 것은 '가오리'라고 쓰고 '홍어'로 읽는 것이다.
    만들어 파는 아줌마들은 천연덕스럽게 '홍어'라고 한다. 아, 난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게 또 나한테는 다행인 것은, 홍어가 아니기 때문에 먹을 수 있었던 것....-_- 

    그래도 이건 좀 낫잖아. 응, 이해하고 먹을 수 있어. 홍어는 비싸니까.
    중국처럼, '신문지로 만들고 만두라고 말한다' 라는, 똥구멍에 포크를 찔러버릴만한 사건이
    아니니까. '석유 찌꺼기로 만들고 계란이라고 말한다'라는 경악할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가끔은 너무나 관대한 한국인들을 보면 참 답답해.
    화를 내야 할 때도, 당연히 잘못을 지적해야 할 때도, 묵묵히 참고 넘어가는 것을 보면...
    답답해.
    오늘 같은 바자회는 좋은 뜻으로 이루어진 것이니까 그냥 넘어간다 쳐도,
    고급 음식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데도(자기 돈 내고!) 그냥 넘어가는 걸 보면,
    그건 좀 아니지 않아? 싶은데도. 킁....ㅡ.,ㅡ 

    특히, 일반 물건은 하자가 있으면 바로 환불이나 교환요청을 당당히 하던 사람들도...
    아,왜 음식만큼은 그렇게 관대한 걸까?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도 있는게 바로 음식인데. 

    나 역시, 비위가 좋은 편이라, 머리카락 하나가 나와도 그냥 넘어간다.
    하지만 두 개 이상일 때는 속이 메스껍고 불쾌해지기 시작한다.
    예전에 캐나다 친구가 레스토랑에서 샐러드를 먹다가 아주 작은 채소 벌레를 발견했다.
    직원은 특별히 미안해하지도 않는 제스처로 '다른 걸 가져다 주겠다' 뿐이었다.
    싸구려 레스토랑도 아니었는데...그 때의 그 친구 표정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 친구의 머리속에 한국의 수준이 어떻게 그려졌을지를.
    창피한 일이다.

 

 

     지적이 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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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5-0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 대학교 구내 식당에서 라면을 동기가 시켰는데,, 면 다 먹고 국물 휘저으니 개미 한마리가 둥 하고 뜨는거여여. 한마리야~ 하고 이 친구 먹으려고 수저를 들이미는데, 이곳 저곳에서 개미가 둥둥~~~ 아하하.

그래서 불쌍한 자취생인 제 동기가 국물을 먹었을까요 안 먹었을까요?

L.SHIN 2010-05-02 13:21   좋아요 0 | URL
그건...개미 라면이었군요. 동기생분에게 단백질을 주고 싶었나봐요.-_-
안 마셨겠죠? 설마 마셨..;;

후애(厚愛) 2010-05-0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인삼축제를 갔었는데 정말 멋졌어요.
천막마다 인삼으로 만든 음식들이 어찌나 많던지..
구경 다하고 배고파서 천막안으로 들어가서 메뉴를 보면서 모두 먹고싶은 걸 주문을 했는데
가격이 안 적혀 있더라구요. 설마 비싸기야 하겠어 하면서 주문을 했지요.
다 먹고나서 계산하려고 아줌마를 불렀더니 6만원이라고 하는거에요.
국밥 두그릇, 순대 한 접시, 깁밥, 오징어 튀김이었는데... 거기다 맛도 없는 음식이었는데 6만원이라니..
언니도 놀라고 형부 옆지기도 놀라고 그냥 계산하고 나왔지요.
그런데 정말 돈이 아까웠어요. 음식이라도 맛 있었으면 안 아까운데 말이지요.

L.SHIN 2010-05-02 13:23   좋아요 0 | URL
엄청난 바가지군요. 국밥에 고급 인삼이라도 왕창 들었던가요? 인삼 순대던가요? 인삼 김밥?
인삼 오징어 튀김..? 허 참...ㅡ.,ㅡ
다음부턴 가격을 미리 물어보고, '아유,왜 이리 비싸!'하고 외치고 다른데로 가는 겁니다.오키?
저도 전에 새로 생긴(인테리어가 꽤 그럴싸해 보여서 들어간) 뷔페 레스토랑서...변변히 먹을 것도
없었는데 계산할 때 2인분에 6만원이 넘는 돈을 내고....두고 두고 억울했었죠.

후애(厚愛) 2010-05-03 06:04   좋아요 0 | URL
인삼이 들어간 건 오징어 튀김 뿐이였어요.
다음에 인삼 축제가면 그곳에서 밥 안 먹고 식당에 가서 먹기로 했어요.^^
2인분에 6만원이 넘었다니... 정말 비쌉니다. 바가지에요. 바가지~

<아무도 내가 외계인인걸 모른다> 이름이 재밌어요. ㅎㅎ

L.SHIN 2010-05-03 10:16   좋아요 0 | URL
맞아요. '뷔페답게' 먹을게 많았다면 반대로 '잘 먹었다' 이겠지만...-_-
서재명이요? ㅎㅎㅎ 어제 어떤 서재에서 놀다가 '우리 주변엔 외계인이 있다'라는 페이퍼를 보고서
바꾸게 된 거랍니다. 일종의 반어법이죠.(웃음)

2010-05-02 2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02 2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03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03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