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하게 가르는 편리하고 단순하고 도식적인 셈법을 이 영화가 조롱한다. 영화에서 둘은 제 꼬리를 문 뱀처럼 그 근원이 맞물려 있을 뿐만 아니라 상호간에 긴밀하게 얽힌다. 서로가 서로를 탐하고 극적인 순간에는 사도마조히즘적으로 결탁하며 위급시엔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의 상처를 보살피는 등등. (게다가 주인공 '그녀'는 여성+피해자다움의 전형으로부터 완전히 비켜나 있다. 통쾌하고 신선한 파격!) 이토록 모호하고 다층적인 관계에 대해 경찰로 대변되는 제복 입은 무리들이 무엇을 알 것인가. 사후 수습조차 벅찰 뿐이다.
다채롭다. 삶의 전면에 순차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은. 수모와 치욕의 시절이 지나면 뭉클한 경이의 순간이 찾아오고. 담담하게 감내하며 기꺼이 음미할 일이다.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는 탁월하다. 근데 무슨 이리도 많은 상을 받을 것까지야?
뒤늦게 이 다큐를 봐버렸다. 봐버렸다는 표현이 맞겠다.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부끄러움의 눈물만 훔칠 뿐이다. 봤으니 어떻게 할 것인가. 무거운 숙제가 남았다.
먼 친척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갑을 관계가 전복되다니 주체적이고 자립심 강한 여주인공이 이룩한 성취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우발적이고도 피동적인 성취가 아닌가. 이 정도의 상상력이 그 시대의 최선이었던 건가.