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야기에 오래전 독일에서 살던 시절의 우리 가족이, 무엇보다 나의 이모들이 떠올라버린 건 왜였을까? 황량한 바닷가에 묵묵히 서 있는 야자수들을 보면서, 이국적인 풍경을 위해 뿌리째 뽑아 기후와 토양도 맞지 않는 곳에 심었다니 너무하네, 정말 너무해, 슬프고 사나워졌던 그 밤의 마음은 지금도 선명히 생각난다.
하지만 이제 그보다 더 간직하고 싶은 건 고운 모래사장에 털썩주저앉으며 우재가 한 말이다.
"그런 야자수들이 살아남아 이젠 제주의 일부가 되었으니, 정말아름다운 일이지?"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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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가 찾으려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꼭 찾을 수있기를 바랍니다. 긴긴 세월 지나 과거의 사람이 다시 찾아오는건 틀림없이 근사한 일일 테지요."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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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장소가 나오니 반가움
애관극장
대한서림
신포시장

그래도 몇몇 장소들은 남아 있었다. 선자 이모가 중학교 시절분공 영화를 관람했다는 애관극장이나, 책을 사러 갔다가 K.H.와우연히 마주쳤다던 대한서림 같은 곳들을 발견할 때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곳을 선자 이모가 걸었겠구나, 생각하면 눈길이 닿는 자리마다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낡은 골목들 사이를 부지런히 걷다 갑자기 허기가 일었을 땐 신포시장을 찾았는데 그건이모의 일기장에서 팥 도너츠를 사 먹었던 일화를 읽은 기억이났기 때문이었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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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한뒤론 땅이랑 사람 뒤통수만 보며 걷는데
이전에 이곳의 여기저기에서 사진 찍었던 기억이 난다.

 몸을 돌려 보니 셀카를 찍고 있던 그 외국인 커플이었다. 커플의 부탁대로 정동교회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그들의 휴대전화를 건네받았다. 가을 햇살에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뭇잎들은 예배당의 붉은벽돌과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더없이 아름다웠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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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 이모가 살던 동네에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이모에게풍경 사진을 보내주기 위해 이번에는 정동길을 따라 걷던 중이었다. 날씨가 아주 좋았고, 걷는 동안 더워져 나는 목에 두르고 있던스카프를 풀어 어깨에 걸친 천가방 속에 넣었다. 평일 이른 오후라 그런지 거리에는 사람들도 차도 많지 않았다. 나는 서울시립미술관에 들러 단풍이 든 뜰의 사진을 찍은 후 붉은 벽돌이 깔린 도로를 따라 걸었다. 관광객처럼 보이는 젊은 외국인 커플이 정동극장 건물 앞에서 휴대전화를 든 채 팔을 쭉 뻗어 셀카를 찍고 있었다. 사진을 찍다 눈이라도 감았는지 포즈를 취하던 커플 중 한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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