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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우석훈 해제 / 북돋움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달 전 <먹거리 반란>으로 번역된 책에서 국제식량문제에 대한 원인 분석과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던 라즈 파텔. 예일대학과 UC버클리 대학의 아프리카학 센터 방문교수이다. 식량문제를 주로 연구해왔다. ‘라 비아 캄페시나’와 협조해 국제기구에 대항하는 전 세계적인 캠페인에 열중하고 있으며, 이 책에서도 그런 내용을 자세히 실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치와 경제를 밀접하게 다룬다. 거의 동시에 진행시킨다. 그리고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현재의 자본주의 경제를 비판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책의 첫 장부터 ‘오늘날의 경제침체의 원인은 자본주의 정신이 흘러넘친 데서 비롯되었다’(p. 23)고 말하고 있다.

맥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자면, 지금의 세계가 취한 자본주의가 끼친 경제적, 민주 정치적 폐해들을 심도있게 다룬다. 특히 빈곤한 자들에게 ‘불평등’을 촉발하는 자본주의, 정부나 기업의 이윤추구에 종속당하는 개인들에게 집중한다. 자본주의를 해석하는 입장에서는 마르크스의 입장을 취하고 있고, ‘인위적 인간’본성을 설명한 루소의 입장 또한 받아들여서 기업과 정부가 가진 문제점의 근원을 설명한다.

어떻게 하면을 통해 ‘자유재’를 지속가능 하면서도 공평한 방식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 알아낸 조직 형태만이 번영을 누릴 수 있다. 미래의 정부가 성공한다면, 그 성공은 공공 영역에 대한 과거의 정치학, 세계를 공유하고 그 가치를 평가하는 과거의 방식 덕택일 것이다. 그 방식에는 다시 한 번 ‘커먼스(공유지)’라는 이름이 세심하게 붙여졌다. (p. 153)

저자의 입장은 이렇다. 재산이 완벽하게 사적 소유의 대상일 수만은 없으며 사회적 성격을 띤다. 재산은 사회적인 것이다. 사유재산이 성립하려면 그것을 공공의 손에서 떼어내 사유화하는 행위에 대한 사회적 승인이 필요하다. 공유를 위해서는 각자의 이기적 충동을 제어해줄 사회적관계망 그리고 세계의 가치를 평가하는 새로운 방식을 필요로 한다. (p. 170~1)

저자는 분배의 방식을 가장 중요시한다. 때문에 사회적 재산 공유가 해결책인 것 마냥 후반부를 장식한다. 어떤 시민이 될 것인가. 여러 가지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스스로 정치참여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투표 그 이상의 행동들을 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정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평등, 책임, 정치의 가능성이 개인의 행동에 따른 정치적 주체가 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국민은 왜 정부를 최고 권력기구로 인정하는가. 근본적으로 그것의 힘이 국민으로부터 촉발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이 개인의 이익이나 윤리에 반할 때 그것에 대항할 수 있는 권리는 충분히 민주주의에서도 주어진다. 저자는 국민 모두가 정치의 직접 참여자로 나서서 할 말을 다 하고, 스스로의 불만을 해결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변수가 거의 없는 소규모 집단에서도 실현하기 어려운 말이다. 각자의 의견 조율을 위해 먼저 규율을 세우자고 하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정부’를 내리고 ‘이익집단’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다 옳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은 부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 사회취약계층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 버는 놈만 더 벌고 못 버는 놈은 계속 허우적거릴 때, 버는 놈에게 지우는 사회적 책임과 과중된 부양 의식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같은 민주적인 장려 행동 말이다. 그냥 있는 것 몽땅 거둬다가 너도 먹고, 나도 먹게 나눠버리면, 거기서 촉발되는 개인 간 불평등함과 생산력 하락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이건 완전한 공산주의다.

저자는 공산주의의 쓴 맛을 모르는구나. 공산주의의 경제가 한 번이라도 발전을 맞이했다면, 그것은 그저 뼈골이 빠지는 노동력의 과부하였다. 불쌍한 사람은 있는 사람이 도와주고 나눠줘야 한다. 자발적으로. 그게 민주주의다. 그런 자발적 행위를 키워내는 것이 선진국의 교육이다. 저자는 빈곤층에 대한 동정의식으로 그 의식수준이 너무 멀리 가있다. 저자의 인생 또한 온전히 자본주의 덕에 누리고 살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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