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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아부지 말투

그거사 니 사정이제, 나가 머라고 했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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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이름 같은 아리는 내 이름이다.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아,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 리,를 딴 이름 덕분에 나는 숱한 홍역을 치렀다(사실 아버지가 주로 활동한 곳은 백아산보다는 백운산이었다. 그런데도 백아산의 아를 따온 것은 백운산의 백이나 운이 여자아이 이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그러니까 제 아무리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한들 반봉건시대에 태어나 가부장제의 그늘을 아주 벗어나지는 못한 반봉건적 사유의 발로였던 것이다). 학교에서나 관공서에서나 고아리, 내 이름을 말하면 아유, 이름이 참 예쁘네, 얼굴도 참……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이내 말줄임표가 뒤따랐다. 나는 아리라는 이름 따위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 딱 벌어진 어깨에 소도 때려잡을 듯 강건한 육체를 지닌, 그러니까 혁명전사의 딸에 참으로 걸맞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흔한 경숙이 혜숙이 같은 이름이었다면 감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당황과 모멸의 순간을, 나는 당신들의 청춘을 기념하고자 했던 부모 덕분에 어쩔 수 없이 감당하며 살아왔고, 살아내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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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느스름 뜬 눈 사이로 불빛을 등진 채 커다란 보따리를 머리에 인 어머니가 나타났다. 짐이 어찌나 무거운지 어머니 걸음이 비틀거렸다. 아버지는 나를 얼른 내려놓고는 어머니를 향해 달려갔다. 나를 버리고 어머니에게 달려간 아버지가 서운해서 나는 목청 놓아 울었다. 목에 걸린 누룽지를 뱉어내며 나는 섧게도 울었다. 어머니가 등을 내밀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결국 한 손에 어머니 짐을 받아든 아버지가 나를 등에 업었다. 그제야 나는 울음을 그쳤다.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등을 자장가 삼아 나는 까무룩 잠들었다. 한 손으로 나를 받치기 힘들었는지 아버지가 내 엉덩이를 치켜올리는 통에 잠시 잠에서 깼다.
"딴 집 애기들은 엄마가 젤 좋다는디 우리 아리는 당신이 최곤갑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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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짓이나 됨됨이가 매우 어리석고 미련하다

미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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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기억을 신이 나서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흔 넘어서야 이해했다. 고통도 슬픔도 지나간 것, 다시 올 수 없는 것, 전기고문의 고통을 견딘 그날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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